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42화 - 응징

by 팬터피


**통화시 경찰서**


“서장님도 계시니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저는 딱 세 번만 경감님의 요청에 응할 것입니다. 그 이후엔 저와 제 가족을 놓아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이 말을 듣고 서장이 끼어들었다.


“내가 이곳 서장으로서 이에 대해서는 보장해 주겠소. 츠즈키 경감, 이것 좀 빨리 치우시게.”


“네, 알겠습니다.”


사장은 츠즈키 대신 자신이 직접 보따리를 여미며 말했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 손목 주인과 싸우느라 지금 제 몸이 좀 별로입니다. 권총 하나만 빌려주시면 두 번째 숙제를 하는 데 좀 쓰겠습니다.”


츠즈키 경감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경찰에게 총을 달라 요구하는 무대포의 사람이었다니, 참으로 사람 오래 알고 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네 껄 주게.”


“네, 제 껄요?”


“그럼 내 껄 줄까?”


“아, 아닙니다.”


츠즈키는 조끼에서 총을 꺼내 사장에게 건넸다.


“이왕이면 그 조끼도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네?”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입은 옷이 총을 보관하기가 좀 불편해서요. 잃어버리면 큰일이기도 하고···”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서장을 쳐다봤고, 서장은 눈짓으로 그냥 주라고 고개를 까딱했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저으면서 조끼를 벗어 만두집 사장에게 넘겼다.


조끼를 넘겨받자마자 그는 바로 이를 입고 버클을 채웠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건 쓰고 바로 돌려드리겠습니다.”


“그러고 가시게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이제 어두워져서 잘 안 보일 겁니다.”


사장은 급하게 인사를 마치고 경찰서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한숨을 푹 쉰 그는 다시 인력거를 타려고 몇 걸음 더 걸었다.


가던 중 행인과 부딪쳐 들고 있던 보따리를 떨궜고, 아까 경찰들에게 보여준 손목이 보자기 밖으로 살짝 나왔다. 이를 누가 볼 새라 사장은 냉큼 보자기로 감싸 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형원은 멀리서 이를 보았다. 그러나 어둡고 멀어서 그게 어떤 건지 보지 못했다.


‘저건 아까 의사가 준 거 같은데? 뭐가 들었길래 저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챙기지? 그리고 저 조끼는 뭘까? 배신자란 걸 이제 만천하에 알리고 다니겠다는 건가?’


사장은 또다시 근처의 인력거를 탔다. 누가 봐도 바쁜 날이었다.


그 덕에 어제의 격투로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형원은 쉬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뛰어다니고 있었다.




**일본식 선술집**


“그래서? 짐은 다 싼 거야?”


“응. 집사람이 이미 다 했지.”


몇 주 전 독립군에게 잡혀가 취조를 당했던 켄타 경감은 친한 동료와 작별 인사 겸 식사를 하고 있었다.


꼬치를 구워서 내주는 술집이었고, 둘은 다찌 자리에 앉아 우동에 꼬치를 곁들여 먹고 있었다.


“어찌 됐든 그동안 고생 많았네. 잘 갈게.”


“고맙네, 신이치 경감. 나중에 고조에 올 일 생기면 미리 연락 주시게나.”


“그렇게 하겠네. 자네 덕에 나도 덩달아 고향이 그리워지는구먼. 한잔 받으세.”


“아, 나 술 끊었네. 이젠 안 마시네.”


켄타가 빈 잔을 손으로 막자 친구 경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때 이후로 그런가?”


“뭐, 그런 셈이지.”


“요즘도 꿈에 나오고 그래?”


“가끔 뭐··· 근데 매번 같은 꿈이야.”


“어떤 꿈? 그때 고문당했던 거?”


켄타는 술잔에 물을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아니, 잡혀갈 때 꿈. 이건 진짜 아무에게도 말 안 했는데··· 그때 엄청 취했었는데, 다른 건 다 기억이 안 나거든. 빠칭코에서 어찌 나왔는지, 어떻게 거기까지 걸어갔는지··· 근데, 잡혀갈 때 기억이 아주 살짝 어렴풋이 나.”


“그럼 누가 그랬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그냥 자욱한 안개에 쌓인 것처럼 뿌옇게 기억이 나. 근데 꿈에서는 그놈이 자꾸 나한테 총을 겨눠.”


“힘들겠네. 근데 잊혀지겠지. 고향에서 맘 편히 살면 나아질 거야.”


친구는 켄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해 줬다. 그러나 켄타는 아직도 불안함이 남아 자꾸 주변을 살폈다.




**주택가 골목길**


사장은 인력거를 타고 곧장 달수의 집으로 갔다. 형원도 이 동네에 들어서자 사장이 왜 총이 든 조끼를 입었고,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게 목표인 건가? 쓰레기 같은 새끼.’


인력거에서 내린 사장은 보따리를 담벼락 옆 전봇대 밑에 잘 안 보이게 숨겨두고 바로 담을 넘어 달수의 집으로 들어갔다.


사장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형원은 바로 그 보따리 쪽으로 갔다. 그리고 꽉 묶인 보자기를 겨우겨우 열어 안에 든 물건을 꺼냈고, 이를 보자마자 그는 크게 놀랐다.


“아니, 왜··· 이게···”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사장이 일본 놈들의 지시로 그를 죽이고, 그 증거로 손목을 경찰에 보여준 것.


“흡··· 으헉···”


그는 토가 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으······.억···. 네가 떠나자고 할 때··· 그냥 떠날걸··· 미안··· 진짜··· 미안···”


진이 어딘가 살아 있을 거란 희망에, 엉망인 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고통도 잊고 버텨오던 형원은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좌절했고, 두 다리를 지탱할 힘이 없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털썩 앉아 자신의 선택을 원망하며 울고 있었다.


탕! 탕!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안에서 들려온 총소리에 정신이 든 형원은 눈물을 닦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쥐새끼는 내가 죽여버릴 거다.”




**달수의 집**


탁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달수는 갑자기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 책을 덮었다. 그리고 화분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그래? 너도 느꼈다고?”


그러고는 호롱불을 끈 뒤 장롱에 숨겨둔 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문 쪽으로 조용히 다가가 혹시 모를 침입에 대비했다.


그러나 한동안 문은 열리지 않았고, 달수는 상대가 자신처럼 문 앞에 있는 걸 직감했다.


“누구십니까?”


상대방은 말이 없었고, 초조한 달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그러나 이번에도 상대방은 대답이 없었다. 달수는 점점 답답해 미칠 것만 같았다.


‘독립군 놈들인가? 결국 들킨 건가?’


달수는 상대를 예측할 수가 없어 무슨 말로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독립군인 척하는 게 유리하단 생각이 들어 말을 다시 꺼냈다.


“일본 놈들에게 붙어먹는 쥐새끼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찾아왔느냐? 조국에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 배신자 새···”


사장은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발로 문을 걷어차고 벽에 붙어 숨었다.


쾅!


탕! 탕!


잠깐 문이 열리는 틈을 타 달수는 총을 쐈지만, 상대방은 이미 벽 쪽으로 숨은 뒤였다.


“다 알고 왔으니 개수작은 그만해라. 하나만 묻자. 그 애는 왜 죽였냐?”


목소리를 듣자마자 달수는 상대가 누군지, 그리고 누굴 왜 죽였냐 묻는 건지 한 번에 알았다.


“사장님이십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다 알고 왔다니까!”


탕!


탕! 탕!


사장은 문 쪽으로 이동해 빈 공간에 총을 한 방 쏘며 위협했고, 놀란 달수는 문틈으로 잠깐 사장이 보이자 방아쇠를 당겼다.


“사장님, 진짜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사장님은 모르시겠지만 저는 독립운동 단체 소속이고, 저희 아버지도 만세운동을 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뻔한 거짓말에 기가 찬 사장은 조끼를 벗어 그의 방 안으로 휙 던졌다.


탕! 탕! 탕!


방 안으로 무언가 날아오는 걸 보고 달수는 또 총을 갈겼다. 그 후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내려다봤다.


“그게 뭔지 알겠나?”


“······.”


“츠즈키 경감에게 방금 받은 조끼다. 그에게 네 얘기 다 들었다. 이 쥐새끼야.”


“이런··· 씨···”


조끼를 보자마자 그는 눈이 돌아갔다. 경찰서에 자리를 봐준다더니 결국 다 거짓말이었던 것을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후··· 근데 왜··· 나이도 있으시고··· 돈이며 가족도 다 가지신 분이 왜 일본 놈들 손을 잡으시는 겁니까?”


“다 네 놈 덕이지. 밀고자는 네 놈이 아니더냐? 헛소리 그만하고 그 애를 굳이 왜 죽였는지나 말해라.”


“누구 말씀이시죠? 죽인 애들이 한둘이 아니라··· 사장님이 아끼시던 그 아이라면··· 음··· 이제 기억이 났네요.”


달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상대를 긁어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려고 마음먹었다.


“그날 기억하세요? 그날도 사장님이 츠즈키를 만난 날이었죠. 뭐라 이야기 들었는지 불안했거든요. 근데 말을 안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죽였죠.”


“겨우 그게 이유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보죠. 내 자리를 사장님이 채갈 거란 걸요.”


“완전 미친놈이구나.”


“근데요. 죽인 건 저지만 사장님 이야기를 지키려다 죽었으니 책임은 당신 쪽에도 있는 거 아닌가?”


사장은 이 말에 욱해서 다시 문틈으로 총을 쐈다. 달수도 이때다 싶어 타이밍에 맞춰 사장을 조준했다.


탕! 탕!


탕! 틱!


첫 발이 사장의 팔뚝을 스쳤다. 그러나 장전된 총알을 다 썼는지 두 번째 발은 발사되지 않았다.


사장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가 달수에게 총을 겨눴다.


“이제 알겠냐? 배신자는 결국 어찌 끝나는지.”


“사장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죽음에 직면한 달수는 바로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하였다. 사장은 그의 이런 모습이 꼴도 보기 싫어 바로 쏘려 했다.


그때였다. 형원이 방 안으로 달려들어왔다.


“이 배신자 새끼야!”


탕! 탕!


형원이 사장을 덮침과 동시에 총성이 두 발 울렸고, 방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남상목 (南相穆, 1876~1908)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하산운리(현 성남시 분당구) 출신의 의병장으로, 호는 동천(東泉), 자는 문일(文一)이다. 1904년 일제의 수탈에 맞서 의병을 일으켜 경기도 용인과 충북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8년 11월 가족을 만나러 가던 중 밀고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장파열을 일으켜 같은 해 11월 4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8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경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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