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고용산
bgm. 사라져 (Feat.사뮈) by 김뜻돌
오랜만에 등산을 가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다름 아닌 전역까지 남은 일 수를 봤기 때문이었다. 전역 전까지 100개의 등산 기록을 채우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얼추 일주일-이주일에 한 번은 연재를 해야 했다. 전역을 떠올리면 막연히 오지 않을 날 같았는데 남은 일수를 연재 횟수와 맞대어보니 또 꽤나 많이 지나 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년 이맘때 즈음에 기훈을 받으러 진주를 갔었는데 그 이후로 1년이 지났다니. (1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꽤나 밀도 있는 상태로 많은 변화들이 오고 갔으니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겠다. 2곳의 교육 기관에서 특기 교육을 받고 지금 보직에 오기까지 수많은 교육 성적 발표, 인사명령, 매일 긴장의 고조와 완화의 반복이 있었다. 이제야 '장교'라는 역할놀이와는 살짝 거리를 두고 내 본질과 가까운 것들을 짚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적응했나 싶기도 하다. 물론 군대는 떠나는 날까지 새로운 얼굴을 나에게 내비칠 것임을 확신하기에 '적응'했다는 상태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랜만의 등산을 위해 왕복 40분 거리를 운전하여 가는 과정 자체로 환기되는 기분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직접 운전해서 등산로 입구까지 간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전부 서울 근교의 산을 탔으니 친구 차를 얻어 탔거나 지하철로 등산로 입구까지 갔었다.
용화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최근에 눈이 많이 와서 아예 눈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지금까지 갔던 산들과는 다르게 계단식 등산로도, 나 외에 산을 오르고 있는 fellow 등산객들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까지의 방향과 수직으로 쓰러져 있는 나무 두 그루를 봤을 때 멈춰야 했는데, 저 나무를 넘어서 200m는 더 올라간 것 같다. 올라가며 몇 번 발이 미끄러졌는데 막상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문제였다. 미끄러운 산은 내려갈 때 무게중심을 잡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내려올 때는 거의 앉은 상태로 오리걸음을 하며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고로 오랜만에 한 등산이었지만 아쉽게도 고용산의 정상을 보고 오지 못했다. 정상에서 우리 부대가 잘 보인다는 블로그 후기를 본 것 같은데 눈 녹으면 다시 꼭 가봐야지.
용화사 입구에는 등산객들이 종이에 소원을 적어서 두고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올해 내 소원을 적었다.
글을 쓰며 떠올려보니 지난 일 년간 막상 계획만 하고 시작하지 않았거나 얼마 못 가서 포기한 것들이 떠오른다. 솔직히 브런치는 살짝 뒷전이긴 했지만, 등산과 브런치 연재를 포함한 다른 계획한 것들을 올해는 잘 꾸려나가야지!
한 가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 시간만큼은 잠재 수익이나 성장을 좇지 않고 그저 내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전부라고 오해하고 있던 무언가로부터 멀어진 경험을 했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새로운 사무실에 적응하고 불필요한 긴장에 에너지를 전부 소비해서 매일 퇴근 후 곯아떨어져 버린 지금까지의 생활 습관을 돌아보고, 임관 후 맞이할 첫 봄의 날씨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떠올려봤다는 걸로 족하다.
또 생각해 보면 나에게 군생활은 끈기 훈련이기도 일환이기도 해서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정상까지 못 보고 왔어도 괜찮으니 오랜만에 그 연속성을 이어 나갔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눈이 녹고 날이 따뜻해지면 이 근처에 있는 산들을 도장 깨기 할 거다. 이제 더 이상 전역을 막연한 시점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야.
부대에서의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머릿속이 복잡한데 그 심리가 반영된 뒤죽박죽 글인 것 같다. 그래도 오랜만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