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결전 Ⅰ
**챠샤오빠오**
“아무도 안 계신가요?”
적막한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온 진은 캄캄한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찜찜한 기분에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그가 뱉은 말의 메아리뿐이었다.
그는 찜찜한 기운에 다시 나갈까도 생각했지만 혹시 몰라 주방 쪽으로 걸어가 조심히 문을 열었다.
“사장님, 혹시 어디 계세요?”
주방을 들어섰지만 그곳에도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설거지통에 칼과 도마 등 주방 용기들이 나와 있었고, 바닥에 밀가루와 물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아 방금 전까지 누군가가 이곳에서 요리를 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뭐지? 그냥 오지 말걸 그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중 누군가 뒤에서 어깨를 툭 잡았다. 진은 긴장한 탓에 감각적으로 바로 뒤를 돈 뒤 주먹을 날려 대응하려다 멈췄다. 낯익은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일찍 왔네요. 천천히 와도 되는데.”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미소로 사장이 그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일찍 올 줄 모르고, 밖에 쓰레기 좀 버리러 나갔다가 여유롭게 담배 하나 피고 왔는데, 오래 기다렸나요?”
“아닙니다. 저도 막 들어왔습니다.”
“그렇군요. 여기 좀 앉아 있어요. 점심은?”
“아직입니다.”
“잘됐네. 좀만 기다려요.”
사장은 가마솥의 뚜껑을 열어 솥 안의 만두들을 조심스럽게 접시에 담았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게 여기서 일하면서 매일 봐왔지만 오늘따라 더욱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우선 허기부터 달래요.”
사장은 탁자에 만두를 올린 뒤, 잠시 후 창고에 있던 동치미를 꺼내 따로 미리 삶아 둔 소면을 찬물에 씻어 그 국물에 넣어 놋쇠 주발 그릇에 내어줬다.
오랜만에 보는 잘 익은 동치미 국물에서 시큼한 향이 살짝 올라오자 진은 좀 전의 긴장이 녹아내렸다.
그는 젓가락을 들어 면을 집을까 하다 그릇을 들고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시원하면서 새콤한 게 아주 제격이었다.
“사장님, 이건 집에서 가져오신 건가요? 제가 먹어본 동치미 중 최고네요.”
“입맛에 맞는다니 다행이네요. 내가 요 며칠 통 먹질 못해서, 집사람이 얼마 전에 담근 거 같더라고요.”
“근데 여름 무는 맵고 물러 동치미는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쩜 이렇게 맵지도 않고 아삭한가요?”
궁금해하는 진의 표정이 웃긴지 사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들이 이런 거 잘 모르던데, 음식에 관심이 있나 보네요.”
“동치미를 어릴 때부터 많이 좋아했거든요.”
“그랬군요. 오늘 가져오길 잘했구만. 여름 무를 소금과 조청에 절여놓으면 맵고 쓴맛을 잡아내서 이렇게 동치미 담그기에 적당하죠.”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진은 소면과 무를 같이 집어 한 입에 먹었다. 무를 씹을 때 아삭한 소리가 나며 시원했다.
“근데 무슨 할 말이 있으셔서 부르셨어요?”
“우선 좀 배 좀 채우시고 천천히 이야기하죠.”
사장은 별말 없이 요리를 하며 썼던 조리 기구들을 정리하며 뜸을 들였다. 이런 그의 모습이 의아한 진은 그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 사는 게, 행복이란 게, 참 별게 아닌데 말이지. 이렇게 한여름에, 생각지도 못한 동치미 한 그릇, 이런 거 하나로도 행복한데···. 다들 뭘 위해 그리 악착같은지 몰라.”
“그러게요. 사장님 덕에 오늘 너무 행복하네요.”
진은 접시에 담긴 샤오롱바오를 하나 집어 먹었다. 아직도 온기를 담은 만두 속 육수가 입 안 가득 퍼져 동치미와 궁합이 딱이었다.
“저번에 누군가 그럽디다. 마음만 바뀌면 되는 거라고, 세상이 바뀔 필요는 없다고. 그러니 굳이 뭘 바꾸려 노력하지 말라고. 어찌 생각하시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사장의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며 진은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만두집 근처 골목길**
형원은 순간의 충격에 잠시 기절하여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땐 아까의 충격에 의해 몸이 밀려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쓰러진 상태로 앞을 봤을 때, 무지막지한 규모의 무언가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이었고······ 그는 관동군 헌병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바로 타케루 중위였다. 그가 성큼성큼 형원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형원은 재빨리 일어서려 했지만, 조금 전의 충격에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반쯤 일어났다가 다시 푹 하고 주저앉았다.
그 사이 타케루가 바로 앞으로 다가와 아주 세게 발길질을 했고, 형원은 이를 피하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몸을 굴렸다. 그리고 겨우 몸을 일으켜 헌병에게 말했다.
“도대체 뉘신데 밑도 끝도 없이 폭력 행사입니까?”
“어디서 어쭙잖게 모르는 척이냐?”
마치 망치를 휘두르는 듯 온 힘을 다해 타케루는 주먹을 날렸고, 형원은 겨우 이를 피한 뒤 옆구리를 가격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이에 형원은 더욱 당황했다.
거구의 이 헌병은 바로 형원의 목을 한 손으로 잡고 그를 들어 올렸다.
주먹으로 그의 팔뚝을 때리고, 손가락을 꺾으려고 아무리 시도해 봐도 마치 바위 앞에서 발버둥치는 것처럼 상대방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형원은 조금씩 숨이 막혀왔다.
**만두가게 주방**
“저번에 누군가 그럽디다. 마음만 바뀌면 되는 거라고, 세상이 바뀔 필요는 없다고. 그러니 굳이 뭘 바꾸려 노력하지 말라고. 어찌 생각하시나요?”
“무슨 말씀이신지···..”
사장의 뜬금없는 말에 의아해하며 진은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 그냥 뭐··· 세상에 맞게 잘 적응하는 게 필요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요? 너무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애쓰지 말라. 뭐 그런?”
“아··· 예······”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소리를 늘어놓는 사장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진은 많이 당황스러웠다.
“사장님, 죄송하지만, 오늘 절 찾으신 이유가···.”
“아, 그래요. 내가 서론이 너무 길었네. 그쵸? 혹시··· 이 식당에 일하러 온 이유가 뭘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야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돈이 필요해서죠.”
“계속 궁금했던 게 말이죠. 왜 어린 친구가 다른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과 종업원을 안 하고, 굳이 몸 쓰는 설거지를 하루 종일 말도 없이 구석에 박혀 혼자 하고 있을까···”
“아, 그거야 제가 이런저런 신경 쓰는 거 싫어하고, 다른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요···”
“여름 무가 물컹하고 맛없는 거 알 정도로 음식에 관심 있으면 요리를 배워도 될 텐데··· 이것저것 관심이 없고 신경 쓰기 싫다기엔 계속 식당 돌아가는 거나 사람들에 관심 있고, 중국어 못 한다는 친구가 병원에서 어디 부위가 어찌 다치고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이상하지 않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울 수 있겠단 생각은 진도 계속 걱정했던 부분이었다. 근데 그게 식당에서 큰 문제 될 일이 아니라 생각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느끼셨을 수도 있겠네요. 근데 혹시 지금 이런 게 불편하셔서 굳이 이야기를 꺼내시는 건가요? 따로 이렇게 부르셔서 말씀하실 거까지는···”
“쉬는데 부른 건 미안해요. 개인적으로 내가 좀 시간이 많지 않아서···”
행주로 주방 용기들의 물기를 닦던 사장은 제 위치에 물건들을 내려놓은 뒤 진이 앉아 있는 탁자로 와서 그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빤히 바라봤다.
사장의 눈은 살짝 충혈되어 있었고, 손이 떨리는지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진은 이런 사장의 모습을 보고 긴장을 했다.
사장이 무언가를 다짐한 듯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치 오랫동안 참아왔던 말을 이제야 꺼내는 듯했다.
“근데······. 꼭 그 어린아이를 죽여야만 했나요?”
“네? 그게 무슨···”
마주 앉은 둘의 시선은 불안함 그 자체였고, 조용한 그곳에서 들리는 건 둘의 심장 소리뿐이었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감을 감지한 진은 젓가락을 꼭 움켜쥐었다.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정상윤 (1905~1950)
정상윤은 평안북도 철산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28년 신간회 철산지회를 설립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1929년 체포되어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1년 8개월간 복역하였다. 해방 후에는 공주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1950년 한국전쟁 중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집단 학살되었다. 정부는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