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 폭풍전야
**경찰서**
“어쩌자고 저 자를 그냥 냅둔겐가?”
타케루 중위가 나가자마자 서장은 츠즈키에게 역정을 냈다. 그런 서장을 바라보며 츠즈키는 여유 있게 웃으며 답했다.
“방금 만두가게 사장이 다녀갔습니다.”
“오, 그래. 뭐라던가?”
서장이 방금 전 정색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엉덩이를 살짝 들썩이며 새로운 소식을 궁금해했다.
언제 역정을 냈었냐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장을 보며 츠즈키는 그를 속으로 경멸했다.
“저희 일을 돕기로 했습니다. 꼴에 자존심은 있는지, 가소롭게도 세 번만 저희 요청에 응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 이후엔 또 다른 정보원을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왜지?”
츠즈키는 서장 쪽으로 몸을 좀 더 굽힌 뒤, 좀 전보다 작게 말을 이어갔다.
“독립군 놈들은 배신자들이 잘 살게 그냥 놔두지 않거든요. 심지어 그들이 영웅으로 여기는 김좌진을 체포하는 데 정보를 제공한 놈이 누군지 알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저놈들 게거품을 물고 가족까지 응징하려 들 겁니다.”
“그래서 그걸로 계속 협박해서 정보원으로 쓰겠단 말이구먼. 좋은 생각이네. 그나저나 김좌진이 오는 거 관련해서는 들은 게 있나?”
“안 그래도 그걸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저희가 알고 있는 그 정보가 맞습니다. 만두집 사장도 똑같은 날로 말을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서장의 얼굴이 환해졌다. 벌써 그의 머릿속에는 김좌진을 체포한 뒤 어떻게 처리할지를 그리고 있었다.
“그래. 계획대로 되고 있구먼. 이번 일만 잘 해결되면 내가 아주 큰 포상을 내리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서장님!”
큰절을 올리며 감사를 표시한 츠즈키는, 서장이 자신을 챙겨주겠단 말이 너무나 가소로웠다. 이번 일이 끝나도 그의 상사로 계속 있으리라 생각하고 저리 말하는 게 참으로 어리석어 보였다.
**챠샤오빠오**
큰 식당 안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사장은 혼자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돼지껍데기를 넣고 적당히 간을 한 후 약 한 시간을 펄펄 끓인 뒤, 건더기를 걸러내고 육수를 얼음이 가득한 상자에 넣었다.
육수가 굳는 걸 기다리는 동안 대파, 마늘, 생강 등을 다지고, 고기 역시 잘게 다져 소금, 후추 등 양념과 함께 버무려 만두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굳은 육수를 잘게 썰어 만두피 안에 만두소와 같이 넣고 찜기에 올렸다.
이 잘게 썬 육수가 샤오롱바오의 핵심인 만두 속 국물이라 부르는 것인데, 오늘처럼 돼지껍데기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땐 닭 육수로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돼지껍데기 육수가 좀 더 고소한 맛을 내기에 사장은 닭육수보다 이를 선호했다.
그는 불을 넣으며 예전 찻집에서 츠즈키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경찰서 앞 찻집 (회상)**
츠즈키는 사장의 손을 꼭 잡고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마음만 바뀌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바뀔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니 굳이 바꾸려 노력하지 마십시오.”
“······.”
“그런 의미에서,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챠샤오빠오**
찜기의 문을 열었을 때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고, 사장은 그것을 하나만 빼서 밥그릇에 올렸다. 그리고 그것 중 하나의 위쪽을 살며시 열자 먹음직스러운 육수가 풍성히 흘러나왔다.
사장은 밥그릇을 들어 만두의 향을 맡고 다시 그릇을 내려놨다. 그리고는 그릇에 남은 만두를 남겨두고 무표정한 얼굴로 전화기가 있는 계산대로 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으나 손이 부들부들 떨려 이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차가운 눈빛을 되찾았고,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여관이죠? 최종수라는 투숙객 좀 바꿔주세요.”
**진의 숙소**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여관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는 말을 전달받은 진은 어디서 온 연락일까 살짝 긴장했다. 그래서 일부러 심호흡을 깊게 한 번 한 뒤, 오히려 더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전화받았습니다.”
“안녕하신가. 여기 만두집이네.”
“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쉬는데 불쑥 전화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마침 운동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열심히 사는구만. 보기 좋군요.”
사장의 목소리에서 진은 뭔가 찝찝함을 느꼈다. 뜬금없이 전화한 것도 이상했지만, 뭔가 한마디 한마디가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사장님에 비하겠습니까? 하하. 근데 혹시 무슨 일이십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상의할 게 있어서 그런데 혹시 시간 되면 식당에서 잠깐 볼 수 있을까?”
“아···. 오늘요?”
“바쁘면 뭐 다음에 봐도 되고요.”
진은 사장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분명 뭔가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무턱대고 거절하기보다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닙니다. 제가 뭐 바쁠 게 있나요. 언제 뵐까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지금 어떠신가요?”
“아··· 지금요? 음······.네.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진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통화시 번화가**
타케루는 자신이 그린 형원의 몽타주를 들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조사를 진행했다. 그는 처음에 인력거꾼들을 상대로 형원에 대해 물어봤으나 그들은 모두 모르쇠로 일관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가 그들이 증오하는 관동군에게 잡혀가는 걸 썩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질문의 대상을 일본인들이나 부유한 중국인들로 바꿨다. 이 지역에서 인력거를 끌었다면 분명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이 그의 인력거를 탔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 좀 묻겠소. 이렇게 생긴 인력거꾼 본 적 있소?”
“아뇨, 없습니다.”
“당신은 본 적 있소?”
“처음 봅니다. 근데 무슨 일이십니까?”
“이 놈은 총독님을 암살하려 한 테러범이오. 혹시 보게 되면 서에 신고 바랍니다.”
쉽사리 용의자의 흔적이 나오지 않자, 자존심에 기동대 한 분대를 지원받지 않은 걸 후회하던 찰나에,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거지 아이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 아저씨, 어디서 봤는지 알려주면 돈을 주나요?”
“그래, 얼마나 필요하지?”
“은화 1엔요.”
그는 안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아이의 손에 쥐어주며 물었다.
“자, 여깄다. 이제 말해보거라.”
“이쪽으로 쭉 가면 큰 만두가게가 있는데, 거기서 두세 번 봤어요.”
그 말을 들은 타케루는 처음엔 돈만 날렸구나 싶었다. 큰 식당 앞엔 늘 워낙 많은 인력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그 식당은 문이 닫혀 있어 그는 거기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타케루는 무시하고 있었던 작은 단서를 하나 떠올렸다. 테러범 다른 한 놈도 거기서 일을 한다는 점이다. 이 점과 인력거를 끄는 놈이 그 앞에 있었다는 것이 어떤 연관점은 없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만두집에 두 놈이 찾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다시 한번 거기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시내 골목**
한산한 시내를 형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는 뛰면서 방금 전 진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
**형원의 숙소 (회상)**
“야! 누가 봐도 너무 이상하잖아.”
진과 통화를 하던 형원이 답답해하며 말했다.
“응. 이상하지.”
“근데 왜 굳이 가겠다는 거야?”
“궁금해서.”
“그건 뭔 헛소리야! 평소 너답지 않아.”
***********************
**진의 숙소 (현재)**
그는 진의 숙소에 도착했지만, 그곳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아씨. 벌써 간 거야? 이 새끼가 진짜!”
형원은 만두가게를 향해 다시 뛰어갔다.
*********************
**형원의 숙소 (회상)**
진이 수화기 너머로 말을 했다.
“아무튼 혹시나 해서 너한테 미리 말하는 거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빨리 이 도시를 떠나. 괜한 죄책감 가지지 말고.”
“야, 지랄하지 말고 너 거기 딱 기다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고.”
***********************
**시내 골목 (현재)**
심장이 터질 정도로 전력을 다해 아주 잠깐도 쉬지 않고 달려온 형원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매번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행동했을 때, 그도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는 미안함···
이제 한 골목만 지나 큰 길만 건너면 바로 앞이 식당이었다. 사장은 좋은 사람 같지만, 뭔지 모를 어두움과 자신을 숨기는 듯한 모습이 항상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달수가 독립군과 통화하는 걸 들은 이상, 그를 그냥 믿을 순 없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뛰어 마지막 골목을 벗어나려던 그때, 형원은 갑자기 바위가 날아와 머리를 가격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의 무언가에 부딪혀 몸이 붕 떠 날아갔다.
그는 순간의 충격에 잠시 기절하여 정신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땐 아까의 충격에 의해 몸이 밀려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쓰러진 상태로 앞을 봤을 때, 무지막지한 규모의 무언가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람이었고··· 그는 관동군 헌병 옷을 입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인명 사전]
문창범 (文昌範, 1870~1938)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언론인이다. 1919년 3월 우수리스크에서 2만여 명의 한인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의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교통부 총장을 역임했다. 한글신문 발간과 한인학교 설립에도 힘썼으며, 1938년 일본군의 사주를 받은 소련군에 의해 총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대한민국역사박물관, KBS 뉴스, 『문창범 평전』(박환,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