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리기 싫은 그 기억

억울했던 시간

by 관리비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상사의 말을 듣고 한 일인데 다른 기관 사람이 그것에 대해 지적을 했다. 나에게 상도덕이 없는 사람이라 표현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나는 상사의 조언을 듣고 진행한 일이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정말 상도덕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모두 모여 이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상대방 측 담당자는 억울해하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당황했다. 그리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벌컥 들이켰다.

억울해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대신해 나의 부장님은 그녀에게 사과했다. 나는 부장님의 말에 의해 상도덕이 없는 사람으로 결론이 나 버렸다.


그들이 가고 난 자리에 나, 그리고 나와 함께 간 과장님, 부장님이 있었다.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들의 위로 한마디가 나를 건드린 것이다. 너무나도 억울했고 싫었다. 나야말로 분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나의 상사였고 나는 그들의 부하직원일 뿐이었으며 그 상황을 결국 해결한 사람은 부장님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내가 28살 즈음 벌어진 일이었다. 그때는 그렇게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나에게 많은 생채기가 생긴 일이었나 보다.

이후 나는 과장님과 부장님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했고, 그렇게 우리의 사이는 멀어졌으며 나는 퇴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끝났다. 어리고 힘없는 나는 이렇게 당할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속이 상했다.


그리고 일을 2년 정도 쉬었다. 다시 그런 일을 겪는다면 정말 견디기 어려울 거 같아서였다. 두려웠다. 그 두려움을 피하고자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고, 여행을 다녔으며, 무에타이를 죽어라 했다. 그렇게 사는 삶은 너무 즐거웠지만 생계가 막막해지자 다시 일을 해야만 했다. 그것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일을 찾으며 조건이 있었다. 내가 그 조직에 굉장히 작은 존재여서 어떤 기대도 받지 않으며 시기 질투받을 상황도 거의 없는 그런 일이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찾았다. 그곳에 다시 취업했다. 그게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자리다.


이곳은 전에 일하던 곳 보다 내가 부각되기 힘든 구조였지만 여기도 여기 나름의 어려움이 있었다. 보수도 작고 어려운 일을 맡아해야 하는 일이 많아 이 일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하기도 했지만 다시 예전과 같은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곳은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오늘 다른 기관 담당자를 만나 회의를 하는 상황에서 예전의 나를 만났다. 그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사과를 요구하는 상대방을 만났고, 그녀는 지난날의 나처럼 아무 말 없이 상대방을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긴 시간이 지나고 결국 그녀의 관리자는 그녀에게 사과를 하라 돌려 말했다. 나는 차마 그녀를 쳐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제야 그녀를 올려보았다. 그녀는 28살의 나와 다르게 떨지 않았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사과를 하지 못하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사과를 요구하던 상대방은 길길이 날뛰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에 대해 소리쳤다.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고 눈에서는 레이저를 쏟아내며 그녀를 쳐다봤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 사람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겨우 집으로 돌아가게 한 사람들이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녀는 관리자들을 탓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다른 기관 소속인 내 앞에서 그녀는 관리자들에게 해명하라는 식의 말을 했고, 관리자들은 당황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더 이상 진전 없는 이야기를 쳇바퀴 돌듯 계속 반복했으며 결국 그녀는 옆 사무실로 들어갔다. 관리자와 이야기하던 나는 그녀가 결국 흐느끼며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 눈앞의 침착했던 그녀는 속으로 전혀 침착하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녀는 10월까지만 일할 것이라 했다. 관리자들에게 실망스러웠고 자신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에게 질렸을 것이다. 내가 이런 대우와 상황 속에서 꼭 일을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을 것이다. 사과를 요구하는 상대방을 나를 통해 만났으니 나에 대한 원망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분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아팠다. 이 상황이 또 여기서 벌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가 끝난 후에도 나는 회의실이 있던 건물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뿐이었다. 혹시라도 그분을 만난다면 위로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내 만족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발걸음을 떼고 말았다.


속상한 마음에 사무실에 복귀한 나는 팀장님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달했다. 그러면서도 참 속이 상했다. 그분은 50대라고 들었다. 이런 일은 28살이 겪어도, 50대가 겪어도 참 힘든 일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그분이 너무 안타까워 마음이 아프다.


내가 힘든 상황이 될 때 누군가 나를 지켜줄 수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참 이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직장동료가 도와주기도 하고 상사가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들이 있다. 그럴 때면 참 앞뒤가 꽉 막혀있는 막다른 길에 숨 막히게 서 있는 거 같아 참기가 어려워진다. 오늘 그분이 그랬을 것이다. 10년 전 나도 그랬다.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상황이 또 이렇게 반복된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겪었을 것이리라.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그때, 그 순간들이 한 번쯤은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 당장 그런 상황인 사람도 있으리라…

그분들에게 나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그때 그 순간을 돌아보며 왜 결국 미안하다 했는지 너무나도 후회했다. 그리고 나에게 일 처리를 그렇게 하라 시킨 과장님을 너무나도 원망하면서 한번 제대로 따지지도 못한 내가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나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거 같아 스스로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일을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지내던 그 무렵.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신나게 샌드백을 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에 나는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에게 미안해서 그랬으리라…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그 시간에 나조차도 나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던 감정이 울컥 올라와서 그랬던 거 같다.


오늘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그분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누구보다 나를 지키라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나조차도 나를 방치하면 안 된다고. 그리고 절대 일을 그만두지 마시라고. 버티고 또 버텨서 자신의 직장을 함부로 잃지 마시라 말해주고 싶다.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의 문제를 해결해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은 그분에게 연락을 해 점심을 같이 먹어야겠다. 나와의 점심 한 끼가 얼마나 큰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다. 시도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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