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27화 - 도청

by 팬터피


**달수의 집**


전화가 오는 소리 때문에 아주 선명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두꺼운 나무로 만든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형원은 그 소리를 듣고 방 안에 숨을 곳을 찾았지만, 가뜩이나 휑한 집에 어디 하나 숨을 곳이라곤 없었다. 여기서 문을 열면 들어오는 사람과 바로 정면으로 마주친다.


싸워야 하나? 아니면 독립군인지 몰랐다고 이제 당신을 믿는다고 너스레를 떨며 나갈까? 아니면 얼굴을 손수건으로 감싸고 냅다 뛰쳐나갈까? 형원은 이 상황을 어찌 넘겨야 할지 너무나 초조하고 난감했다.


손에 땀이 흥건해서인지 불안한 마음 때문인지 형원은 옷의 끝자락을 꼭 쥐었다. 생각해라,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벨소리가 귓가를 때리듯 울려 집중할 수 없었다. 이마엔 식은땀이 흘렀고, 손끝이 떨렸다.


그때,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어! 안녕하세요!”


바로 진이었다.


“어... 여긴 어인 일로?”


“요 앞에··· 헉.. 후··· 누굴 만나러 왔다가··· 헉.. 뒷모습이 익숙해서요. ..하··· 여기 사시나 봐요?”


“네. 그렇소. 근데 왜 이렇게 숨을 헐떡이시오?”


“아···.보기로 한···.후···.. 시간보다···..후···.좀 늦어서요.”


진의 목소리임을 눈치챈 형원은 조심히 문을 살짝만 열어 밖의 동태를 살폈다. 다행히도 달수는 집을 등지고 서 있었고, 진은 집 밖에서 안이 보이는 방향으로 서 있었다. 형원은 냉큼 문을 더 열어 살며시 마루로 나왔다. 문이 살짝 열리면서 안방의 전화벨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고, 이는 진과 달수가 있는 곳까지 들렸다.


그 소리에 달수가 뒤를 바라보려 몸을 살짝 틀었다. 이때, 진이 말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요. 나도 전화가 와서. 원래 어디 딱히 잘 오지는 않는데.”


그렇게 다시 돌아서 전화가 울리는 안방을 향했다. 대문을 닫고, 빠르게 마루 쪽으로 뛰어가 신발을 벗고 안방의 문을 열었다.


안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달수가 진과 작별 인사를 나누는 사이 형원은 잽싸게 주방으로 숨어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밖에 사람이 없는지 한 번 더 살핀 뒤, 방으로 들어가 조심히 문을 닫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잘 들리나? 날세. 익수.”


“아···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이십니까?”


“혼자인가?”


“네, 혼자입니다.”


이때 어렴풋이 아주 희미하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문을 잘 안 닫았나?’라고 잠깐 생각하며 통화를 이어갔다.


문소리는 진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형원이 바로 나올 줄 알았으나 나오지 않자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 집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문을 열었을 때 안방에 귀를 바짝 대고 있는 형원과 눈이 마주쳤다. 진은 작은 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빨리 나와!”


형원은 다른 답을 하지 않고 진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그의 물불 안 가리는 저 성격이 진은 좀 부담스러웠다. 특히 지금 같은 때는 더욱.



**************



“오늘 경찰이 내 은신처를 급습했네. 아무래도 우리 중 배신자가 있는 것 같아.”


익수가 다급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위험 상황을 달수에게 알렸다.


“아···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서 지금은 어디 계세요?”


“외곽 쪽에 나와 있네. 그때 잡힌 현우 군이 살아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조심하라고 연락해 봤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현우 동지는 나라를 위한 마음이 굳건한 친구였습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진짜를 바로 앞에 두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꼴이라니... 이리도 한심한 자들이니 이미 없어진 나라를 되찾겠다고 난리를 부리지...라고 생각하며 달수는 자신을 걱정하는 그를 비웃었다.


“그래, 자네 말이 맞네. 그래도 우리는 항시 조심해야 하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근데 혹시나 저도 발각되게 되면··· 어디로 연락을 드리거나 찾아가야 할까요?”


“음··· 혹시나 그리된다면.. 류허현으로 오게. 예전 신흥무관학교가 있던 곳 근처에 머물 곳이 있네.”


“알겠습니다, 형님. 항상 조심하시고 조용해지면 또 연락 주십쇼.”


“알았네. 그나저나 다행이구만. 아까는 아무 말이 없길래 자네도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걱정했는데 말이지.”


“네?”


“아니, 처음에 전화했을 때, 전화받고 아무 말이 없길래. 그래서 다시 건 거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아닐세. 아무튼 자네도 몸 조심하게. 이만 끊겠네.”



**************



달수의 통화 내용을 엿들은 형원은 그의 말만으론 확실한 내용을 알 수는 없었으나, 그가 아까 인력거를 탄 그 독립군과 꽤나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위험해지자 동료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게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진짜 독립군인가?’


그때, 방 안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형원과 진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



통화를 마친 후 달수는 익수가 한 말이 무슨 소리인지 잠깐 고민하다가 장롱 문을 봤다. 곰팡이 피는 게 싫어 그는 항상 모든 서랍 등을 아주 살짝 열어두는데, 오늘은 이들이 다 꽉 닫혀 있었다.


‘아까 그 대련 놈?’


잠깐 얼어붙었던 달수는 갑자기 후다닥 방문을 열었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집 밖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저 앞쪽 골목 사이로 누군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아까 대련 그놈인 듯했다. 그는 그곳으로 바로 뛰어갔고, 골목을 꺾어 들어가 바로 어깨를 낚아챘다.


“이 쥐새끼야. 너 여기 왜 왔어?”


그러나 그는 진이 아니었고, 심지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뭐요?”


“아, 죄송합니다.”


“미친 거야 뭐야.”


달수는 뒤로 돌아 다시 집으로 뛰어갔다. 그는 부엌과 변소 등을 둘러보았으나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



달수가 통화를 마쳤을 때, 진과 형원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각기 가까운 곳으로 숨어들었다. 형원은 부엌, 진은 변소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그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둘은 조심히 반대 방향으로 빠져나왔다.


“이 사람, 독립군이 맞았어.”


어느 정도 달수의 집에서 멀리 나와 천천히 걸으며 형원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허탈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가 독립군과 통화를 했어. 내가 들었어.”



***************



맨발로 집 주변을 한참 뛰어다닌 달수는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그놈이 테러범인 게 확실해진 거야. 그놈들도 김좌진이랑 같이 잡아버리면 되겠어. 익수 놈도 같이.”


그는 바로 수화기를 들어 츠즈키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


‘불쌍한 놈들. 스스로 무덤을 파는지도 모르고 애국이랍시고 떠드는 꼴이라니···. 죽어서도 너희 스스로를 원망하거라.’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이석용 (李錫庸, 1877~1914)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태어난 의병장으로, 일제강점기 항일투쟁에 헌신한 인물이다. 1907년 진안 마이산에서 호남창의소를 설치하고 의병을 일으켜 진안읍을 점령하고 용담 전투 등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

이후 남원 전투 등에서 활약하며 항일 의지를 이어갔다. 1912년 비밀결사인 밀맹단을 결성해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나, 1913년 체포되어 1914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출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광복회 전북특별자치도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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