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쩍쩍 갈라져 있는 모습을 보니 꼭 물을 달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B-612' 사람들은 이틀에 한 번씩 국가에서 제공해주는 PUB 지하수와 마을 곳곳에 우물이 있기에 물 걱정이 별로 없겠지만 나는 PUB도 없고 우물도 없다. 그나마 두 개 있는 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덩치만 크고 속은 빈 물탱크 덕분에 당장 쓸 물도 부족한 상황이다. 항상 위기였지만 이번에는 진짜 역대 최고 위기다. 그제 밤늦게부터는 물탱크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 몇 방울만 쫄쫄쫄 나올 뿐이었다. 덕분에 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분명 물이 반밖에 차 있지 않은 컵인데 어찌나 무거운지 컵을 들어 입까지 가져가기가 힘들다. 목을 축이기 위해 최소 열 번은 인내하는 것 같다. 매일 앞집 우물에 가서 직접 손빨래를 하고 있으며, 물을 아껴 쓰기 위해 1.5L의 물로 샤워, 샴푸, 세안, 양치까지 다 하고 있다. 설거지도 제대로 못 해서 그릇과 조리도구의 위생을 장담할 수 없고, 최소한의 물만 써서 요리해야 하는 등 모든 것이 불편하다.
물부족은 더이상 나만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머지않아 마을 곳곳의 우물마저도 곧 바닥이 드러날 것 같다. 두레박을 던지면 두레박 끈이 팽팽해질 만큼 떨어지고나서야 물에 닿는 소리가났다. 우물의 바닥이 드러날수록 마을사람들의 바닥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물에서 물을 뜨는 나를 보며 언짢은 표정을 한채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물부족 이슈는 범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되어 정부에서는 아예 화물선 한척을 할애하여 대량의 물을 수입해 들끓는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자 애썼다.
예로부터 물을 구하는 것은 인류 역사를 결정짓는 중대한 투쟁이었다. 강이나 호수 같은 지표수 근처에 정착한 문명은 번창했고 그렇지 않은 문명은 사라졌다. 현재에도 세계 인구의 90%는 담수원으로부터 10km 이내에 거주하며, 덕분에 10명 중 7명은 언제 어디서든 수도꼭지만 틀면 원하는 만큼 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담수로 활용할 수 있는 비와 눈의 양은 줄고 있지만, 물 소비는 7배나 증가했다. 과학자들은 2040년이 되면 대부분의 국가가 대체할 수 없는 자원 중 하나인 물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리라 전망한다. 물에 값을 매기게 되면 소비재의 가격은 폭등하고 다수의 산업은 붕괴될 것이다. 물로 인한 분쟁이 세계 여러 곳에서 끊이지 않을 것이며 많은 이들이 갈증에 허덕일 것이다. 물이 충분할 거라고 생각해서 물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고 쉽게 낭비했다. 물의 결핍을 몸소 겪으면서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음을 느낀다. 그동안 가볍게 틀어 흘려보냈던 수많은 물이 이 땅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 혹은 어디에서도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워진 미래에 살 수도 있는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라는 경각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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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어두운 우물 속에 두레박을 던져 물을 길어내다 문득 쭈그려 앉아 물을 퍼내고 있는 내 모습이 깊은 어둠에서 희망을 길어내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만나 깊은 어둠에 빠지게 되면 마음에 절망이 찾아온다. 이때 덥석 절망을 받아들이면 절망을 생각하고, 절망을 말하고,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똑같이 절망이 찾아와도 절망을 반격하고 희망을 받아들이면 희망을 말하고, 사고하고, 도전하게 된다. 똑같은 상황에서 절망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희망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절대 같은 결과를 낼 수 없다. 현대 그룹의 창업주이자 초대 회장이신 故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모든 일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다. ...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드시 해낼 수 있다. 다시 한번 서류 검토를 해다오.’
그 무엇도 마음을 가둘 수 없다. 마음은 시공간과 실제라고 자각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마음은 지금 당장 초등학생 때로 갈 수도 있고 미래로 갈 수도 있으며, 지금 당장 한국에 갈 수도 있고 미국에 갈 수도 있다. 그 어떤 불행한 조건 속에서 마음은 행복할 수도 있고 행복한 조건 속에서 불평할 수도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했다. 사막을 여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아버지는 이미 몇 차례 사막을 여행한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예정보다 여행이 길어졌고 몇 날 며칠을 걸어도 사막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지치고 불안해하는 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이야기하며 끌어주었고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힘을 내 걸었다. 그러나 며칠 후 부자(父子)는 사막에서 무덤을 발견하였고 아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나는 이제 여기서 죽는구나!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여기서 허무하게 죽는구나! 아버지 우리는 이제 끝이에요. 우리가 집에 돌아가지 못하면 엄마랑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러나 아들과 다르게 아버지에게서는 절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들아 우리는 이제 살았다!”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우리도 저 사람처럼 죽고 무덤에 묻히게 될 거예요!”
“그렇지 않다 아들아. 생각해보거라. 죽은 사람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들어가서 다시 흙을 덮을 수 있니? 절대 그럴 수 없다. 반드시 묻어준 사람이 있어. 무덤은 마을 근처에 만드는 법이다. 무덤이 있다는 것은 이 근방에 마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들아 드디어 이 여행의 끝이 보이는구나!”
아버지의 말을 들은 아들의 마음에도 희망이 만들어졌고 그제야 웃을 수 있었다. 얼마 후 부자는 사막 끝에 위치한 마을에 도착했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다. 똑같은 상황에서 죽음을 품으면 슬픔, 원망, 후회만 보여 결국 죽음이 찾아온다. 그러나 희망을 품으면 그 모든 상황을 뒤집어버린다. 마음은 평범함을 위대함으로 만들기도 하고, 절망에서 희망을 보게 한다. 마음에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져 결국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긍정을 말할 것인지 부정을 말할 것인지는 각자의 자유지만, 그 선택에는 결과와 책임이 따른다.
물이 반밖에 차지 않지만, 그럼에도 다시 두레박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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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집 우물에 자주 가다 보니 마틴 아저씨랑 친해졌다. 언제나 물을 뜨고 있으면 밝게 인사해주시고 가끔 빵도 주신다. 분명 평범한 버터를 바른 평범한 빵인데 맛은 평범하지 않다.
얼마 전까지 'N'의 바나나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오신 아저씨는 한쪽 발을 저셨다. 가족의 삶은 아저씨가 타지에서 느꼈을 외로움과 고단함에 비례했다. 빵 굽는 오븐도 마련할 수 있었고, TV와 라디오도 있었다. 아저씨의 거친 손과 대조되는 어린 아들의 고사리 같은 손에는 항상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장난감 로봇이 들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