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사의 직업병
세상 모든 일에는 직업병이 있다.
삶의 많은 시간을 한 가지 일에 쏟아서 생긴 실제 통증이나 질환은 물론 습관화되는 버릇도 직업병이라 부른다. 단순하고 별 거 없어 보이는 아르바이트라도 직업병은 생긴다. 아마 번역사의 직업병에 있어 가장 흔한 의문이라면 바로 이것일 터다. 번역 일을 하는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바로바로 머릿속에서 번역이 될까?
나는 사실 좀 그런 편이다. 모든 문장이 그렇지는 않다. 일상적이고 흔한 표현은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영어 그대로 듣는다. 그렇지만 이따금 꽂히는 문장이 있다. 번역문이 바로 머리에 떠오르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괜찮은 번역이 될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도 한다. 한국어 자막을 보게 되면 내 머릿속의 번역문과 비교할 수도 있다. 자막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장 동료들에게 이야기하며 불만을 늘어놓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번역이 될지 의견을 내 놓을 때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번역이 마음에 들면 기억해둔다. 나중에 비슷한 표현이 나왔을 때 번역한 방식을 흉내 내서 써먹으려는 속셈이 있을 때도 있고, 순수하게 좋아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도 있다.
동료들 중에는 영상을 볼 때 전혀 의식하지 않아서 별로 그런 일이 없다는 이들도 많다. 그냥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사실 한국어 자막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보통은 한국어로 번역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른다.
극장에 갔을 때에는 보고 싶지 않아도 한국어 자막이 달려 있지만 그 때 외에는 번역 자막을 볼 일이 별로 없다. 한국어 자막을 깔고 보면 공부가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너무 많은 생각이 든다. 눈으로 화면을 통해 인물과 상황을 파악하면서 귀로는 영어 오디오를 듣고, 또 시선을 내려서 한국어 자막을 보면 그 번역에 대한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작품 감상에는 방해가 된다.
그리고 사실 영어와 한국어는 그 결이 너무 다르고 의미가 1대 1로 대응하지 않는 언어쌍이다. 그래서 무난하거나 잘 된 번역이라 해도 영어 원문의 느낌과는 그 톤이나 뉘앙스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미묘한 이질감이 든다. 영어 본연의 뉘앙스를 알고 있기 때문에 번역문의 품질과 별개로 한국어 자체가 거슬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은 영어로 된 영상을 볼 때 자막을 아예 끄거나, 내용이 어려운 경우에는 영어 자막만 켠다. 법정물이나 병원을 배경으로 한 시리즈에는 자막이 없으면 어려운 게 많다.
영어로 된 영상물이 아니라 해도 독일이나 프랑스, 스페인어권, 스칸디나비아어권 등 서구권의 콘텐츠라면 영어 자막을 달고 본다. 똑같은 외국어라 해도 한국어보다는 영어와 사이가 가깝기 때문에 오역이나 문화적 괴리가 덜할 것이기 때문이다. 듣다 보면 영어와 비슷한 단어가 종종 들리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권 언어라면 물론 한국어 자막으로 보는 것이 낫다.
이런 건 직업병이라기에는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번역을 시작하고 나서 생긴 행동 패턴이기는 하다.
그 외에는 외국 브랜드 상품의 광고를 보면 원문이 뭘까 궁금해 하는 때가 가끔 있고, 외국 게임을 할 때에도 번역을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한국어로 게임을 하다가 번역이 너무 이상해 영어로 다시 플레이해본 뒤, 앱스토어 평점 란에 번역이 이상하다고 리뷰를 작성한 적도 있다. 그 게임의 경우는 한국어로 플레이했을 때와 영어로 플레이했을 때의 경험이 너무 달라서 완전히 다른 게임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것 외의 직업병이라면…손목이 자주 아프고 코어가 안 좋으며 어깨가 자주 뭉치는데다 거북목에 안구 건조증이 있다. 사무직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떼 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운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