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담배는 숨어서 피워라.”

by 관리비

내가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한 지 3~4년 차 되는 때의 일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복지관에는 대안학교가 있었다. 그곳은 중학교 2, 3학년 학생으로(유급된 학생들 포함이다. 그래서 간혹 나이는 중2, 3학년이 아니지만 학년이 맞아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학교 부적응, 다시 말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담임선생님이 대안학교를 가라고 한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우리 대안학교에 모이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 학생들이었다. 허벅지에 커다란 문신을 하고 반바지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등교를 하는 학생도 있었고, 너무 화장을 많이 해 원래 얼굴을 못 알아볼 정도로 하고 다니는 학생도 있었다. 남의 지갑이나 휴대폰을 잘 훔치는 학생, 부모님이 다 다른 분과 재혼하여 혼자 살며 밤이면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학생, 스포츠 토토를 하는 학생 등 다양했다.


나는 왜 그런지 몰라도 청소년에 대한 애정이 있다. 처음 보면 나도 모르게 움찔하게 되는 그런 외모와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담배를 피워대는 학생들이지만, 실제 대화를 해보면 영락없는 그 또래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청소년기에 나름 방황 아닌 방황을 해서 그런 것일까. 아이들의 마음이 부모님의 마음보다 더 이해가 갔다.


아무튼. 우리 학생들은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흡연자라는 것이다.

대안학교에 등교를 하면 휴대폰과 담배를 제출하게 했다. 그리고 하교를 하면 돌려주었다. 일반학교라면 담배를 폐기했겠지만 이곳에 모이는 학생들의 특성상 그것은 아주 소용없는 짓인 데다가 일반학교와 다름없이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교라 생각해 출석률만 떨어지고 결국 학생들은 유급을 하고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다 잘 안 되는 수순으로 갈 것이라는 우리의 경험상 나온 절차였다.


하지만 이 정도의 조치에도 아이들의 반발은 심했다. 휴대폰은 참아도 담배는 못 참겠다는 게 아이들의 항변 내용이었다.


당시 나는 부담임이었고, 담임이 따로 있었다. 우리는 고민했다. 어찌하는 게 좋을까...

아이들과 우리는 술래잡기하듯 담배를 뺏고 숨기 고를 반복했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어디서 난지 모르는 신분증으로 편의점들은 심심치 않게 아이들에게 담배를 팔아 점심시간이면 어딘가에서 담배 피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나와 담임은 점심시간이 없었다.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복지관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아이들을 잡기 일쑤였다. 너무 힘든 하루는 아이들을 언 듯 본 것 같은데도 모른 척 지나가 카페인 충전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술래잡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대안학교에 민원이 들어왔다. 어떤 개량한복을 입은 학생들이(당시 대안학교의 교복이 개량한복이었다.) 자신의 빌라 앞에서 모여 담배를 피워대는데, 냄새 때문에 너무 괴롭다는 민원이었다. 결국 이런 일이 일어나 버렸다.


우리는 주스 한 박스를 사 가지고 민원인을 찾아가 정수리를 보이며 사과를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다른 곳에서 민원이 들어왔고, 또 며칠이 지나면 다른 곳에서 민원이 들어왔고... 아이들을 말릴 수가 없었다.

담임과 나는 또다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결국 아이들에게 점심시간에 필 담배 한 개비씩을 나눠주고 남들에게 피해를 최소화할 장소를 찾아 그곳에서 한 개비씩만 피우게 하기로 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면 음지(?)에 들어가 줄담배는 피우지 않게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한 개비 씩을 점심시간마다 받아갔다. 회색 개량한복을 입고 한 개비씩 받아가는 위험해 보이는 청소년들이라... 멀리서 보면 교도소 같을 수 있겠지만 여기는 학교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 타협했다.


아이들과 실랑이하고 밀당하며 1년이 안 되는 시간을 보내게 되면 졸업을 시켜 원래 다니던 학교로 보내거나 고등학교에 진학시켰다. 물론 여기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일반학교가 아니라서 규율이 없는 게 아니었기에. 어떤 부분은 일반학교보다 더 엄격한 부분도 있어서 적응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교할 때면 오토바이를 타고 붕붕거리며 다니는 아이들을 붙잡고 제발 헬멧이라도 쓰고 똑바로 라도 주행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를 하고(오토바이를 꼭 지그재그로 타려 했다.), 소매치기 사건이라도 발생하면 찾아오는 경찰이 학생을 함부로 대해 지지 않도록 따라다니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여전히 제멋대로 구는 거 같으면서도 결근한 수학선생님을 대신해 수학을 가르치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였던 건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원래 계시던 수학선생님이 좀 지루했나 보다.)


다음 해 스승의 날. 몇몇의 학생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같이 간 빵집에서 자신들이 결석도 안 하고 책도 읽는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건장한 남학생들이 자신이 얼마나 괜찮아졌는지를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데 귀엽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은 대안학교일을 안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었던 학생들의 마음이 생각난다. 처음에 대안학교에 들어올 땐 자신의 인생이 망했다고, 자신은 중학교도 졸업 못할 거 같다 낙담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반에서 반장을 하고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라 주의를 주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은 그 일을 하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남지만, 그래도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 있어 참 마음 푸근한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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