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친구

새로운 친구

by 관리비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혹자들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생각을 하겠어?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안 한 것보다 못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억울하지만 여기까지 말을 아끼겠다.


아무튼 그런 나에게 회사는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는데 그중 하나는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돕는 것이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그 개념과는 지금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지금의 개념에선 나도 아동학대 피해자이다. 내가 어렸을 땐 그런 개념이 많이 빈약했다. 그래서 지금의 개념을 적용한다면 나도 아동학대 피해자요~하고 에헴 거리며 나타날 사람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지 않을까.)


가정폭력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더 이상 예전처럼 남의 집 가정사에 신경 쓰는 거 아니라는 개념의 구시대적 발상은 적용되지 않는다. 가족 내에서의 약자를 보호하고 그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이 제대로 처벌받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지만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가 가족이고, 가족도 엄연한 사회인데 그 안에서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건 멈춰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 안전장치 역할 중 하나가 내가 하는 일이었다.

한 분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나와의 대화에서도 심하게 긴장하고 있는 그분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나와 동갑이었다.


동갑.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20대 초반이 되도록 나와 나이가 같은 사람은 굳이 찾지 않아도 주변에 많았다. 어린 시절 동갑내기들과 지우개 따먹기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며 얼음 땡을 외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기를 지나 청소년기가 되어 서로 좋아하는 것들, 관심 있는 것들에 대해 밤늦게까지 학교 운동장 한편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랬다. 그렇게 동갑내기 친구들은 어느 순간까지 내 곁에 항상 있었다. 그렇게 많아 보이던 동갑내기 친구들은 사회에 나와보니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가버렸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지 않던 동갑내기를 이렇게 만난 것이다.

기분이 묘했다. 우리는 다른 삶을 살았어도 통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았다. 나와 동시대를 살며 같은 문화를 공유했을 그를 이런 관계로 만난다는 게 새삼 낯설었다.


그분은 나의 클라이언트가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관계로 뭉친 우리는 담임선생님께 옆반 남학생의 잘못을 이르기 위해 교무실을 달려가듯 변호사를 찾아갔고, 피구를 하기 위해 운동장에 선을 바르게 긋는 마음으로 증거를 확인했으며, 중간고사 시험 끝나고 정답을 맞히는 마음으로 경찰의 조사 내용 또한 확인했다.


하지만 역시 이 과정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까. 내 클라이언트는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했다. 둘이 꼭 잡은 손이 흔들리고 있었고, 상황은 생각보다 혼란스러웠다. 가정폭력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이란 그 어느 하나 쉽지 않았다.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되고 판결이 나왔다. 가해자 측은 벌금형을 받았다. 클라이언트의 피해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그동안의 세월이 무색하게 적은 벌금이 나온 거 같아 나의 동갑내기 클라이언트는 속상해했지만, 나는 어쨌거나 피해사실이 공식적으로 입증된 것이니 그 부분은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다음으로 진행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혼소송이었다. 서로 간 귀책사유 여부와 피해와 가해 정도를 법원에서 판단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것을 예상했는지 상대방 측은 재력을 과시하며 규모가 큰 로펌에 자신의 사건을 의뢰했다.

하지만 돈이 부족했던 나의 클라이언트는 최소한의 금액으로 구할 수 있는 변호사와 계약했다. 시작부터 달랐다. 첫 번째 공판이 있던 날 상대방 측은 4명의 변호사와 함께 법원에 나타났고, 나의 클라이언트는 또다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그 당시 동갑내기 클라이언트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은 상태여서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기 어려워했다. 나야 사건 상황을 여러 자료를 통해 모두 확인한 상태였고 처음부터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해하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 이분과 이야기하면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클라이언트와 계약한 변호사가 그랬다.

나는 클라이언트를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대신해주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이혼소송으로 인한 조정기일은 이미 잡혀 있는 상황이었고, 더 이상 지체될 수 없었다.


그렇게 이혼소송은 9개월이 안되어 끝났다.(보통 1년 정도이며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변호사를 통해 들었다.) 하지만 9개월은 우리에게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 그 시간을 보내며 클라이언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를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다행히 클라이언트의 어려움을 알아준 판사님은 그분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리가 예상한 금액보다 큰 3천만 원의 위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 돈이면 클라이언트가 그동안 생활하며 진 카드빚도 갚을 수 있었고 집도 구할 수 있었다. 클라이언트는 모든 게 내 덕이라며 감사인사를 해주었지만 나는 그분에게 도리어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 시간을 잘 버텨주어서. 그리고 힘든 와중에도 참 좋은 결정들을 해주어서.


무엇보다도 그렇게 조정을 이어가 주신 판사님에게 참 고마웠다.


클라이언트는 안정을 되찾아갔다. 정신과도 다니고, 심리상담도 받으며 그동안 힘들었을 정신건강을 보양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취업도 해 직장을 다니기도 했다. 물론 모든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직장을 다니다 무리를 했는지 신경계통 질환이 생겨 응급실에 가는 일도 있었고, 두 번째 얻은 직장에서는 상사와의 문제로 중도에 그만둬야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 친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에게 항상 이렇게까지 이끌어줘서 고맙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친구가 전사 같았다. 어떠한 전장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전사. 친구는 어떤 면에서 약해 보일지 몰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다른 동갑내기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사는 게 팍팍하다 여겨질 때가 있다. 특히 경제적으로 말이다. 여러 매체들에서는 젊은 부자, 신흥 부자들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실제로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 나를 포함해 내 나이대 또래는 모두 힘들어 보였다.

마음 한구석에 지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찾아온 것이다. 어쩌면 그 친구를 도와주면서 나 스스로를 도와주고 있다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상황은 다르지만 묘한 동질감을 느낀 건 나이가 같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친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 수 있길. 나도. 친구도.

이전 07화하루 3만 9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