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문화는 만국공통?
산타바바라는 내가 꿈꾸던 도시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클럽, 라운지 바 등 흔히 성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자리를 즐기는 그런 제대로 된 장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소문에 의하면 클럽이 있긴 하지만 셔틀버스를 타야 갈 수 있다고 하더라. 굳이 그렇게 애써서 갈 필요가 있을까?
따라서 펍과 클럽 중간 느낌을 최대한 구현한 곳은 기숙사 인근에 위치한 가라오케 유일했다. 처음 ‘karaoke’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라오케라 한다면 흔히 유흥주점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여기에 그런 곳이 있을 리는 만무하고, 분명 노래와 관련된 곳일 텐데 도대체 어떻게 생긴 곳일까, 호기심이 가득해졌다.
입학 3일째인 어느 목요일, 릴리로부터 근처 Rock Fire Grill에서 가라오케 파티가 열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무려 ‘밴딩’까지 필요한 곳이라는 얘기를 들으니 나름 규모도 있고 클럽 비슷한 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기대감이 커졌다.
화장을 하고 있던 중 릴리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 준비 끝. 우리 기숙사 앞으로 와.”
“Hi Lin~ Nice to meet you!”
방 문이 열리자마자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릴리의 친구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 눈을 휘둥그레 해지게 만든 건 이 친구의 피지컬이었다.
185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키에 켄달 제너에 버금가는 길고 쭉 뻗은 각선미가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거기다 몸에 착 감기는 블랙 미니 드레스에 힐까지 신어 체감상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친구가 남자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이태원에 가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 성소수자를 마주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지만 서양에서는 완전히 얘기가 달랐다. 확실히 우물 밖을 나와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진다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해외 생활만큼 도움 되는 건 없는 듯하다.
이 친구의 이름은 캔디, 벨기에 출신이다.
“벨기에 사람들도 불어를 써?”
모두 프랑스어 소통하는 것을 보고 궁금해진 나는 캔디에게 질문했다.
- “응. 공식 언어 중 하나야. 프랑스어를 쓰는 지역이 따로 있어. “
“그렇구나.”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언어가 통한다는 건 그만큼 외로움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이곳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나에겐 그저 그림의 떡 같은 상황이었다.
유흥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술, 알코올의 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국에서는 술집 안에서 얼마든지 다양한 술을 즐길 수 있지만 이곳에선 한정적이었다. 특히 가라오케는 맥주가 유일했기에 취향이 아닌 사람들은 밖에서 술을 사 먹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던 중 발견한 우리의 구세주, 리큐어 스토어. 내가 이곳에서 애정하는 장소 중 하나다. 국내에선 구경하기 힘든 형형색색 다양한 종류의 술병들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 감탄을 금치 못한다.
“술 셔틀”이라고 들어는 봤나? 나를 제외한 친구들, 아니 파티에 가는 어학원생들 대부분은 21세 미만이기에 술 구매가 불가능하다. 한 번은 내 앞에 계산 중이던 20살 어학원 남학생이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주인의 요구에 마지못해 여권을 내밀자 그대로 쫓겨났던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다. 따라서 리큐어 스토어 앞은 매일 밤마다 어학원생들로 시끌벅적했지만 상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은 몇 안 되기에 막상 안은 텅텅 빈 채 고요함만 감도는 신기한 현상이 발생했다.
그렇게 무리 중 유일한 21세 이상 멤버인 나는 자연스레 주류 구매 담당이 되었다. 인당 10불씩 돈을 걷어 간단히 마실 수 있는 양주 미니어처 한 병씩을 사 오면, 다 함께 한 병씩 들이킨 후 목적지로 향하곤 했다.
가라오케 앞은 입장을 대기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린 후 문 앞 직원에게 예약 코드를 내밀자 직원은 오른쪽 팔목에 초록색 밴딩을 채워주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내가 예상한 그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왼편엔 주방과 주문을 받는 카운터가 놓여있었고 맨 끝 부분에는 노래 가사가 나오는 거대한 스크린에 무대에는 스탠딩 마이크 두 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렇다. 공공 노래방이다. 입장객들 중 원하는 사람 아무나 무대 위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고, 무대 밑 사람들은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거나 따라 부르는 그런 시스템이다.
노래를 부르는 곳이라는 점은 예상하고 갔지만, 정말 아무나 올라가 남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곳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국의 노래방 문화처럼 일반이나 코인 노래방 등 오직 일행들끼리만 밀폐된 공간에서 즐기는 그런 형식이 아닌 이렇게 퍼블릭한 장소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문제는 가창력이 좋은 사람만 올라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노래를 못해도 목청이 좋거나 흥을 돋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라가 마이크를 잡을 수 있기에 듣는 사람들의 고막은 보장되지 않았다. 덕분에 부장님들과 회식 온 일개 회사원이 된 듯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런 그림이 익숙한 듯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몸을 흔드는 친구들, 그 사이에서 당장이라도 경련이 일 듯한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뚝딱거리고 있는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가 빨리던 나는 슬며시 친구들 틈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갔다. 얼마 안 되어 뒤 따라 나온 캔디와 다른 친구들, 다들 딱히 이런 곳엔 흥미가 없는 듯해 보였다.
“우리 애프터 갈까?”
릴리의 입에서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 이 정도 웜업이면 충분하잖아?”
죽상이었던 내 얼굴에 급격히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Let’s go!”
우버도 없이 숙소까지 족히 20분은 걸어가야 된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우리는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신나게 즐겼다. 술기운의 힘을 빌려 미국인들한테 스스럼없이 말도 걸고, 모르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양 같이 사진을 찍는 등 내일이면 “누구세요?”를 시전 할게 뻔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비틀비틀 거리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한 귀갓길, 서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고 있긴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말들이 오가지만 그저 곁에 함께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든든하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