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린 lin Jul 14. 2024

히치하이킹,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도미토리 탈출 대작전 3

창문이 내려지는 2초 남짓한 시간이 마치 2분 같이 느껴졌다.


모습을 드러낸 운전자는 여성이었다.


‘다행이다. 일단 다행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짧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I’m lost.”

“I left my freind group and.. and.. um.. my phone is not working.”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Get in"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타라고 손짓했다.


"Thnak you"


“어쩌다 길을 잃은 거예요? “


- “친구들이랑 왔다가 저 혼자 빠져나와서 우버를 잡으려고 했는데 데이터가 안 터지더라고요. 정말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어요."


“여기 여행온 거예요?”


- “네, LA는 처음이에요.”


“어디로 가는 길인데요?”


- “숙소가 베니스 비치 쪽에 있거든요. “ ”그냥 여기 벗어나자마자 나오는 도로 아무 곳에나 내려주시면 돼요. 걸어서 내려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


“여긴 절대 걸어서 내려갈 수 없는 거리예요. 차 없으면 안 돼요.”


맞는 말이다. 차로도 한참을 내려가더라. 자칫했으면 산속 미아행이 되었을 것이 뻔했다.


가는 내내 그녀는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나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이거나, 혹은 정말 어쩌다 이곳에서 혼자 히치하이킹을 하게 된 지경에 이르렀는지 호기심에서 나오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젊은 아시안 여성이기에 운전자 입장에서도 조금은 경계를 늦출 수 있어 태워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분 남짓 어둠을 뚫고 내려가자 차가 다니는 도로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 저기 주유소 있는 쪽에서 내리면 될 것 같아요, 여기서부턴 우버 잡아서 가면 되거든요.”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고마운 은인의 이름이라도 기억하고자 조심스레 여쭈어보았다.


- “실비아예요.”


“실비아 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이름이 뭐예요?”


- “린이요”


“천만에요, 조심히 가요, 여행 잘 마무리하시고요.”


연신 감사하단 말을 거듭하며 차에서 내렸다.


산을 빠져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빵빵하게 터지는 데이터, 드디어 사람 사는 세상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외, 그것도 미국에서 히치하이킹에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성공한다 해도 이렇게 선량한 운전자를 만나 아무 탈 없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늘이 도왔다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는 상황 앞에 그저 감사하단 말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11:00 PM


“Bro chill out!”


도미토리로 돌아와 공용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던 중 밖에서 누군가가 격한 몸싸움을 벌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싸워도 하필 샤워실 바로 앞에서 싸우는 바람에 소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었다. 잔뜩 움츠러든 나는 누가 홧김에 문을 열어 버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후다닥 샤워를 마쳤다.


바닥에는 깨진 유리병이 흐트러져 있었고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남성 둘이 친구들에게 제지당하며 씩씩대고 있었다.


‘정말 여길 벗어나기로 한건 잘한 선택이야.’


그다지 좋지 않은 첫인상을 심어준 도미토리는 끝인상마저도 악몽으로 남게 되었다.


20분 뒤쯤 도착한다는 목사님의 연락을 받은 후 침대로 돌아와 후다닥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린, 벌써 가는 거야?”


오전에 마주친 폭탄머리 여성이 짐을 싸는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 “응,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짧은 만남에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연락.. 해도 되지?"


- "그럼 그럼. 만나서 반가웠어. 잘 지내."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불이 꺼진 내부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나는 핸드폰 손전등에 의존한 채 사뿐사뿐 까치발을 들며 조심스레 뒷문을 열고 도미토리를 빠져나갔다.



12:30 AM


희미한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길가, 저 멀리서 검정 SUV 차량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목사님 이게 얼마만이에요! 정말.. 데리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 린아, 얼마만이냐 이게. “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보는 한국인, 처음으로 쓰는 한국어에 반가움과 감격스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안녕 린아"


혼자 오시는 줄 알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뒷 좌석엔 사모님과 곤히 잠든 자녀 둘, 사모님의 여동생까지 탑승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근 6년 만의 만남인 것도 모자라 이 머나먼 타국에서 재회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세요? 말도 마요 진짜.”


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의 야경, 심야 LA의 고속도로는 러시아워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뻥 뚫려있었다.


하루가 이틀 같이 느껴졌던 길고 긴 하루 끝. 무모한 선택의 연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음에 감사하며 하루종일 팽팽히 세워져 있던 긴장의 끈을 서서히 풀었다.



이전 12화 미국에서 히치하이킹에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