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31화 - 거래

by 팬터피


**경찰서**


“제가 독립운동 단체 사람인 걸 눈치채신 거죠?”


사장의 직설적인 태도에 경감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러나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써 차분히 응답했다.


“흠... 흠... 그렇죠. 솔직히 말씀하시니 저도 툭 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정보원의 정보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럼 왜 절 체포하지 않았죠?”


“그야, 선생님은 이 지역에서 꽤나 유명하신 분이시잖아요. 그런데 확실한 증거나 명분도 없이 무작정 선생님 같은 분을 체포한다면, 그에 대한 반발의 위험성이나 원활한 통치 등을 고려했을 때, 이 도시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저희도 애로사항이 많거든요.”


“알겠습니다. 그럼 독립운동 단체 소속인 제게 그 정보원을 굳이 죽이라고 부탁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이번에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말문이 막힌 경감은 또 시간을 끌며 생각했다. 너무 솔직한 그의 질문에 다 솔직하게 대답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 정보원이 대가리가 너무 커졌다고 해야 하나요? 그래서 저희에게 큰 이용 가치가 없습니다. 물론 저희 쪽에서도 충분히 정리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사장님 같은 분이 저희를 도와준다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 정보원을 죽이면 그걸 볼모로 해서 절 정보원으로 쓰려는 생각이시군요?”


“말씀 참 서운하게 하시네요. 볼모라니요. 그냥 저희와 같이 일하실 수 있는 분인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허허.”


눈치 빠른 노인네, 어쩜 자신의 생각을 그리 훤히도 보고 있는지, 참으로 탐나는 인물이라고 경감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걸 눈치 못 채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가진 게 많은 자이기에, 주변 사람들, 가족, 식당 등을 잃지 않으려면, 이런 꿍꿍이가 있는 줄 알면서도 이렇게 발걸음을 할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보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절 체포하십시오. 부탁드립니다.”





**형원의 숙소**


만두집 사장만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 건 아니었다. 진 역시 지금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 밤새 잠도 거의 못 자고 아침 댓바람부터 형원이 머무는 곳을 일찌감치 찾았다.


그는 혹시나 누가 따라붙었을까 봐 주변을 살피며 조심히 형원의 숙소 문을 열었다. 자고 있던 형원은 예상 못한 인기척이 느껴져 후다닥 일어났다.


“왔어?”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 자고 있어?”


“너도 하루 종일 인력거 끌어 봐. 몸이 남아나질 않아.”


“우리 이제 어쩔까? 다른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어?”


“어제는 좀 무섭더라...”


“확실히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었지... 심지어 그 사람, 우리를 알아본 듯한 느낌이었어. 우리, 여기 너무 오래 머문 듯해. 만주나 북간도 지역으로 가자.”


갑작스러운 진의 제안에 형원은 곰곰이 생각했다. 어제의 분위기로 봤을 땐, 진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역시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역시 어젯밤 많은 생각에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 그러자. 여긴 너무 위험해. 그가 우릴 알아봤단 건, 다른 군인들을 불러올 수 있다는 거니까.”


형원의 대답에 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집 세고 막무가내인 그가 백야 장군이 오시는지 아닌지 꼭 확인하겠다고 고집을 부릴까 내심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이번에도 인력거로?”


“응, 그래. 너 편한 대로.”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오늘 바로 출발하자. 어디로 갈래? 상하이? 북간도? 아니면 다른 지역?”


“그것도 너 편한 대로.”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웬일로 다 나한테 맞춰주려 해? 짐도 별게 없지만 좀 챙겨야겠다. 이것도 가져가고, 장롱에 옷들이랑...”


“너 먼저 가서 어디에 자리 잡았는지 연통을 줘.”


뭘 챙길지 뒤적이던 진이 이 말을 듣고 멈칫한 뒤 형원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리고 마치 정지 화면인 듯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게 무슨...”


“너 말대로 여기 계속 있는 건 너무 위험할 듯해. 나도 어제 확실히 느꼈어.”


“근데? 나만 먼저 가라고? 왜? 이 상황에서까지 꼭 백야 장군님을 만나 뵈어야겠어? 오신다는 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장군님을 기다리려는 게 아냐.”


매번 고집불통에 큰 고민 없이 직진만 하는 형원이 너무 답답한 진은 이번에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답답했다. 장군님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도대체 뭣 때문에 또 이 난리란 말인가!


“그럼 이번엔 또 뭔데?”


“그 아이, 나 때문에 죽은 걸 수도 있잖아.”


예상치 못했던 형원의 대답에 진은 가슴이 먹먹해왔다. 또한, 오랜 기간 본 건 아니지만, 자신이 왜 이 친구를 신뢰하고 존중하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 친구는 사람에 대한 진중한 마음과 매 순간 진실함, 그리고 자기반성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음··· 근데 달수 그 자가 독립운동하는 사람과 통화하는 거 들었다며. 그가 독립군이 맞다면, 그럼 네가 그때 그에게 예진과 사장에 대해 한 말과 예진 씨의 죽음은 연관 없는 거 아닐까?”


“그래도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만약 그렇다고 해도 죄책감 갖지 마.”


“어쨌든 누가 그 애를 죽인 건지 확인하고 떠나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알아내면 내 손으로 꼭 복수할 거야.”


“네 맘은 알겠는데··· 우린 지금도 위험한 상황이야···”


“그러니까 넌 먼저 이 도시를 떠나. 너까지 위험하게 둘 수 없어. 폭탄 던진 것도 나 혼자 한 건데 괜히 날 돕다가 너까지 위험에 빠진 것도 지금 미안한데, 계속 이런 상황에 둘 수 없어.”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을 거 같단 생각이 든 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 너도 너 걱정해. 우리 서로 자신의 걱정부터 하자. 아무튼 우선은 여기 남는 걸로.”


“넌 먼저 가라니까!”


“됐네요. 진짜 조심하자. 나 갈게.”


“야! 야!”


형원의 외침을 뒤로하고 진은 숙소를 나섰다. 친구의 진심에 우선 남기로 했지만, 어찌 이 도시에서 버텨야 할지는 정말 막막했다.


어제 그 헌병은 덩치도 덩치지만 판단력과 감각이 남달랐다. 화분도 실은 그의 속도를 계산해 머리를 노리고 던졌던 건데, 진이 위에서 봤을 때, 그렇게 뛰는 와중에도 온몸의 감각이 무언가가 다가옴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인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혹시나 대련의 관동군 본청 군대까지 동원된다면··· 거기까진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경찰서**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정보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절 체포하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사장의 단호함과 당돌함에 츠즈키는 흠칫 놀랐다. 이런 대응은 자신의 예상 시나리오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미 예순도 넘은 나이고, 장사도 그럭저럭 잘되고 있어 물질적으로나 지위적으로 뭘 원하는 게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단지 제 가족의 평안입니다. 그것만 지킬 수 있다면 전 뭐든 상관없습니다.”


“사장님, 오늘 참 다른 때와 다르게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시네요··· 근데 아시겠지만 나라에 배반되는 행위를 하신 게 들통나면 가족분들이며 가진 재산이며 사장님 생각처럼 지키기 쉽지 않으실 텐데요.”


“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전 남은 일생, 가족들과 별 탈 없이 살고 싶습니다. 정보원 한다고 평생 불안해하며 독립운동 단체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지도 않고요.”


그때 어떤 순사 하나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츠즈키에게 귓속말을 속삭이더니 바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계속하시죠.”


“실은 그 반국가 단체도 장사가 잘되다 보니 동포로서 후원을 요구해서 도왔던 것이지, 이렇게 일이 커질 줄 알았다면 아예 시작도 안 했을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엔 제가 제안을 드릴 테니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립니다.”


“하하, 사장님께서 제게 제안을 주시다니, 참 희한하네요. 어디 한번 들어나 보죠, 뭐.”


사장은 바로 답하지 않고 손톱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경감 앞에 무릎을 꿇고 말을 이어갔다.


“딱 세 번만 경감님의 부탁을 들어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단, 그 정보원을 죽이는 건 제 복수에도 포함되는 거니 그거 빼고 세 번이요. 그 후엔 저와 제 가족을 놓아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허석 (許錫, 1857~1920)


허석은 경북 군위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18년 경북 의흥면 암벽에 항일 격문을 붙여 민중의 항일 의식을 일깨운 인물이다. 이 사건으로 1919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출옥 후 옥고의 후유증으로 순국하였다. 그의 5대손인 유도 선수 허미미가 2024년 귀국 후 기적비를 참배하며 재조명되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공훈전자사료관,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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