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어학원, 어디를 갸야 잘 갔다고 소문이 날까?
인생은 뭐 하나 쉽게 되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내 삶은 특히 더 그런 듯하다.
2019년 시작한 영어공부를 선두로 약 일 년 뒤인 2020년 7월경 출국하는 것을 목표로 그동안 여러 유학원들과 상담을 거치며 선택지를 좁혀왔다. 그러나 2020년, 때 아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나의 어학연수 계획마저 완전히 무산되었다.
그저 계획만 무산된 거면 타격이 덜하겠지만 이미 어학원에 등록금까지 납부를 해놓은 상태였기에 그 피해가 두 배는 커진 셈이었다.
지푸라기 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며 쉽사리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며 가족들은 하루빨리 유학원에 연락해서 환불을 받으라고 재촉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등록금 사기 이슈도 심심치 않게 뉴스에 보도되고 있었기에 마냥 남의 일 같지 않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유학원에 연락을 취했고, 운이 좋게도 빠른 시일 내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간 어학연수 계획.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를 두고 다시 한번 수많은 선택지 앞에 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의 선택을 믿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그럼 선택을 ‘잘’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직감을 따르고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적어도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얼마나 머물고 싶은지, 왜 가고 싶은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미국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두 도시 LA와 뉴욕. 기후나 체류비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LA가 최상의 선택지였다.
더불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서부행을 택해야 했던 결정적 이유는 때마침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 부부가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어떠한 연고도 없는 나에게 이렇게 아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많은 의지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비행기값, 20대에 두 번 다시없을 인생의 중대한 결정임을 감안하면 6개월 이상 장기 체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가 모아둔 돈으론 택도 없었다. 더군다나 어떤 그림이 펼쳐질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6개월의 등록금을 모두 지불하는 것도 상당히 리스크가 크다고 생각했기에 일단은 다녀보고 결정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단기 어학연수 개념으로 총 3개월간의 체류 기간을 잡았다. 비록 짧다는 게 흠이지만 일일이 대사관에 방문하여 인터뷰를 하고 학생비자(F1)를 발급받는 등 복잡한 준비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에 부담이 덜 하였다.
내가 어학원을 고를 당시 가장 우선순위로 삼은 것은 첫 번째, 한국인 비율.
거금 주고 먼 타지까지 날아가 한국어만 늘어오는 상황은 면하고 싶었기에 최대한 한국인 학생 비율이 적은 곳을 원했다.(이 선택이 나중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꿈에도 모른 채..)
두 번째, 다양한 액티비티
어학연수의 묘미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여행. 수업 외 친구들과 진정한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액티비티 시간이다. 또 이 기회를 말미 삼아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등 주변 도시로 여행도 갈 수 있기에 일석이조인 셈이다.
세 번째, 로스앤젤레스
나의 1 지망은 언제나 LA였다. LA야 말로 완벽한 시티라이프를 추구하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방과 후 삼삼오오 모여 다운타운을 누비며 쇼핑도 하고 밤이 되면 힙한 느낌이 물씬 나는 펍에 들어가 가볍게 술 한잔씩 걸치는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었다.
하지만 당시 팬데믹의 영향으로 LA 부근에 위치한 대부분의 어학원이 폐쇄되어 물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학원의 추천을 통해 샌디에이고와 산타바바라에 지사를 두고 있는 한 어학원을 추천받게 되었다. 이름도 익히 들어봤던 곳이고 어느 정도 규모도 있는 곳이라 좀 더 믿음이 갔다.
그렇게 양 지사의 재학생 비율, 등록금, 기숙사비 등 모든 요소를 비교해 본 후 산타바바라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누군가 나에게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계획을 밀어붙였던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나 자신이 꼭 가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직감이 말해주는 일에는 굳이 “왜? “라는 물음표를 붙일 필요 없이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듯 나에게 어학연수 외에 다른 길은 없었다.
한 마디로, 모 아니면 도로 결정 나는 윷판에 윷을 던진 셈. 그 결과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짜릿함도 무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