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41화 - 손목

by 팬터피


**시내 병원**


사장이 허리를 숙여 침대 밑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형원은 사장의 바로 등 뒤 침대 밑에서 사장이 앞쪽 침대를 살피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제 그가 고개만 돌리면 형원을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바로 옆 침대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고, 사장은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형원은 사장이 가려진 커튼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


“자네, 여깄었구만.”


“으··· 어···”


병실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형원은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아까 사장과 의사의 대화 내용으로 봤을 때, 진이 치료 중인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몸조리 잘하게. 정말 미안하네···.”


이때, 아까 그 의사가 병실로 들어와 사장을 불렀다.


“이 선생.”


사장은 의사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는 보자기 꾸러미 하나를 사장에게 건넸다.


“이거, 아까 전화해서 부탁했던 거.”


“아··· 벌써.”


“이래도 되는 건가 싶네.”


사장은 의사 선생의 어깨를 툭 치며 보자기 하나를 건네받았다.


“고맙네.”


인사를 하고 사장은 바로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가자마자 형원은 재빠르게 침대 밑에서 나와 아까 사장이 열었던 커튼을 제쳤다.


그리고 그곳엔 며칠 전 자신이 부축해서 데리고 온 식당 주방장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형원은 그가 진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다.


‘그럼 사장과 의사가 “치료 잘 받고 있다”라고 했던 사람은 진이 아니라 이 사람이었던 건가? 그럼 진은 어딨는 거지?’


다시금 사장을 미행하기 위해 병원 밖으로 뛰쳐나간 형원의 시야 끝에, 사장의 뒷모습이 골목으로 사라졌다. 형원은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대련역**


기차역 앞 광장엔 천 명 가까이 되는 군인들이 열을 맞춰 정렬해 있었다. 관동군 외에 구경꾼 그리고 기차를 타고 내리려는 사람들까지 많은 인파가 몰렸으나 이 광장에는 개미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했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은 여기 모인 군인들의 기세에 눌려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말 그대로 살기가 가득했다.


헌병대장이 앞으로 나와 선포했다.


“이제 기차가 오면 우리는 총독님께 테러를 하고, 우리 형제를 살해한 반국가 조직을 말살하러 갈 것이다. 미리 말하겠다. 생포? 이 따위 거 필요 없다. 테러 조직 소속이면 바로 쏴 죽여라. 자비란 없다.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그들의 기합은 역 주변 시내 어디에서나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했고, 결국 그들은 통화시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통화시 번화가**


번잡한 시장통에는 여느 때처럼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형원은 조금 떨어져 사장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오래 장사를 해와서인지 시장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휴. 우리 사장님, 얼굴이 왜 이러세요?”


“하하. 계단에서 굴렀습니다.”


“조심 좀 하시지~ 여기 고구마 하나 가면서 드세요.”


“아유~ 뭘 이런 걸.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제가 감사하죠. 사장님께 도움받은 게 얼만데. 근데 보자기엔 뭐예요?”


“별거 아닙니다. 언제 적 이야기를 아직까지 해요. 민망하게. 나 갈게요. 많이 파세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시장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그의 모습을 보며 형원은 역겨움을 느꼈다.


‘배신자! 가식적인 노친네. 저러고 사람 뒤통수 치고··· 병신처럼 저런 사람을 믿었었다니···’


지금이라도 뒤에서 칼이라도 찔러버리고픈 심정이었지만 우선은 혹시 살아 있을지 모를 진을 찾기 전까진 좀 참기로 했다.


시장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사장은 좀 걷다가 다가오는 빈 인력거에 몸을 실었다.


‘또 어디를 가는 거지?’


인력거의 속도에 맞춰 좀 빠른 걸음으로 이를 쫓던 형원은 어느 정도 갔을 때 그의 목적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은 바로 경찰서였다.


그의 짐작대로 사장은 인력거에서 내려 바로 경찰서로 들어갔고, 형원은 더 이상 따라갈 수가 없었다.



**통화 경찰서 서장실**


“안녕하십니까, 서장님!”


“마침 잘 왔네. 전할 말이 있었네.”


츠즈키가 서장실로 들어가 인사를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관동군 헌병대가 방금 이쪽으로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네.”


“오호! 몇이나 오는지 혹시 들으셨습니까?”


본청에서 군대가 온다는 소식이 불편했던 서장은 같은 소식에 실실 웃고 있는 상대가 상당히 거슬려 짜증이 났다.


“두 개 대대는 족히 넘을 듯싶네. 근데 지금 뭐가 좋다고 신이 난 건가?”


“저도 방금 보고를 하나 받았습니다. 조센징 테러 집단 놈들 주둔지가 어딘지 확인했습니다.”


“오! 그래. 이거 아주 잘됐구나! 몇 명 정도 있다 하더냐?”


“서른 명쯤 된다 합니다. 두 대대가 온다면 한 대대는 만두가게로, 또 한 대대는 주둔지로 집합하여 동시에 벌집으로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오랜 체증이 내려간 듯 마음 편히 미소 짓던 서장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말이지. 총독님께 폭탄 던진 미친놈들은 자네가 직접 처리해 주게나. 그놈들 중 누구라도 자기네 쫓아와서 타케루를 죽였다는 걸 발설하면 골치 아파질 테니까. 어쨌든 간에 이 살인 사건은 이 조직에서 꾸민 일로 해야 하네.”


“네, 알겠습니다.”


똑똑


이때 순사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경감님, 손님이 오셨는데, 서장님과 대화 중이시니 기다리라 했더니 들어오겠다 해서요.”


“누군데, 건방지게?”


“접니다.”


뒤에서 말을 듣던 만두가게 사장이 들어왔다.


“서장님, 안녕하십니까. 말씀 중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대화가 마무리되던 중이었습니다.”


“츠즈키 경감을 찾아왔다가, 서장님 방에 있다 해서 같이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 무례를 무릅쓰고 들어왔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근데 며칠 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하셨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보군요?”


방금 들어왔던 순사가 다시 방 밖으로 나갔다. 만두집 사장은 서장의 책상에 들고 온 보자기를 툭 던졌다.


서장과 경감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츠즈키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게 서장님께 무슨 태도입니까?”


“경감님께서 부탁하신 물건입니다.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츠즈키는 보자기를 풀었다. 그 속에는 잘린 손목이 있었다. 그는 이를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이게 무슨···”


“말씀드렸다시피 가져오라 하신 물건입니다.”


“그럼 이게···?”


“네, 맞습니다. 경감님의 장난으로 억울하게 죽은 그 친구의 손목이 맞습니다.”


사장의 건방진 태도에 츠즈키는 짜증이 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숙제 하나가 해결된 듯해 마음이 좀 편하기도 했다.


“서장님도 계시니 한 번 더 확인하겠습니다. 저는 딱 세 번만 경감님의 요청에 응할 것입니다. 그 이후엔 저와 제 가족을 놓아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이 말을 듣고 서장이 끼어들었다.


“내가 이곳 서장으로서 이에 대해서는 보장해 주겠소. 츠즈키 경감, 이것 좀 빨리 치우시게.”


“네, 알겠습니다.”


사장은 츠즈키 대신 자신이 직접 보따리를 여미며 말했다.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 손목 주인과 싸우느라 제가 지금 몸이 좀 별로입니다. 권총 하나만 빌려주시면 두 번째 숙제를 하는 데 좀 쓰겠습니다.”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조명하 (趙明河, 1905~1928)


황해도 황주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대만 타이중에서 일본 왕족 구니노미야 구니아사히토를 단독 저격한 의열 투쟁가이다. 1928년 5월 14일 구니노미야가 타이중을 시찰하던 중, 단도와 폭탄으로 습격을 감행했으나 폭탄이 불발되면서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나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행동한 것”이라며 항일 의지를 분명히 했고, 1928년 10월 10일 타이베이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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