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인터폰이 울린다. 그토록 보고 싶던 아이들이 서있다. 그리고 뒤에 남편이 있었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연락하지도 보지도 않았다. 안부를 묻지도 않았다. 분명 보면 마음 약해질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알았다. 그것을. 겨우 참고 있는 나에게 애들 카드를 들이민 것이다.
무척 사랑스럽고 반가웠지만 그런 점을 이용한 남편을 보니 눈이 뒤짚혔다. 끓어 오른 마음을 참고 애들을 내칠 수는 없었기에 문을 열어주었다.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건네주고 놀고 있으라 말하며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현관에 서있는 남편을 향해 외쳤다. "너랑 내 문제인데 애들 왜 데리고 왔어?"
참았어야 했는데 격해진 소리는 점점데시벨이 올라갔다. 애들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는 것 같은 나를 보는 남편도 화가 치밀었는지 애들 데려다 두고 다시 온다고 했다.
둘 사이 어떤 것도 정리되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그렇잖아도 힘들 아이들을 다독이고 헤아려주진 못할 망정 이 혼란 속으로 데리고 와 또 상처를 받게 하다니. 언제나 너 급한 게 먼저였지. 애들이 어떤 마음으로 인터폰앞에 서 있어야 되는지 너란 것이 알기나 해. 이 미친 인간아. 분노가 명치끝으로 왔다.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무엇보다 애들에 대해 수천번 생각했다. 지금까지 참고 산거 성인될 때까지만 참고 살까. 그게 맞는 방법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수 있는 깜냥이 되는 사람이 나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렇게 살면 마음이 죽든 육신이 죽든 그 끝은 분명 둘 중 하나였다.
지금 잠시 아프더라도 이것이 나도 애들도 사는 길이었다. 여러 변호사와 상담을 했고 결국 내가 데리고 와 키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소송은 죽을 만큼 하기 싫었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상처받는 아이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협의이혼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용납할 수 없었다. 다시 온 남편. 문 열고 나가 단둘이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섰다. 더 이상 참을 이유도 없고 참기도 싫었다. 이것이 마지막이기에.
어느새 손은 남편의 멱살을 잡고 있었고 엘리베이터밖으로 나와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때 손목스냅이 그렇게 발달했는지 처음 알았다. 정신 차려보니 남편 안경이 날아가고 옷은 찢어져있었다. 두서없이 모든 말들을 내뱉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볼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들어왔다.
그다음 날 전화가 울린다. 남편이다.
이제는 이 사람도 정리하려나 보다 생각하고 받았다.
"네가 나랑 사는데 진심이었구나. 애들은 밥 잘 먹었어. 걱정 마"라고 했다.
그때까지 잘못 없다. 꼿꼿이 머리 세우고 있던 나는 이 말에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채버렸다. 들킨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너도 느꼈구나 벽치고 선 넘어오지 말라고 하며 살았던 거. 처음부터 그런 마음으로 살았던 거 아니야. 해도 해도 안되니까. 나름 살방법을 찾았던 건데 결국 맞는 방법이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