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부모님은 멀리 살기도 했고 자식을 보며힘들어하는 그분들 마음까지 볼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이유가 뭐든 분명 엄마는 애들 생각해서 참으라 할 거고. 아빠는 집에 가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두 분 다 모두 온전히 나를 있는 그대로 놔두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대신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는 외숙모께 전화를 드려 데리러 와달라 말했다. 무슨 일인지 어떻게 된 건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네가 그럴 땐 이유가있겠지.라고만 했다. 그렇게 외삼촌네로 갔다. 언제나 따뜻하고 마음에 위안이 되는 분들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미안했고 입이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하지만 분명한 건 엄마가 살아야 애들 또한 사는 길이라 생각했다.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거실 안으로 비치는 따뜻한 햇살과 함께 소파에서 잠이 깨어 제일 먼저 시계를 봤다.곧 애들 하교할 시간이 다가오니 불안한 심장이 다시 요동친다.
분명 3시까지는 어린이집버스가 도착하는 그곳에 가서 둘째를 데려와야 했다. 누군가는 말이다.
왜 직감은 틀리지 않을까. 거기에는 어떤 어른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적중했다. 남편은 설마 그렇게 희생적이고 충실했던 사람이 정말 애들 놔두고 갔을 리가 없다 생각했다. 학교에서 하교한 딸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진짜임을 인지한 남편은 첫째에게 둘째 마중을 부탁했고 어린 첫째가 마중 나온 상황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놀라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 평소 인사를 자주 했던 건너편 마트사장님이 애들은 아빠 올 때까지 데리고 있겠다고 하시며 엄마가 몸이 안 좋으신가 보다라며 마무리를 해주셨다.
상황이 이렇게되기까지 엄마라는 사람은 그저 불안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곁에 있던 어른들이 다독이며 따뜻한 안정을 주었다.애가 둘이나 있는 40이 코앞인 엄마에게도 어른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꽤나 열심히 잘 사는 건 줄 알았다. 지나고 보니 그냥 막살았던 거다. 열심히 산다는 것이 잘 사는 것은 아니더란 말이다. 하지만 더 이상 막사는 것도 할 힘이 없었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최선을 다했어.
너 때문이야.라고 생각했다.
힘들어하는 곁에서 늘 함께 삼시 세끼를 챙겨주셨고. 여행을 끌고 가고 운동을 하게 만들었다. 집에 혼자 가만있도록 두질 않았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셨다.그렇게 몇 달이 가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힘이 조금이라도 생겼을 때 말씀하셨다.
외삼촌: "넌 참 나쁜 년이야. 너 같은 인간이랑은 달라. 상대를 그저 한심한 사람이라 벽을 치고 그 사람과 같이 동행하지도 변화하게 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내버려 뒀잖아. 그런 사람은 몰라서 그러는 거야. 그런데 너는 말도 하기 싫으니 너는 너데로, 그 사람은 그사람데로 살게 한 거잖아 "
나이가 몇 살인데 뻔히 보이는 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며 그건 일부러 그런 거지 모르고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외삼촌: "o서방이 좀 부족하긴 해도 나쁜 놈이 못돼. 그 사람은 부인과 애들이 세상 전부일 거야. 그런데 어떻게 할지를 모르는 것뿐이야. 어떻게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어. 네가 속으로 제쳐두고 벽치고 넘어오지 마라고 했잖아. 너가 그렇게 산거잖아.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말했어야지. 그럼 그 사람도 분명 알았을 거야. 물론 그것도 사람이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까지 하기에는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