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28화 - 동상이몽

by 팬터피


**달수의 집**


그는 바로 수화기를 들어 츠즈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번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정보인 다물단의 본거지를 바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쌍한 놈들. 스스로 무덤을 파는지도 모르고 애국이랍시고 떠드는 꼴이라니··· 죽어서도 너희 스스로를 원망하거라.’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


그런데, 그때 화분 쪽을 보며 마치 무슨 말을 들은 듯 환하게 웃더니 고개를 돌려 말을 했다.


"뭐?? 오호!! 이번에는 뭐라도 먼저 받으라고? 그래, 맞아. 놈들 은신처를 알려주는 건데 순사 자리라도 받아야지. 그래, 그래."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바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떤 자리를 달라할지 단꿈에 젖어 세상 행복하면서도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경찰서**


“여보세요.”


울리는 전화를 받으려 수화기를 들었지만 상대의 답이 없자 다시 내려놓은 츠즈키 역시 싱글벙글이긴 마찬가지였다.


며칠만 지나면 김좌진을 잡을 수 있고, 만두집 사장도 자신이 놓은 덫에 걸려드는 중이다. 거기에 대련 테러범도 한 놈만 찾아내면 바로 체포 가능하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다. 이번 건만 끝나면 서장보다 더 위를 노려도 되겠어.’


그렇게 실실 웃고 있는데, 순사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경감님, 누가 찾아오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눈을 들어 순사 뒤를 보니, 관동군 헌병대 장교 복장을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키가 컸고, 어깨가 다른 이의 두 배는 될 정도로 넓었다.


옆에 있는 순사가 작은 키가 아닌데도 초등학생 정도로 보일 정도로 압도적인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격식을 차려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츠즈키 경감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반갑습니다. 전 대련에서 온 타케루 중위입니다. 요 앞전에 통화를 했었는데 기억나십니까?"


달수 놈에게 처음 대련 테러범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츠즈키는 대련에 신고 전화를 했던 것을 간신히 기억해 냈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신고를 했던 건데, 막상 이렇게 대련에서 헌병대가 찾아오니 뭔가 자신의 공을 가로챌 것만 같아 귀찮아졌다.


"네, 기억하고 말고요. 진짜 이렇게 오실 줄 몰랐습니다."


"그 테러범들은 우리 총독님을 노린 1급 범죄자들입니다. 아무리 멀다 해도 잡을 수만 있다면 와야죠."


"네, 먼 길 오시느라 여독이 쌓이셨을 텐데 이 근처 제일 좋은 호텔을 잡아드릴 테니 우선 짐부터 풀고 나오시죠."


츠즈키의 말에 이 거인 같은 헌병은 그를 한참 노려봤다.


"괜찮습니다. 용의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제가 그놈들 얼굴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바로 보면 그놈들이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덩치로부터 오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위축되어 츠즈키는 하마터면 그 테러범들의 위치를 바로 알려줄 뻔했다. 그러나 이건 그에게 달린 일생일대의 기회이기에, 아무리 괴물 같은 놈이 협박한다 해도 이 절호의 기회를 빼앗길 수 없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바로 확인하러 가시죠. 근데 안타깝게도 아직 한 놈만 찾아낸 상태입니다. 그놈은 시내의 식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아직 다른 한 놈은 못 찾은 상태입니다."


"그럼 우선 한 놈 먼저 잡고 탈탈 털어보면 되겠네요."


츠즈키도 이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만두집 사장 문제와 김좌진이 오는 것 등 엮여 있는 것들이 있다 보니, 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처리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에 무리를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놈이 범인이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나머지 한 명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놈들 대부분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지 불로 지지고 손가락을 부러뜨리며 죽이겠다고 협박을 해도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이런 불확실함 속에서 나머지 어항 속에 들어온 나름 확실한 물고기까지 도망치게 두고 싶지 않았기에 우선 조심히 지켜보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와 물을 흐리려 하는 게 츠즈키는 못내 불만이었다.


"네, 그러셔도 됩니다. 다만, 저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아시다시피 이놈들 입이 여간 무거운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선은 조금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가요? 저한테는 바로 조잘조잘 잘 불어대서 잘 모르겠습니다. 나약하고 의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게 조센징 놈들 아닙니까?"


"네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럼 어서 앞장서시죠."


"네··· 그럼 따라오시죠···"


츠즈키는 이 대화가 마치 벽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헌병은 말이 통하지 않는 무자비한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설득을 포기하고 그를 그냥 만두집으로 안내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남의 구역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건가?"


츠즈키가 말이 통하지 않는 중위를 데리고 경찰서를 나서는 길에 서장이 방에서 나와 짜증 섞인 말투로 소리를 질렀다. 타케루는 무심한 듯 고개를 돌려 서장 쪽을 바라봤다. 그의 키와 분위기에서 오는 무게감에 서장은 잠깐 살짝 위축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서장님. 미리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총독님께 못된 짓을 한 놈을 빨리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깜빡했습니다."


"그럴 수 있죠. 괜찮습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서 그놈부터 잡아오겠습니다. 그 후에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내 방으로 와서 이야기 좀 하고 갑시다. 오래 안 걸릴 겁니다."


딱 이 말만 남기고 서장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타케루는 경감을 한 번 쳐다봤고, 그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자 잠깐 서 있더니 서장실로 바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츠즈키도 따랐다.


"여기 앉아요. 츠즈키 경감도 잠깐 앉게."


이미 자리에 앉아 있던 서장이 둘에게 자리를 권했고, 그 요청에 따라 둘은 서장 앞쪽에 나란히 앉았다.


"혹시 무슨 일이십니까?"


자리에 앉자마자 타케루가 서장에게 물었다.


"음··· 돌려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그 테러범을 잡는 걸 일주일만 늦춰주시오."


타케루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그래야 하죠?"


“십 년쯤 전에 간도 지방에서 우리가 조선 놈들과 전쟁에서 크게 패한 적이 있네. 그때 총사령관이었던 놈 중 하나가 조만간 이쪽에 올 거란 첩보를 입수했네.”


“누구죠? 홍범도?”


“아니, 김좌진.”


그의 이름을 듣자마자 타케루는 움찔했다. 어떤 표정이라곤 없을 것만 같은 사람이 얼굴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그의 존재는 일본군에게 치욕 그 자체였다.


“잘 알겠지만, 조센징 놈들은 이놈을 영웅이라 칭송하고 있소. 그리고 북간도 쪽에 이놈이 거느리는 독립군의 규모도 상당하고.”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꼭 그를 체포했으면 하오. 이런 기회가 흔치 않거든.”


“그런데 제가 테러범을 잡는 것과 이게 무슨 상관입니까?”


이렇게 말하곤 타케루는 경감 쪽을 바라봤다. 서장이 자신을 도와주고 있어 속으로 웃고 있던 츠즈키는, 갑작스레 헌병이 자신과 시선을 맞추자 혹시나 자신의 속내가 표정에 드러났을까 싶어 표정을 싹 바꿨다.


“아무래도 큰일 앞두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거죠. 혹시나 그놈들과 김좌진이가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혹시나 그들이 위축돼서 모임을 취소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두 놈이 붙어 있다면 둘 다 잡아버리면 소문이라도 안 날 텐데··· 한 놈만 잡으면 나머지 놈이 들쑤시고 다니면 이야기가 북간도 쪽에 들어갈 수도 있는 거니까요.”


서장과 츠즈키의 말을 다 들은 중위는 한참을 고민했다. 테러범들을 잡기 위해 먼 길을 왔는데, 혹시나 기다리다 그놈들이 도망이라도 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무작정 “안 된다”라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우선 지금 체포하진 않을 테니 어디에 그놈이 있는지 안내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확인만 하겠습니다. 저도 먼 길을 왔는데, 혹시나 다른 사람이면 여기서 굳이 기다릴 필요가 없는 거니까요.”


츠즈키는 이 말을 듣고 바로 서장을 바라보았다. 서장이나 츠즈키나 불안하긴 했지만, 둘 다 이 제안에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알겠소. 츠즈키 경감, 바로 중위님 모시고 다녀오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둘은 경찰서를 나가 만두집으로 향했다. 타케루는 드디어 자신이 몇 개월 전 당했던 복수를 할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독립운동가 명단]


오희옥 (吳喜玉, 1926~2024)


3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이어온 가문 출신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중국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며 독립운동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서 활동하며 정보 수집과 선전 활동을 담당하였다. 광복 후에는 교직에 몸담아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2024년 11월 17일, 향년 98세로 별세하였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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