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좋으라고!
여느 때처럼 동네 개천을 따라 산책하다 잠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를 때였다.
옆 벤치에서 '허허허!' 연신 웃음이 넘어왔다. 뭐가 그리 즐거울까? 호기심에 곁눈질하며 귀를 기울였다. 어르신 두 분이 소싯적 얘기로 한껏 들떠 계셨다. 오롯이 그 시절 얘기만 하시는 걸 보니 추억이 많이 고프셨구나 싶었다. 젊을 땐 꿈을 먹고살고 나이들 어선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나도 문득, 청춘의 로망 옥탑방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얻은 달동네 옥탑방은 세입자 중에 귀신이 산다 해도 믿을 만큼 폐가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오래된 3층 다세대 주택이었다. 지인들은 천 원 한 장 보태주지 않으면서 극구 말렸으나 갖고 있는 자금으론 여기가 최대였다. 역시, 턱없이 싼 값엔 대가가 따르는 법. 여름엔 찜질방, 겨울엔 냉동고로 방안에 있지만 노숙하는 기분을 한껏 누릴 수 있었다. 극한 환경에서 내가 어디까지 환장하는지 멘털 테스트는 덤이었다. 집들이 온 친구 놈들은 이런 상황을 알고도 술 먹기 딱 좋다며 열광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해 '캭!캭! 캬오~!' 미친 원숭이처럼 날뛰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앞날이 쎄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 얼마 되지 않아 놈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만취해 서로 자고 가겠다며 핏대를 세우다 떡 줄 놈은 개 무시한 채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하는 건 기본이요.
이른 새벽, 빨래를 걷으러 온 세입자 할머니에게 귀신이다! 육갑 떨던 친구 B는 염병할 놈이란 욕을 찰지게 먹었고, 직장에서 잘린 곰 같은 친구 C는 한밤중 계단에서 구르는 재주로 세입자 모두를 깨우는 기염을 토했다. 친구 Y는 이별 통보를 한 여친 미숙이를 울며불며 외치다 동네 미숙이들의 원성을 샀고 결국 경찰이 출동하고 말았다. 하나 같이 꽐라가 돼서 치는 사고들이 어찌나 참신한지.
누구를 위하여 옥탑방을 얻었나 하는 회의감에 놈들이 찾아오면 일부러 없는 척 숨죽였다. 두어 시간 뒤, 갔겠지 하고 나가보면 놈들 역시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거지 같은 놈들!
옥탑에서 벌인 친구들의 치기가 이해 안 될 바는 아니었다.
처음 살아 보는 인생이라 하는 일마다 넘어지기 일쑨데 세상은 젊으니까 엄살 부리지 마라, 나무랄 뿐, 손 내밀어 주지 않으니 오죽 답답했을까. 이럴 때, 막힘없이 펼쳐진 옥탑 전망은 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주었으리라. 그리고 밤이 되면 무대 조명 같은 달빛아래 우정 돋는 술판이 벌어지니 고삐가 풀릴 수밖에. 나 역시 함께 고삐가 풀려 신나게 어울리긴 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날마다 이러면 에휴... 한숨 밖에 안 나왔다.
하늘이 내 속을 알았던 걸까, 임차만기를 앞두고 재개발 광풍이 몰아 쳤다.
전세 계약 해지 통보를 받고 이사하던 날,
노숙에 다름 아닌 거주 환경과 놈들로부터 벗어난다는 해방감에 마음이 가벼울 줄 알았는데 묘하게 무거웠다. 머물러 있을 땐 마냥 불편하고 심난했던 것들이 괜스레 애틋했다.
옥탑 너른 마당을 길게 서성이며 다시 못 볼 풍경을 흝었다. 들쑥날쑥, 얼기설기 서로 기대고 맞댄 모양새가 우리네 사는 모습 같아 새삼 정겹고 한편 처연했다. 재개발에 누군 웃겠지만 속절없이 터전을 등져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서러울지. 내 처지도 발등에 불인데 오지랖이 깊었다. 서대문구 북아현동, 짙게 그리울 이곳을 꾹꾹 눌러 가슴에 담았다.
작년, 친구 아버님 부고 소식에 신촌 병원 장례식장을 가게 되었다. 때마침 북아현동에 사는 친구 C가 함께 가자고 연락이 왔다. 가끔 옥탑이 있던 동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는데, 잘 됐다 싶어 아현역에서 C를 만났다. 역 주변부터 내가 알던 풍경은 아니었다.
옛 추억을 곱씹으려, C에게 옥탑방이 있던 곳까지 안내를 부탁하자 그는 망설임 없이 지랄발광을 했다. 신장 180cm에 100kg 몸뚱이를 보면 걸을 봐엔 죽겠다는 C의 지랄은 설득력이 있었다. 아현시장에서 떡, 튀, 순 세트를 사 먹이고서야 C는 공손히 길을 안내했다. 옥탑방이 있던 곳까지 거니는 동안 기억 속 동네가 조금은 남아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탄식이 날 정도로 없었다. 잘게 쪼개져 꼬불꼬불 흐르던 정겨운 골목은 널따란 한 줄 차도가 되어 곧게 뻗어 있었고 그 끝엔 병풍처럼 펼쳐진 고층아파트가 위세를 뽐내며 솟아 있었다.
옛 추억을 되새길 여지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도 아쉬워하는 내게 C는 추억 따위, 아파트 덕분에 낡고 누추한 동네가 번듯해져 집값도 올랐다며 재개발을 열나게 칭송했다. 그 시절을 함께 해서 나와 같을 줄 알았는데, 다를 수 있음이 이해돼도 서운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우린 상주 친구를 조문하곤 굳은 표정으로 분향실을 나왔다. 조문객실로 들어서니 친구들이 모두와 열석해 있었다. 친구들이 낮은 소리로 우릴 반기며 테이블 가장 자릴 내주었다. 곁에 있던 친구 Y가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채우며 말했다.
"땡칠이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보고 3년 만이다."
"나이 들수록 누가 돌아가셔야 본다."
Y의 말을 C가 받았다.
"다들 사는 게 팍팍하니까.... "
불쑥 끼어든 B의 말에 친구들은 쓴웃음 지으며 소주를 비웠다. 씁쓸한 표정들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젊기에 견딜 수 있었던 답답한 현실은 먹은 나이만큼 무게만 더 할 뿐, 나이질 기미 없으니. 생기를 잃은 얼굴들엔 깊은 주름만 늘었다.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많아진 친구들이 새삼 측은했다.
"아이고, 면상들 하고는. 구접스럽고 좋구만!"
Y가 친구들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르며 익살스러운 말을 던졌다. 푹 꺼져있던 분위기가 살며시 들떴다. 여세를 몰아 입담 좋은 친구들이 만담으로 군불을 지피자 분위기는 금세 달궈졌다. 단골메뉴로 옛 추억들이 꼬리를 물었고 옥탑방 얘기에 이르러 '하하하하!!' 친구들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옛 추억으로 하나 된 우린,
장례식장에서 눈치 더럽게 없이 화목했다. 상주 친구한테 미친놈들이란 욕을 먹고서야 들뜬 분위기를 잠재웠다.
"그때가 좋았지...."
물끄러미 천장을 올려다보던 B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낮게 흘린 말을 잘도 알아들은 친구들이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재개발을 열라 칭송한 C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 라며 여론에 편승했다. C의 말에 친구들은 다시금 격하게 동조했다. 난 호응 없이 소주만 홀짝였는데 C는 이런 내가 거슬렸는지, 넌 아니냐며 옆구릴 찔렀다. (추억 따위라고 할 땐 언제고, 아오~! 얍삽한 놈.)
Y와 B도 맞장구 없는 날 흘기며 대답을 요구했다. 계단에서 구르는 재주를 선보인 C, 여친 미숙이를 외치다 경찰을 부른 Y, 세입자 할머니한테 염병할 놈이란 욕을 처먹은 B, 없는 척 숨어 있던 날, 끈기 있게 기다린 그 외 친구들. 개천 벤치에서 뵈었던 어르신들처럼 이제 우리도 추억을 먹고 살 나이가 되었나 보다.
"돌아가고 싶지 않아?" 물은 C의 손을 꼬옥 쥐고 친구들을 둘러보며 달갑게 답했다.
"누구 좋으라고, 거지 같은 놈들!"
농담반, 진담반 말은 이렇게 했어도 추억을 나눠 먹으며 함께 늙어 갈 친구들이 아니던가. 가는데 순서 없는 인생길, 외롭지 않게 해 줄 놈들의 존재가 이 글을 쓰는 지금, 더없이 고맙고 든든했다. (맞다. 친구들이 이 글을 볼 것을 대비해 훈훈하게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