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만의 언어
번역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언어란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이런 식으로 언어를 구분하지만 사실 언어란 개개인마다 쓰는 용법이나 어휘가 다르다. 컵에 물이 반이나 차 있네, 반밖에 없네 하는 식의 긍정 또는 부정 표현 방식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다리에 찌르르한 느낌이 날 때 이것을 '쥐가 난다'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저리다'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는, 표현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다.
찌르르한 느낌이 드는 증상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쥐가 난다', '저리다' 중 무엇이 올바른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사전적 정의가 어떻든 누군가에게는 그 증상의 정의가 '쥐가 나는' 것일 터이고, 누군가에게는 '저리는' 것일 터이다. 사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기에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판가름할 수 없다. 그 사람 몸에 들어가서 느껴본다는 건 어쨌든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니까.
결국 우리가 가진 언어로는 그 느낌이 '찌르르하다', '전기 흐르는 느낌' 정도로밖에 표현이 안 되지만 그것이 모두 같은 느낌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막연히 그렇겠거니 짐작하는 것일 뿐.
같은 예로 대학생 시절 하던 토론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가 있다. 그 모임에는 교수님과 알고 지내던 의사 한 분도 함께 참여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해주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 환자들마다 증상에 대해 설명하는 언어가 모두 달라서 동일한 증상이라도 사람마다 표현하는 방식이 가지각색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증상인지, 어떤 기전일지 판단하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되는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하긴 그러니 오진을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일 터다.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로 잘 번역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며, 더군다나 그 사람의 언어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영 딴판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비슷한 사례로 아마 많은 사람들이 친구나 연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집집마다 쓰는 표현이나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챈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금 떠오르는 건 어린 시절 친구네 놀러갔을 때, 우리 집에서는 ‘밥 먹기 전에 손 씻고 와’라고 하는데 그 친구네 부모님은 ‘밥 먹기 전에 손 닦고 와’라고 하셔서 생경해 했던 기억이 난다. 내게 ‘닦는다’는 동사는 물로 손을 씻을 때는 쓰지 않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어릴 적에는 부모의 언어에 영향을 많이 받겠지만 학교에 들어간 뒤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직장 문화에 편입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하면서 개인의 언어도 점점 변화할 것이다. 그러니 결국에는 나와 부모의 언어, 형제의 언어도 모두 달라진다. 외국어니 방언이니 나누기 이전에 사실 모든 인간이 모두 조금씩 다른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얼마만큼 열어 보이느냐,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원활한 소통을 깊이 있는 수준으로 해내려면 궁극적으로 상대의 언어에 대해 파악해야 한다. 나는 A를 A-로 말한다고 해도 상대는 A+로 말할 수도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가가 아니다. 나는 A-이고 상대는 A+임을 아는 것 그 자체다. 그래야 그 간극을 인지하고, 그 다음으로 이해와 배려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들의 언어를 모두 익힐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냥 '번역'만 잘 해내면 되는 거다. 쉽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