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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 lin Jul 10. 2024

미국에서 히치하이킹에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도미토리 탈출 대작전 2

“Are you from Los Angeles?”


폭탄머리에 동그란 실버테 안경, 반팔, 반바지의 편안한 차림을 한 아시안 여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 “No, I’m from South Korea.”


나를 이곳에 사는 사람으로 착각한 듯하다. 보통 아니라고 하면 지나치기 마련인데 역시 스몰토크의 귀재인 미국인답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음 대화로 이어갔다.


물어보지도 않은 본인의 직업, 출신 등을 밝히며 어쩌다 여기에 머물게 되었는지, 얼마나 머물고 있는지를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듣다 보니 내가 아까 주변 투숙객들을 둘러보며 한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대부분 이곳에 장기간 머물고 있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이 여성 포함 서부 출신도 더러 있었다.


이곳을 소개해주겠다며 나를 로비로 안내했다. 주방, 라운지, 생활수칙 등 각가지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지나가던 다른 남성 투숙객이 “Oh, you got a new friend.”라고 하자 멋쩍은 듯이 드디어 나도 친구가 생겼다며 미소를 건넸다.


알고 보니 오랜 시간 친구 없이 꽤나 외로움을 타서 나를 그렇게 반겨주었나 보다.


“Lin, we’re about to leave.”


치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가봐야 한다며 짧은 인사를 건넨 뒤 도미토리를 빠져나왔다.




총 7명이었던 우리는 나, 치키, 다른 친구를 포함한 A팀과 나머지 B팀 이렇게 두 개의 조로 나뉘어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둘과 나의 불협화음은 초장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 팀의 첫 번째 목적지는 할리우드 워크 오브 페임. 관광명소답게 수많은 방문객들로 길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을뿐더러 길거리의 위생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관광객 속 섞여있는 호객꾼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사진 촬영, 초상화 그려주기 등 뻔한 수작으로 호객 행위를 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을 마다하지 않고 족족 말을 받아쳐주는 치키를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영어를 쓰는 미국인이면 목적에 상관없이 대화를 해보고 싶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는 법을 몰랐다.


대충 수박 겉핥기식으로 둘러보며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다음 목적지인 할리우드 사인으로 향했다. 초입을 지나 레이크 할리우드 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7시가 다 되어갔다. 낮이 길어 아직 밝은 편이었지만 더 오래 머물러 있다가는 제시간에 돌아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미 공원에서도 할리우드 사인이 아주 선명하게 보이는 터라 이쯤에서 내려가는 게 어떨지 제안하고자 간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 둘의 고집을 꺾기는 무리였다. 그놈의 인스타 사진 하나 건지려고 사인이 위치한 정상 부근까지 올라갈 기세였다.

출처: 내 갤러리

그렇게 한 여름 뙤약볕 아래 무한 등산이 시작되었다. 7월, 로스앤젤레스의 더위는 저녁이 되어도 가시질 않았다. 발바닥은 후끈해지고 등줄기엔 땀이 줄줄 흘렀다. 체력이 점점 바닥나자 이 둘과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눈치도 없는 이들은 내가 힘들어하며 도대체 언제쯤 도착하느냐고 몇 번을 물어도 조금만 더 힘내라며 미소를 연발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주변에 늘어선 집들을 보며 “Cool!”, “Beautiful.” 등 똑같은 감탄사만 연발하는 모습에 점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느려지는 나의 발걸음을 놀리기라도 하듯 내 옆을 슝슝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부러워 보이긴 처음이다.


정상에 조금 못 미친 지점까지 오자 이 둘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들의 시선이 멈춘 곳으로 눈길을 돌리니 아까보다 10배는 큼지막하게 느껴지는 선명한 HOLLYWOOD 사인이 서쪽으로 지고 있는 노을에 비쳐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때, 와볼 만하지?”


비록 오는 길이 험하긴 했지만 내가 또 언제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을까 싶어 이 장관을 최대한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그나저나 이 친구들 사진에 진심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카메라를 맡겼는데 나름 B급 이상 되는 사진들을 많이 건져주어 뜻밖의 수확을 얻은 기분이었다.


8시가 넘자 조금씩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당연히 철수하고 숙소로 돌아갈 줄 알았던 나는 치키에게 더 늦기 전에 우버를 부르라고 했다. 산에 있던 터라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아 배차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다.


“잡혔다!”


치키가 잡고 있는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자 내 눈앞에 들어온 목적지는 우리의 숙소가 아닌 “Griffith Observatory “


그렇다. 이들에겐 아직 한 발 더 남았다.


순간 벼락 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해졌다. 이미 모든 체력을 다 소진한 것은 물론이고 시간상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야 목사님과 만나 도미토리를 뜰 수 있다.


’ 아니야, 이건 아니야. 난 더 이상 못 가.‘


조금씩 뒷걸음질 치던 나는 전화하는 척 핸드폰을 귀에 대며 무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 모습을 볼 수 없을 때까지 점점 더 멀어졌다. 왜 한마디 말도 없이 도망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그들과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 여행이고 나발이고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혼자 남은 나는 택시를 잡기 위해 우버앱을 켰다.


큰일 났다. 데이터가 안 터진다.


아무리 휴대폰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데이터가 단 한 칸도 터지지 않는다.


한 5분쯤 지났을까, 치키한테서 전화가 왔다.


“린, 어디야? 지금 택시 도착했어! 빨리 와!


나는 얼버무리며 통화를 종료해 버렸다. 바로 문자가 왔다.


“우리 너 기다리고 있어 지금, 빨리 와. 출발한다?!”


- ’ 미안, 너네 먼저 가. 난 약속이 있어서 따로 갈게.‘


’ 너 제정신이야? 여기 우버 안 잡혀.‘


- ’ 미안, 먼저 가.‘


그렇게 일행을 모두 보내버린 채 어둠이 드리워진 산 중턱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혹시 걸어서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더 움직여 보았지만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끝이 없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공포 영화, 귀신이 주는 공포감은 어둠이 주는 공포감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이대로 여기 남겨지면 머지않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이 주변에 사는 이웃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곧바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우버를 잡아야 하는데 데이터가 도무지 안 터지네요.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여성은 곧바로 자신의 핫스팟을 빌려주겠다며 핸드폰을 켰다. 하지만 핫스팟도 먹통이었다.


“어떻게 해야 되죠? 혹시 여기서 출구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인가요?”


-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도움이 못 되어드려 죄송해요. 걱정 마세요. 여긴 주거지역이라 안전해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후 조금만 더 밑으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오래 걸리지 않기는 무슨, 걸으면 걸을수록 빛 한줄기 없는 어둠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 집 문이라도 두드려볼까..?‘


다행인 건 그 여자분의 말처럼 주변이 대부분 주거지이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집주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은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사람처럼 오해받을까 봐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 히치하이킹을 하자. 차 없이는 여기를 벗어날 수가 없어.‘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차라리 시도라도 해보고 후회하자는 생각에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결심했다. 차주가 누구일지는 그저 운에 맡길 뿐이다. 그렇다고 길바닥에 나 앉을 순 없지 않은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힘차게 손을 흔들었지만 무심하게도 휙 지나가 버렸다.


‘첫 발에 성공 할리가 없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로 오는 차량에 다시 한번 있는 힘껏 손을 흔들었다.


멈췄다.


조수석 창문이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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