짐을 이고 지고
출국을 열흘 남짓 앞둔 1월 2일 목요일 오후, 저녁을 먹고 있는데 유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드디어 학생비자와 가디언비자가 발급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10월 29일에 비자 신청을 했는데, 정말 꼬박 두 달이나 걸렸다. 혹시라도 출국일까지 비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엔 관광비자를 발급받아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와 제제가 호주로 출국하는 날은 1월 15일 수요일이다. 다행히 아시아나에서 멜버른으로 취항하는 직항 항공권이 있어서 두 달전쯤 미리 예매를 해두었다. 비행기 시간은 오전 8시였는데, 항공권을 예매해 두고 다른 일 처리로 인해 그 비행기 티켓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다 오늘 문득 아침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까지 가려면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출국하기 한 달전쯤 남은 시점이었는데, 아무리 공항과 가까운 호텔이라도 그 많은 짐들을 들고 이동하긴 어려울 것 같아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며 검색해 보니 공항 안에 있는 호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승 호텔, 캡슐 호텔 등 몇 가지 종류의 호텔이 있었는데, 우리에 여건에 맞춰 가기에 알맞은 ‘다락휴‘호텔이 있어 잘됐다 싶어 알아보니 전 객실 예약 마감이었다.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이라 그런지 이미 늦은 감이 있었는데 이것까지 미처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공항 근처 호텔을 알아본 결과, 인천공항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인천공항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있었다. 다행히 객실은 남아있어서 1박 예약을 하고 셔틀버스 첫 차를 이용해 공항을 가기로 했다.
드디어 1월 14일, 오전부터 마지막 짐정리를 마무리하고 간단히 식사를 하고 집을 정리하고 있는데 친정아버지께 연락이 왔다.
- 지금 너네 집으로 출발한다.
이민가방 2개, 큰 캐리어 1개에 레디백 1개, 거기에 각자 맨 백팩까지 많은 짐을 들고 택시 타기가 어려워 스타렉스 봉고차를 운전하시는 아버지께 사전에 도움을 구했던 것이다.
우리 집에서 공항버스를 타는 간이 정류장까지는 차로 15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짧은 거리라 금방 도착했다.
아버지와 서운한 작별인사를 나눈 뒤, 13:05에 대전청사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예약해 둔 하얏트 호텔에 셔틀을 타고 가기 위해 호텔 셔틀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정류장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많은 짐들을 이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체력이 바닥났을 때쯤 우리가 헤매고 있던 공항 건물 3층 출국장 쪽이 아닌 1층 도착장 쪽에 셔틀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미 바닥난 체력과 멘털을 붙잡고 겨우 정류장을 찾아 셔틀버스를 타고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체크인을 하는데 내가 예약한 룸이 있는 타워 쪽에서 큰 행사가 열린다며 무료로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주었다. 웬 횡재냐. 시작이 좋은 걸까, 아님 여기서 운을 다 쓴 걸까. ㅎㅎㅎ 아무튼 일단 짐을 풀고 새벽에 공항 갈 준비를 한 뒤 긴장 속에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