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밖에 소란이 있었지만 아이한,
그는 한 엘프에게 관심이 쏠려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처음이야! 엘프를 보는 건.”
하레니아는 호기심이 가득 안긴 눈이 부담스러워 인상을 구길 때로 구겼다.
그런 표정이 보이지가 않는지 아이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채 하레니아에게 다가갔다.
하레니아가 그 낌새에 크게 움찔했다.
“다가오지마라!”
아이한이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네 눈은 더럽다!”
“엘프는 눈으로 사람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 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그 말 진짜 상처인데?”
“아무튼 다가오지마라!”
아이한은 히죽 웃었다.
장난기가 세어 나오는 웃음이었다.
도도도도 라는 표현이 될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하레니아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았다.
“이런 미친!”
하레니아가 기겁하며 다리를 올려 아이한의 턱을 찼다.
“컥!?”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서자,
때린 장본인 또한 ‘끄아아아.......’라는 앓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갔다.
아이한은 턱을 잠시 움켜주더니 하레니아의 멱살을 잡아챘다.
“야. 아프잖아.”
“끼야아아.......”
또 앓는 비명소리.
그러나 크지가 않아서 방밖으로 세어들어 가지가 않았다.
아이한은 하레니아를 황당하게 바라보며 손아귀에 힘을 풀려했다.
하지만 또 다시 오는 주먹에 아이한은 정신이 빙 도는 느낌을 받았다.
무슨 여자 힘이 이리도 쌔지?
“꺅! 꺅! 꺅! 꺅!”
하레니아가 방문을 향해 엎드린 채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으....... 야!”
짜증이 난 아이한이 하레니아의 옷을 잡아채려고 했지만 방문이 열리는 것이 더더욱 빨랐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하레니아는 빛을 보는 기분을 받았다.
기분 더러운 저 남자와는 달리 온몸을 지켜주는 것만 같은 눈동자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레니아는 에티븐의 얼굴을 서둘러 잡아 그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무언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하아.......”
하레니아는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에....... 에티븐!? 뭐야 그 여잔!”
비명을 내지른 남색가. 데오드의 붉은 눈이 혼돈으로 가득했다.
한편 카야산은,
자신의 볼을 잡은 채 때지 않고 자신 눈만 빤히 들여다보기만 한 하레니아를 이상하게 바라봤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올 때는 언제고 안색이 갑자기 좋아지다니. 거참. 의문이었다.
그 요상한 상황에서 뒤따라 나온 아이한은 움찔 할 수밖에 없었다.
만나기 싫은 장본인들
4명이 둘러 싸여 있었으니까 말이다.
순식간에 침묵이 공기를 내눌렀다.
“.......알고 있다니 놀랍군.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먼저 입을 연 자는 로테리 할로얀이었다.
손아귀에 굳건히 힘을 주며 절대 때지 않으려는 하레니아를 억지로 떼어내 로테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내가 언제부터 알고 있든 뭔 상관이지?”
“아주 상관있다고 본 다만?”
“내 생각에는 없다고 드는데?”
“하찮은 쥐새끼에게 의견이 있다니 웃기는 군.”
“너야말로 영웅 놀이하는 주제에 종족 차별이라니 웃기지도 않군.”
로테리 할로얀이 ‘허!’하며 기가 찬, 웃음 내뱉었다.
그리고 시선을 하레니아에게 옮겨 입을 다시 열었다.
“그녀는 누구지? 노옌가? 이종족을 사다니. 아주 고상한 취미를 가지셨군 그래?”
“괜한 시비를 찾으려고 눈동자를 굴리는 게 우습군. 너의 편견어린 눈동자로 인해 그녀가 상처를 받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하는 건가? 머저리인가보군.”
그 고상한 취미를 가진 크리스탈 공주가 선물로 주었지만,
차마 그 얘기를 지금 꺼낼 수는 없었다.
“허! 아닌가? 그럼 그녀는 누구지?”
“잠시 이곳에 온 손님이다. 상처받은 그녀에게 사과하고, 그 못난 눈동자를 치워.”
로테리의 미간사이가 구겨졌다.
확실히 그녀가 사실 노예가 아니라면 정말 불쾌한 일이었다.
게다가 직접적으로 그 말은 인간이 엘프들을 잡아서 노예로 많이 파고 산다는 뜻이니 더더욱 불쾌한 일이었다.
로테리는 하레니아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왼쪽 가슴을 대고 허리를 숙였다.
“레이디에게 불쾌한 언행을 내뱉은 제 실언을 용서해주시길.”
하레니아는 그런 로테리를 무시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녀 시선은 오로지 무감각한 카야산 눈동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로테리가 그 모습에 난처하게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폈다.
“미안할 따름입니다.”
카야산으로썬 쉽게 인정하는 그 모습에 의외라고 느꼈지만,
그 뿐이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다.
로테리는 한숨을 내뱉었다.
하레니아에게 실언을 내뱉은 마당에 카야산에게 더 이상 시비를 걸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느낀 로테리가 몸을 돌렸다.
그의 뒤를 따라 걸어온 세 명은 무언가를 진중히 생각하는 얼굴들이었다.
“너도 느꼈지?”
흐린이 로테리와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그래.”
“무언가가 바뀌었어. 그 무언가가 미친 듯이 생각이 안 난다는 게 이상하군.”
로테리가 설핏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 혼자가 아닌 다른 자도 그리 느낀다면 이건 착각이 아니라고 보아도 마땅했다.
“흐응?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알겠는데?”
데오드가 로테리의 어깨를 둘렀다.
불쾌한 감각이라 그 손을 떼려했지만 데오드의 말이 궁금하니 가만히 있기로 했다.
“데오드. 그게 무엇이지?”
“분위기. 그의 분위기가 바뀌었어.”
“애매하군.”
“그렇지이~?”
셋의 대화를 뒤에서 가만히 듣던 스딩이 발걸음을 멈췄다.
스딩은 뒤돌아서 에티븐을 바라보았다.
그의 곰같이 둔할 거 같은 눈빛이 어느덧 의문으로 번뜩였다.
‘갑자기 사고방식이 바뀌었어.’
이종족을 하찮게 보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는 스딩이었다.
그런데 그 에티븐이 엘프를 손님이라 소개하고,
자신이 그 이종족이라는데 불쾌한 감각을 보내지 않는다.
이 뜻은 꽤 오랫동안 자신이 이종족이라는 것을 알고,
일부로 이종족을 불쾌한척 했거나,
아니면 자신이 이종족이니 그때 사고방식을 바꿨고,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면 자신이 인간 귀족의 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왜 그는 어느 때 보다. 어느 누구보다 고상한 귀족 같아 보이는 것인가?
스딩은 그런 의문을 느꼈지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은 머리가 나쁘니.
생각해도 별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저 데오드가 에티븐 머리 때문에 로테리에게 징징대며 속상해 하는 걸
의아하게 다시 볼 뿐.
-
“쯧. 저 녀석들. 웬일로 그냥 간데?”
아이한 사후가 찝찝함을 들어내며 말했다.
그 검은 눈으로 흘낏 바라보더니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카야산 따라 둘이 들어왔다.
카야산은 식은 찻잔에 다시 뜨거운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그들도 이쪽을 탐색하느라 조용히 있을 거야.”
“이봐. 대체 내가 방안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건 내가 묻고 싶군. 내가 밖에 있는 동안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말을 고묘하게 돌렸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아이한이 침음성을 냈다.
“음....... 난 단순히 그녀에게 다가온 거 밖에 없는데?”
“그녀가 다가오지 말라고 말했음에도 다가간 거라면 충분히 위협이겠다만.”
“으. 알았어.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저 엘프도 나보고 서슴없이 더럽다고 했는걸?”
카야산이 무심하게 웃었다.
“네 눈이 정말 더러웠나보지.”
“......”
‘이건 차별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입 다물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다가오지 말라는 소리에 왜냐고 물었던 건 자신이었다.
더럽다는 소리에 마음 상처는 정말 컸지만,
이 무표정한 남자가 자신 같은 여린 남자 마음의 상처 따위 알 게 뭐냐는 듯이 굴게 뻔했다.
“아이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응? 뭔데.”
차를 몇 모금 마시던 카야산의 질문.
아이한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입을 다시 땠다.
“너는 아까 그들과 있었던 일들을 알고 있었나?”
“이봐. 친구. 날 눈치 없는 인간으로 보고 있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어.”
“어떤?”
“......약 4년 전이었나? 네가 엄청난 고열로 내 생일 파티에 오지 않았었잖아? 그 날 데오드 마일드 그 변태자식이 하는 얘기를 들었어. 친하지도 않는데 내 생일 파티에 와서는 내가 아닌 자신이 너를 소유하고 있다며 지껄였지. 질투하는 눈빛이 아직도 생각나. 걔가 그러는데 지금도 그 아파하는 섹시함을 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던 것도 자신이라고. 얘기하더라. 그때 알았지. 아 저 녀석 너에게 무슨 짓을 했구나.”
입술을 짓뭉개듯 하는 말에 카야산은 몇 가지의 추론을 냈다.
허나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을 추론일 뿐이다.
1. 그림자는 분명 고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한은 ‘데오드 마일드’가 말해서야 알았다. 그렇다면 에티븐 디릭스 본인이 고의적으로 숨겼다.
2. 밤의 여왕이 남긴 흔적들이 몇 년간 지속되었음에도 부모는 눈치 채지 못했다. 이 뜻은 부모가 데오드 마일드의 행동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밤의 여왕의 흔적이 데오드 마일드의 행동으로 오해하고 있을 요소가 크다.
3. 만약 이 추론이 사실이라면 에티븐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가 만약 어렸을 때부터 부모는 절대 도와주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에티븐이 무엇을 위해 악마와 계약했는지 대충 예상이 갔다. 물론 이 예상이 아닐 수도 있다. 어디까지 추론이다.
4. 발목에 오랫동안 감금되었던 흔적이 있다. 쇠고랑을 오랫동안 찬 흔적 말이다. 귀족이 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주변은 모른다. 아니 알고 있는데도 부모는 모른 척한다.
5. 쇄골에 키스마크가 진득하게 남아 사라지지 않는다. 이 뜻은 밤의 여왕의 짓인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일까.
6. 에티븐은 어찌되었든, 몸 안에 있는 의문투성이들을 숨기고 지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
그들은 왜 에티븐을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그림자가 불쾌히 여기며 ‘흐린 투트른’을 햇병아리 용사. 용사 흉내 내는 새끼.
그 비슷한 무리 녀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악마와의 계약 실행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는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치면 왜 그들은 신전에 가서 보고를 하지 않을 걸까.
악마와의 계약 사실만은 모르고 있다는 것일까?
그러면 그들이 왜 용사고 그림자는 그들에게 강한 적의를 보이는가.
여러 의문들이 카야산 머리를 아프게만 만들었다.
‘하........이 몸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생각 안할 날이 없군.’
하여간 에티븐 디릭스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