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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Oct 21. 2023

효심 깊은 후레자식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







주말마다 이곳을 방문하는 동네 형님이 계셨다. 다양한 원목으로 도마, 스툴, 화분대 등 각종 소품을 만들어 가셨는데 전부 어머님 용품이었다. 형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어머니께 극진했다. 바쁜 업무 중에도 수시로 전화해 식사와 지병 관련한 약은 드셨는지, 구민센터에서 실버댄스는 하셨는지 등 일과를 꼼꼼히 챙겼다. 매해 휴가 때면 어머니의 꽃놀이를 위해 팔도를 누볐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형님 어머니로 환생하고 싶을 정도로 효도에 열정적이었다. 세상에 피붙이라곤 어머님뿐이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형님 본인을 위한 삶은 없이 오로지 어머니에 맞춰 사는 모습이 왠지 답답해 보였다. 이번에도 어머니께 드릴 뜨개질 코바늘 꽂이를 만들러 오셨길래 작심하고 볼멘소릴 했다.      


“효도 좀 적당히 해요.”

“효도에 적당히가 어딨 어?!”     


멀바우 집성목에 코바늘 꽂이 구멍을 내던 형님은 시꺼먼 얼굴을 찡그리며 답했다.

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형님은 목장갑을 벗고 곁에 있던 스툴을 끌어다 앉고는,     


“테스형이 그랬어. ‘자기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자와는 친구로 사귀지 마라. 그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라고.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하늘 같은 은혜를 적당히 퉁치면 쓰겠냐?!”     


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뜩잖은 표정을 짓던 형님은 자신의 친구 넙치를 언급하며 열변을 토했다. (형님, 친구들 별명은 메기, 삼식이(삼세기) 쏘가리, 빠가사리등 죄다 민물고기였다.)     


“이놈은 맨날 제 마누라랑, 애새끼 하고만 외식하고 여행가지, 부모님 모시고 다니는 꼴을 못 봤어. 게다가 명절마다 해외를 나가니까, 부모님 찾아뵙는 건 일 년에 딱 두 번 뿐이라는 거야. 아버님, 어머님 생신 때. 그 마저도 요즘엔 바쁘다는 핑계로 돈만 부친다나! 좋다, 이거야! 아니 그럼 안부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 할 거 아니야! 그런 것도 아니면서 또 부모님한테 오는 전화는 더럽게 툴툴거리면서 받아요! 의붓자식도 이보단 낫겠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은혜를 알아야지 말이야! 이러니, 후레자식 소릴 듣는 거야!!”     


음...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나도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도 툴툴....) 형님은 넙치와 비슷한 행태를 보인 민물고기들을 저격해 나갔고 그들은 하나같이 후레자식이 되었다. 형님은 잠시 열을 식히며 숨을 고르곤 입을 땠다.     


“부모님이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어?! 골수가 마르도록 한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하셨는데, 틈 날 때마다 맛난 음식 사드리고, 여행 다녀도 그 은혜를 갚을까, 말 까야! 시간 없다는 변명하지 마. 마음이 없는 거야! 고작, 명절이나 생신 때 코빼기 비추면서 효도했다고 착각들 하는데. 효도의 기본은 매일 뵙는 거야! 나 봐! 아침에 일어나 마자 어머니께 문안 인사드리고 함께 식사하고, 저녁에도 퇴근해서 문안인사 드리고 식사하고! 난 이걸 하루도 거른 적이 없어!”     


음.... 듣고 보니 틀린 말이었다. 난, 차분하게 일갈했다.

“형님은 어머니랑 같이 살잖아요!” 그렇다. 형님은 단 한 번도 독립한 적이 없다.     


형님이 어머니의 효도에 과하게 집착하는 건 아무래도 그것 때문은 아닐는지. 오십 중반이 다 된 형님은 노총각이었다. 어머님께서는 지인들을 동원해 백방으로 맞선을 주선했지만 모두 퇴짜였다. 형님 또한 주변 지인들을 통해 소개팅을 감행했지만 역시나 꽝이었다. 약간, 인면어를 닮긴 했지만 외모 때문은 아니었다. 주둥이가 문제였다.     


“저는 결혼하면 무조건 어머니를 모시고 살 겁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초면에 저런 말을 해맑게 내뱉는 인면어를 어떤 여자 좋아하겠는가. 정말 놀라운 건, 결혼과 더불어 시어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오싹한 소릴 듣고도 형님과 식사를 하는 여성분이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건데, 형님은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성분과 보조를 맞춰 식사를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도 모자랄 판에 저 혼자 후다닥! 먹고 팔짱을 낀 채, ‘언제 다 먹나?’ 식사 중인 여성분을 초초하게 바라봤다고 한다. 이러고 와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게 말했다.      


“여자의 마음을 도무지 모르겠어...”     


맞다. 성별에 상관없이 누가 들어도 다 아는 걸 형님만 도무지 몰랐다. 말을 해줘도 애써 모르려 했다.

그런데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형님에게 드디어 여자가 생긴 것이다.(물론, 여성분이 재혼이긴 했지만.) 난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형님에게 물었다.     


“여친 분이 어머님 모시고 사신데요?”     


형님은 뭔 개떡 같은 소리야, 어이 없다는 듯 말하곤 결혼하면 여자분 아파트에서 함께 살거라 했다.

 ‘이런!! 후레...’ 차마 내뱉지 못했다.     


연애를 시작한 이후로 형님은 공방에 발길을 끊었다. 먼지만 쌓여가는 어머니의 코바늘 꽃이는 한쪽 구석에서 하염없이 형님을 기다렸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난 어느 늦은 밤, 형님이 불현듯 방문했다. 연애를 하면 이뻐진다고 했던가. 시꺼멓고 거칠었던 피부가 뽀해지고 매끈해진 것이, 잘생긴 인면어 같았다. 

연애가 좋긴 좋나 보네, 사람이 달라 보여,라고 말하니 형님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꿀 떨어진다고 답했다. 그리곤 늦게 만난 만큼 몰아서 연애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모태 솔로나 다름없었으니. 오랜만에 오셨기에 어머니 안부를 물었다.      


“아.... 요 며칠 집에 못 들어갔거든. 안 그래도 오전에 전화 주셨는데....”      


형님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살 찌푸렸다. 그러고 있기를 잠시,     


“외박이 잦다고 다짜고짜 막! 뭐라 그러시는 거야. 아니, 내 나이가 내일모레면 환갑인데! 공사가 다 망하면 못 들어갈 수도 있지! 꼬박꼬박 집에 들어오길 바라요! 아흐~~”

“일이 그렇게 바빠요? 형님 회사 야근 같은 거 없잖아요?”     


형님은 알면서 그런다 란 표정으로 내게 씨익 웃어 보였다. 나도 씨익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뭐냐? 어, 코바늘 꽂이 언제 갖고 올 거냐고 또 막! 소리를 지르시는 거야! 하아....”     


형님에게 깊은 탄식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럴 시간 없다고 말을 해도 듣질 않으셔.... ”     


형님이 속상할 만도 하겠다 싶어, 안쓰러운 표정으로 위로하듯 말했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는 거 아니에요?”     


본인이 했던 말이니 뜨끔 하겠다 싶었는데, 형님은 싸가지 없이 말한다며 정색하고 내 볼을 꼬집어 비틀었다. 그래도 코바늘 꽂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해 이렇게 공방에 들른 걸 보면 효심은 여전한 듯했다. 


퇴근하고 3일 동안 열과 성을 다한 형님은 드디어 완성했다. 여친 생일 선물, 우드 스피커를.

불과 석 달 전만 해도 형님에겐 어머님이 전부였는데. 사람이 이렇게 급변할 수 있다니. 사랑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생일선물을 제작하는 형님의 표정은 효도 선물을 제작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행복해 보였다. 어찌 보면, 형님이 여친과 사랑의 결실 맺는 것이 어머님에게도 최고의 행복은 아닐는지. 


룰루랄라~ 우드스피커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흡족해하는 형님에게 이참에 코바늘 꽂이도 마무리하라고 했다. 하지만 형님은 또 시간이 없다며 다음으로 미뤘다. 그러지 말고 석 달이나 기다리신 어머니를 생각해서 만들어 가라고 하니, 형님은 괜찮다는 투로 “급하면 사서 쓰라고 돈 드렸어.”라고 답했다. 


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시간이 없는 형님을 대신해 급한 대로 사서 쓰면 될 일이다. 연애에 정신 팔려 어머니는 뒤 전이라 생각했는데. 돈으로나마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었다니.

역시! 형님은 효심 깊은 후레자식이었다.        



* 우드스피커에 각인된 'LOVER SONG' 에서 SONG '송'은 형님 여친, 성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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