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32화 - 연막

by 팬터피


**경찰서**


“딱 세 번만 경감님의 부탁을 들어드리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 후엔 저와 제 가족을 놓아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장이 갑작스레 무릎까지 꿇고 읍소를 하는 바람에 츠즈키는 당혹스러워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고자세를 유지하며 그의 부탁에 대해 고민하는 척했다.


“뭐··· 크게 그 조직의 업무에 관여하지 않으셨다니 그 정도로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근데 제가 사장님을 어찌 믿어야 할지가 걱정되긴 하네요. 바로 도망치실 수도 있는 건데 말이죠. 가족분들은 방금 기차를 타고 통화시를 떠나셨더라고요.”


“우선 오늘 제 제안이 어찌 될지 몰라 다른 지역으로 잠깐 보내놨습니다.”


“그러시군요. 근데 저희 직원 한 명이 계속 감시를 할 예정이긴 합니다.”


가족에게 꼬리가 붙었다는 말에 사장은 입술 한쪽을 꽉 깨물었다.


“그렇다면···.. 제가 정보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꽤나 만족스러운 정보일 겁니다.”


“네. 우선은 일어나시고···. 의자에 앉아서 말씀 주시죠.”


츠즈키의 요청에 그는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짧지 않은 시간을 꿇은 채 있었던 게 부담이었던지 무릎이 시큰거렸다. 그는 힘겹게 의자에 다시 앉으며 말했다.


“들으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나흘 후면, 저희 식당에 김좌진 장군이 올 예정입니다. 아시죠?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


“그게 진짜입니까? 알다마다요. 나흘 후면 25일이군요. 근데 그가 갑자기 왜 오는 거죠?”


“저도 금액 후원 위주로만 하다 보니 이 조직이 돌아가는 것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이 조직, 다물단과 김좌진이 소속된 신민회 일부가 같이 만나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오. 그렇다면 모이는 인원이 꽤 되겠군요?”


“네, 맞습니다. 한 30명 정도가 같이 앉을 수 있는 큰 방을 오전 11시 반에 예약해 둔 상태입니다.”


츠즈키는 겉으로는 담담하게 대화를 하고 있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김좌진을 잡는 것도 큰 포상감인데, 거의 서른 명 정도의 독립군 놈들을 한꺼번에 붙잡을 수 있는 인생에 몇 안 되는 기회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그럼 사장님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근데 헛된 짓은 진짜 안 하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가족분들 생각해서요.”


“네. 그래야죠. 그럼 이제 그 정보원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아··· 그는 사장님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 식당에서 일도 하고 있고요.”


“네? 이런 말도 안 되는···”


“그 사람은 바로··· 식당에 얼마 전에 들어온 최종수입니다.”


최종수는 진이 이곳에서 쓰는 가명이었다. 만두집 사장은 이 이름을 듣고 그가 첫 출근 날 그의 이름을 말해줬던 게 생각났고,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츠즈키는 갑자기 계약을 제안하는 이 자를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어찌하는지 한번 지켜보고 싶었다. 진짜 복수를 할 것인지 아닌지,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또한, 그가 이 테러범을 해치워준다면 그는 갑자기 나타난 괴물 같은 타케루에게 이 놈의 체포에 관한 공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혹시나 왜 생포하지 않고 사살했냐고 책임을 물으면 사장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발을 뺄 수 있으니 여러 가지로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 생각했다.


“그 친구가 맞습니까? 그는 이 동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그 조직은 점조직이 아닙니까? 아마 사장님과는 연결고리가 없어 생소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 식당에 들어간 건 이제 보름 남짓이지만 이 지역에 들어온 지는 조금 됐습니다.”


“음··· 본 시간이 길진 않지만 생각이 바른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사장님, 지금 절 못 믿으시는 겁니까? 제 정보원이 아니면 제가 그 친구가 언제 왔는지, 이름이 뭔지를 어찌 자세히 알고 있겠습니까? 숙소가 어딘지까지 말씀드려야 믿으실까요?”


“아··· 아닙니다. 나이가 먹어 판단력이 흐려졌나 봅니다. 아무래도 작정하고 사람 속이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으니까요.”


“네, 맞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츠즈키 경감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사장은 악수에 응하는 대신 공손히 고개를 숙여 절했다.


“분명 말씀드리지만, 딱 세 번만 경감님의 요청에 응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전 멀리 떠나 조용히 살겠습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이 말을 남기고 사장은 사무실을 나갔다. 그리고 경찰서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가는데, 바로 앞에 덩치가 크고 위협적인 헌병 하나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황익수를 처음 봤을 때도 저리 큰 덩치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그보다 키가 더 커서인지 훨씬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그들은 바로 옆을 스쳐갔고, 스치며 눈이 마주쳐 서로에게 간단히 목례를 했다. 그렇게 둘은 스쳐 지나갔다.


타케루는 경찰서에 들어오자마자 서장실로 바로 갔다. 마침 츠즈키도 그 덩치 큰 헌병이 서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몰래 따라가 문에 귀를 바짝 대고 대화를 엿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서장님.”


“네, 안녕하십니까.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이 도시에서 그 테러범들 잡는 거 말고 다른 용무가 있겠습니까?”


“그에 관해선 어제 이야기를 다 나눈 거 아닌가요?”


서장이 이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것에 불편함을 대놓고 드러내며 답을 했다. 타케루도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네, 어제는 분명 그랬죠. 그렇지만 어제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어제 나머지 한 놈을 찾았거든요.”


서장실 밖에서 이 말을 들은 츠즈키는 놀람과 동시에 짜증이 났다. 저 막무가내 자식을 어제 그냥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점점 상황이 꼬이고 있는 것을 느낀 그는 다시 이리저리 생각했다. 이 상황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를.


“아··· 그래요. 하루 만에 대단하시네요···.. 흠흠···”


“그래서 말입니다. 기동대 한 소대만 내어 주시면 최대한 빠르고 은밀하게 이놈들을 체포하겠습니다.”


“음······”


지금 이 상황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서장은 어찌 둘러대야 할지 망설여졌다. 김좌진을 잡기 전까지 그냥 조용히 독립군 놈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싶은데, 이 꽉 막힌 괴물 같은 놈은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스타일이 아니란 걸 어제 하루 만에 너무나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은밀히란 단어는 기동대 한 소대를 대동하는 것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듯하군요.”


“그럼 뭐, 대련 본청에 연락해서 부대 파견 요청이라도 할까요?”


“뭐라고? 타케루 중위! 어디 한번 저랑 해보자는 겁니까?”


서장은 타케루의 도발에 욱해서 화를 냈다. 실은 이건 타케루가 원하는 방향이었다. 서장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해야 일을 키울 수 있고, 그리되면 서장도 관동군 수뇌부에 말이 도는 게 무서워 어쩔 수 없이 테러범들을 잡는 데 도움을 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이때, 문 밖에서 말을 엿듣고 있던 츠즈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고, 보고드릴 게 있어 왔다가 의도치 않게 두 분의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근데 서장님, 중위님, 이건 어떻습니까? 제가 식당에서 일하던 놈은 체포를 미리 작업해 둔 상태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찾으셨다는 한 놈을 중위님께서 담당해 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뭐,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근데 어제는 체포에 그렇게 반대하시더니 오늘은 왜 생각이 달라지신 건가요?”


갑자기 끼어든 불청객에 타케루 중위는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반대라뇨. 그게 아니라 큰일을 앞두고 조심하려 했던 거죠. 경찰의 감이란 게 있거든요. 실질적으로도 독립군 놈들은 얽히고설켜 이놈들 체포하는 과정이 시끄러워져 여기저기 소문이 나게 되면, 김좌진이 이 지역에 오는 일정을 변경하게 될까 봐 걱정인 거죠.”


“조용히 처리하면 문제 될 거 없을 거요.”


“그렇다면 기동대 한 소대 말고 한 분대는 어떠십니까? 어차피 두 명도 아니라 한 놈만 상대하시면 되니까요.”


츠즈키의 도발에 타케루의 눈빛이 위협적으로 변했다. 겨우 열 명 남짓한 한 개 분대를 지원받는 건 그냥 혼자 다니는 것과 별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중위쯤 되는 그에게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겨우 조센징 한 명 붙잡는 데 엄청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실은 타케루는 자기 혼자여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기에, 몇 명을 지원받는지는 아주 중요하지 않았다.


“됐습니다. 어차피 저 혼자도 잡을 수 있는 놈들입니다. 그럼 체포를 허락해 주신 거라 믿고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타케루는 대충 인사하고 서장실을 나섰다.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 츠즈키는 밖으로 나가는 타케루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조소앙 (趙素昻, 1887~1958)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부장과 삼균주의 이념의 창시자로, 항일 독립운동과 건국이념 수립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19년 임시정부에 참여해 외교 활동을 주도했고, ‘삼균주의’(정치·경제·교육의 균등)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기초했다. 이후에도 임시정부 국무위원, 국무총리 대리를 역임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해방 후에는 제헌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출처: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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