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행군도, 그렇다고 등산도 아니었지만
bgm. 숲 by 최유리
도대체 행군에 어울리는 노래는 무슨 노래일까 오래 고민했다.
흥얼거린 노래가 있다면, 아니 있긴 했다면 세뇌당한 군가뿐이었을 것이다. 내 최애 군가인 '장교교육대대가'가 아닌 '숲'을 이번 글의 브금으로 택한 것은 생활관에서 취침 전 훈육관님들이 이 노래를 가끔 틀어주셨고, 주로 힘든 하루가 끝나고 우리를 위로해 주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위의 부제와 같이 우리의 행군은 산악행군도, 그렇다고 등산도 아니었다. 이전 선배님들 기수에는 산악 행군을 포함한 100km 행군을 했었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산악행군 없이 이틀간 55km 행군을 했다. 행군 훈련이 등산으로서의 의미를 절대 가지지 않음에 동의하지만, 15kg 완전 군장과 K2C1 총기를 메고 진주 교육사령부 안과 밖의 엄청난 오르막길을 꾸역꾸역 걸어가는 것은 분명 등산보다 훨씬 힘들었다. 그러니 '명예 등산'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인정해 줄 만하다. 그리고 내 브런치니까 내가 쓰고 싶은 글 쓸래요
행군 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우리의 모습을 찍어준 미디어반에게 감사를! 덕분에 그때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1일 차 오전은 오랜만에 영외로 소풍 가는 기분으로 출발했다. 재미있었고, 완전군장도 들만 하다고 생각했고, 중간중간 쉬는 시간도 있으니 할만하다 싶었다. 점심에 전투식량 먹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전투식량(쩐식)은 그냥 그랬다. 점심을 먹고 나니 갑자기 위장크림을 발랐고 교육사 안의 오르막길을 미친 듯이 타기 시작했다. '교육사 구조를 굳이 이렇게 만들어야 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끝날 듯 끝나지 않았다.
내가 땀을 뚝뚝 흘리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분대장이 "전성경 파이팅!"을 외쳐줬는데, 누군가 뒤에서 "(전성경 후보생) 알아서 잘 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줬다. 근거 없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라니 고마웠다. 나 죽을 뻔했는데!
훈련 과정 중 공식 명칭은 '행군'이 아닌 '야외종합훈련'이었는데, 그 이유는 행군 과정 중에 재난통제와 기지방호 훈련을 겸했기 때문이다. 발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무릎으로 앉아서 부랴부랴 방독면을 쓰고, 총을 들고 대기했다. 제일 맛없는 초록색 수류탄까지. 쉽지 않았다... 정말이지 쉽지 않았어...
각 분대에는 10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고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로 열을 맞춰 걸었다.
그중 4번이었던 나의 역할은 '전달맨'이라는 역할이었는데, 약 400명이 열을 이루어 가는 도중 특이사항 및 주의사항이 생길 경우 맨 앞 분대부터 맨 뒷 분대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내 앞 분대의 4번 전달맨이 큰 목소리로 전달 내용을 전파하면, 내가 듣고 똑같이 내 뒷 분대의 4번 전달맨에게 복명복창해야 했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전달 내용이 왜곡되거나 우리 분대에서 전달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군장까지 메고 전달맨 역할을 착실히 수행할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크게 다친 곳 없이 훈련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한 분대원들, 소대원들 덕분이다. 신기한 것은, 오히려 전달맨 역할을 할 때마다 오히려 더 웃음이 나고 에너지를 받았다.
어깨에 스펀지 방석을 잘라서 붙이고, 발에는 파스, 물집방지패드, 테이핑을 덕지덕지 붙인 상태로 양말을 두 겹 신었다. 그럼에도 행군 때 생긴 물집의 흔적들이 임관할 때까지 계속 남아있었다. 기억이 미화될 수밖에 없는 것은 행군이 끝나는 시점 중대장님의 "행군 끝!"을 복명복창한 기억과 다 식어버린 맥주였지만 다 같이 테라를 마시며 비어콜을 했던 추억 때문이다. 게다가 저녁 메뉴는 치즈떡볶이었다!
2일 차 점심을 먹고 혼자 그늘에서 방탄헬멧 껴안고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쩐식을 다 먹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 그 찰나에 나른 나른한 기분으로 잠들었었다. 일어나 보니 소대원들이 잠들어있는 나를 보며 장난치고 있었다. 그때는 너무 피곤하고 빨리 행군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 모든 일분일초가 낭만이었다.
행군을 하는 도중에는 '언제쯤 다음 휴식포인트 나오나, 얼마나 남았나' 계속 걱정하며 걸었는데 그냥 앞사람 발만 보고 걸으면 진짜 못할 것 같은 오르막길도 끝이 있더라. 나랑 친한 한 소대원이 나를 관찰했을 때 계속 자기 세뇌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혼잣말로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얼마 안 남았어!' 중얼거리고 있었다고 나중에 얘기해 줬다.
돌아보면 행군뿐만 아니라 모든 훈련이 그랬다. 보이지 않던 특박도 결국엔 왔고 평생 후보생일줄 알았던 시간을 지나 임관했다. 앞으로의 시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3년 혹은 그 이상의 군생활도 언젠간 끝나고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 이후의 삶이 시작될 것이다.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 교수님의 서울대학교 졸업식 축사 중 일부이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행군 훈련 중 휴식포인트에서 잠깐 잠들었던 순간의 공기와 색감을 기억하듯, 깨어있는 상태로 오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길 바란다. 나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어떤 모습을 상상하며 장교의 길을 걷기로 다짐했는지 잊지 말고 나 자신과 타인에게 친절한 새로운 시작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