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06 / 알코올 중독자 할아버지

by BO

기지개를 켜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무려 무지개 네 개가 동시에 떠 있었다. 붉은색에서 보라색까지의 색들이 나란히 줄지어, 마치 하늘이 거대한 캔버스인 양 선명하게 펼쳐져 있었다.

“무지개 하나도 보기 힘든데 네 개나 보다니!”

입을 벌린 채 중얼거렸다.

나는 마치 특종이라도 마주한 기자처럼 카메라를 꺼내 들어 사진을 찍었지만, 안타깝게도 눈으로 보는 것만큼 선명하지는 않았다. 사진 속의 무지개는 희미하게 흐려져 있었다.

무지개는 나에게 있어 전해 내려오는 전설 속 존재와 같았다. TV와 책으로는 여러 번 그 영롱함을 접했지만, 한 번도 직접 마주한 적이 없었기에 '무지개가 실재하기는 할까?' 하는 의문 아닌 의문을 가졌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으로 기억한다. 친구들과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저 아파트 너머에 무지개가 떴다고 소리쳤다. 우리는 일제히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드디어 무지개 다리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우리는 곧바로 축구공을 버려두고 무지개를 향해 달렸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고,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손을 뻗으면 곧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달리다가 힘들면 잠시 걸으며 숨을 골랐다가 다시 달리기를 반복했다. 땀이 얼굴을 타고 흘렀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얼른 다다르고싶은 내 마음과는 다르게 어느샌가부터 다가갈수록 무지개가 서서히 옅어져 가기 시작했다. 더 옅어지기 전에 빨리 도착해서 하늘에 조금이라도 올라가야 했다. 더는 못 달리겠다고 포기하는 친구들을 독려할 시간도, 정신도 없었다. 그냥 미친듯이 달렸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런데... 그런데 무지개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잠깐 구름에 가려졌을 거야.'

계속 달려야 했지만 목적지를 잃으니 달릴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에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서 두리번거렸으나 하늘 어디에서도 무지개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날의 아쉬움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시간이 흘러, 무지개를 좇았던 그 아이는 청년이 되었다. 이제 무지개가 아닌 행복을 좇아 'B-612'에 왔다. 부디 행복은 무지개와 같이 그 모습을 감추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째깍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오후였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마당에 들어와 양동이를 가지고 나가고 있었다. 순간적인 불길한 예감에 급히 뛰어나가 양동이를 잡아챘다. 코를 찌르는 술 냄새가 확 풍겨왔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할아버지를 노려보았다. 며칠 전부터 마당에 두었던 물건이 하나둘 사라졌었기에 그를 추궁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며칠 전부터 사라진 물건들도 당신이 가져갔어요?"

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네, 술 사려고 그랬어... 정말 미안해..."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나직했고, 눈에는 후회의 빛이 서려 있었다. 물건을 판 가게로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되찾은 것으로 일단락되긴 했지만, 할아버지는 가게 주인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필두로 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의 얼굴에는 굴욕과 슬픔이 교차했다.

누군가 말해주길 그 할아버지는 항상 술에 취해 있고, 자주 물건을 훔치기에 오래전부터 사회에서 따돌림당하고 있다고 했다. 'B-612'는 면적이 작고 인구가 적기 때문에 순식간에 전국에 소문이 퍼진다. 할아버지는 어떤 힘든 일이 있기에 손가락질당할 것을 알면서도 매일 술을 마시는 걸까. 모두가 그토록 친절한 이웃이지만 동시에 그 품에 자와 저울을 들고 있어 정량에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등을 돌려버린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다른 이를 판단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 판단을 피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내가 하는 모든 판단은 반드시 내게도 적용되며 나를 조여올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쉼이 없는 가짜투성이. 그렇게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무수한 조각으로 나뉘어 각각의 고립된 숨 막히는 밀폐 공간이 되어간다. 바닷물을 마시면 오히려 탈수증세가 나타나듯 사람들 틈에 있어도 오히려 외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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