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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 lin Jun 30. 2024

미국 파티에 관한 모든 것

테킬라, 파티, 그리고…

어학원생들의 최대 관심사는 공부도 여행도 아닌 파티다. 숱한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봐왔다면 한 번쯤은 미국의 파티 문화를 몸소 경험해 보고 싶었을 터,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25살, 한창일 나이 아닌가? 단언컨대 미국의 파티는 한국과는 스케일,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이제부턴 내가 겪었던 모든 파티 문화를 낱낱이 소개한다.




요트파티


첫 수업날 전달받은 수업 시간표 중 내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금요일의 '요트파티'였다. 한국에서는 드물고 쉽게 경험하기도 어려운 문화라 항상 미디어를 통해서만 간접 경험하곤 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다가오니 들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기숙사로 돌아와 부랴부랴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캐리어 속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비키니를 깨워 슬며시 가방에 넣어주었다. 그 밖에 선크림, 선글라스, 물 등 각종 필수품들을  챙긴 후 릴리와 함께 택시를 타고 해변으로 향했다.


요트파티까지 몇 시간 여유가 있었기에 우리는 해변에서 썬텐을 즐기다가 가기로 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살피던 중 저 멀리서 비치볼 게임을 하고 있는 남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진정한 미국 해변의 모습이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내가 미드에서 본 요트파티는 각자의 개성이 담긴 비치룩에 샴페인을 들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덱(deck)에 누워 선탠을 즐기는 등의 모습이었지만, 대부분이 미성년자인 어학원에서 그런 장면을 기대하는 건 어려웠다. 심지어 알코올이 금지되어 있어 오직 음악과 춤만이 공존하는 담백한 파티였다.


건전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잘 즐기는 척을 할 수 없을 것 같던 나는 편의점에서 셀처(seltzer) 한잔을 사서 들이킨 후 탑승했다.

요트는 전교생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덕분에 층마다 이동이 자유로웠고 앉는 좌석도 많았다. 선내에는 잔잔하면서도 적당히 템포 있는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팝, 힙합, lo-fi 등 여러 장르가 믹스된 거 보니 이건 그냥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트는 게 아니라 누가 직접 음악을 틀고 있다는 생각에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나섰다. 메인 덱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하와이안 셔츠에 선글라스를 낀 남학생이 리듬을 타며 디제잉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에 옅게 퍼진 미소가 돋보였다.


그다.


엊그제 나에게 인사조차 안 했던 그 이탈리아 남자.


‘뭐야, 디제잉도 할 줄 알아?’


예상치 못한 정체에 다소 놀라긴 했지만 노래만 맛깔나게 틀어준다면 아무 불만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해질 무렵 요트파티는 환상이었다. 바다 한가운데를 가르 지르는 요트에 따라 얼굴에 부딪히는 시원한 바닷바람, 무리 지어 있는 물개들, 지평선 너머로 지고 있는 황금오렌지빛 노을… 나는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던 카메라를 내리고 이 멋진 광경을 최대한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며 절정에 이르자 한 소절만 들어도 딱 아는 드레이크, 트래비스 스캇 등 유명 가수들의 노래가 하나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빨라지는 템포에 몸을 흔들지 않고선 못 배기는 듯했던 릴리는


“린, 우리 가서 춤출래?”


맨 정신에 춤추는 게 아직은 어색했던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스테이지로 향했다.


디제이 부스 앞에는 이미 열댓 명이 모여 음악에 맞춰 살랑 사랑 춤을 추고 있었다.


‘이럴 거면 한 두 캔 더 마실걸.’


외국인들은 어쩜 저리 흥이 많을까? 새삼 부러워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애써 술기운을 빌릴 필요 없이 언제든 음악과 분위기만 맞춰지면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그런 흥을 가지고 싶지만 아직까지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고선 불가능했다.


무대 정중앙은 부담스러웠던 나는 최대한 아이들의 시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쪽으로 릴리를 이끌었다.


‘안되면 척이라도 해야지.’


목석처럼 가만히 멀뚱멀뚱 서있는 그런 놀 줄 모르는 인상을 비추기에는 또 자존심이 상했던 나는 릴리와 적당히 눈을 맞춰가며 최대한 분위기에 맞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이곳에 와서 새삼스레 느낀 점 중 하나는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여기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각보다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 점만 생각하면 굳이 남의 눈치 보며 이 소중한 순간을 제대로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춤추는 아이들 틈 사이로 금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열심히 디제잉을 하는 이탈리아남이 보인다. 비트에 맞춰 상체를 흔들며 장비를 만지작하는 모습이 의외로 어색함 없이 잘 어울렸다.


음악, 분위기, 함께하는 사람,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 살면서 몇 안 되는 희귀한 순간이지만, 오늘만큼은 그 특별한 순간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하우스 파티


미국의 파티는 그야말로 와일드(wild)했다. 기숙사 근처에 산타바바라 대학교(UCSB)가 있었던 탓에 매주 금요일이 되면 대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거리를 가득 메웠다. 파티는 ISLA VISTA 곳곳에 위치한 집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집주인들의 재량에 따라 매번 열리는 곳이 바뀌므로, 친구들에게 물어물어 정보를 캐내거나 그저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파티로 향하는 학생들로 가득 메워진 밤거리는 마치 이 동네 젊은이들은 모두 총집합한 듯 와글바글 했다. 이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이미 파티에 온 듯한 뜨거운 열기가 가득 느껴졌다. 그중에는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이성을 꼬시기 위한 목적이 다분한 남자들도 있었는데, 언제는 한번 파티로 향하던 중 세명의 무리가 다가와 나와 내 친구의 걸음을 막아선 후 “나랑 키스할 사람?” 이렇게 대놓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또 누군가 음악을 빵빵하게 틀며 차를 몰고 나타나면 사람들은 차 뒤를 졸졸 따라가며 문이 열린 창틀에 매달리거나 루프에 올라타는 등 마치 힙합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연상 시는 모습도 빈번히 목격할 수 있었다.


파티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바로 경찰이다.


주변 이웃들의 민원이나 여러 가지 규정으로 인해 정해진 시간을 넘겨 파티를 하는 곳이 적발되면, 순찰 중인 경찰이 다가와 모두를 해산시켰다. 그렇게 쫓겨난 이들은 주변을 서성거리다 누군가가


“90283! 90283!”


이렇게 아직 파티가 열리고 있는 곳의 우편번호를 우렁차게 불러주면 다들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정말 날것의 방식이었다.


한 번은 꽤 규모가 큰 파티에 갔던 적이 있다. 집보다는 맨션에 가까울 정도의 큰 파티였다. 기숙사를 연상시키는 3층으로 이루어진 맨션에 뒷마당은 족히 5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그동안 다녔던 파티와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에 입이 떡 벌어졌고, 각 층마다 위치한 방에서 저마다 서슴없이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음악 페스티벌에 온 듯 발 디딜 틈이 없어 나와 친구들은 3층으로 향했다. 그마저도 통로가 좁아 난간을 꼭 붙잡으며 몸을 밀착시켜야 했다.


그저 디제이가 트는 음악에 맞춰 몸만 흔드는 파티를 연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몇몇 남자들은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듯 난간에 매달려 1층에 있는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마치 콘서트에서 가수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열창하다 마지막에 뒤로 떨어지면 스탠딩석에 있는 관중들이 받아내는 그림을 연상시켰다. 보기만 해도 손에 땀이 쥐어졌다. ‘저러다 난간이 부서지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안 받아주면?’ 내 안 가득한 불안감으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도착한 지 20분도 채 안 돼 기가 빨린 나는 숨을 좀 돌리고자 친구 무리를 벗어나 1층으로 내려갔다. 밖으로 나가려고 정문으로 향하던 중 이탈리아남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동안 파티에서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던 터라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는 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나를 빤히 응시하기만 했다.


망설이는 사이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던 나는 그냥 모른 척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밖에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복작거렸지만 하늘을 찌를 듯 쿵쿵대는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샤우팅에서 벗어나니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참, 노는 것도 일이다.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여태까지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기느라 일이라는 걸 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땅에 오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 듯 모든 것이 새롭다 못해 어색하게 다가왔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사람은 적응동물 이라잖아?'


애써 나 자신을 달랬지만 이런 스타일의 유흥은 평생 적응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피어났다.


근처 벤치에 앉아 쉬던 중 어떤 한 남자가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혹시 나 번호 좀 물어봐도 될까?”


헬스 트레이너를 연상시키듯 우람한 덩치에 큰 키, 짧게 깎은 머리에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내 타입은 아니지만 나중에 LA에서 혼자 지내게 될 상황을 생각하면 미국인 한 명 정도는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에 번호를 넘겨주었다.


“고마워,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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