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록]1946년, 한국이 일본을 점령했다

39화 - 쪽지

by 팬터피


**관동군 본청 헌병대**


타케루가 속한 관동군 헌병대는 간도 전역에서 악명 높았다. 그들은 다른 군인들보다 몇 배는 고된 훈련을 받았고, 따로 정신교육도 받다 보니 말보다는 총검이 먼저인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은 관동군 자체가 그들의 무자비함을 묵인했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그들을 제지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군기가 바짝 든 군인들이 연병장에서 고된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근처 사격장에서는 연습 사격이 한창이었는데, 엘리트들만 모아놓아서인지 과녁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같은 시각, 사무실에서는 헌병대장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죄송합니다. 테러범들을 아직 못 잡았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큰소리가 들렸고, 대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도 위치를 파악했고, 중위 한 명을 파견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 지역 군경과 연합하여 체포 작전을 펼칠 예정입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할 거요. 총독님의 화를 조금이라도 풀어드리려면 말이죠.”


“네, 알겠습니다. 며칠 안으로 결판이 날 듯하니 연락받는 즉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헌병대장은 자리에 앉아 목을 뒤로 젖히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중위 한 명이 급히 방으로 들어와 대장에게 경례를 했다.


“그래, 무슨 일인가?”


“방금 보고를 하나 받았는데, 통화시로 간 타케루 중위가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헌병대장은 방금 들은 이 소식에 크게 놀랐다. 헌병대 내에서도 최고의 전투 능력과 체력을 자랑하는 그가 떠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살해되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어디서 들었나?”


“현지에 있는 동기에게 들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조사 중이지만, 총독님을 테러했던 놈과 같은 놈에게 당한 듯합니다.”


또다시 동일한 놈들의 소행이란 소식에 헌병대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탱크라도 끌고 그 도시를 쑥대밭으로 갈아엎고픈 심정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오랜 헌병 경력으로 쌓인 촉이란 게 발동했다. 지금 이 상황이 굉장히 찜찜한 게 자신이 아끼는 후배의 죽음에 뭔지 모를 음모가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근데 왜 이 보고를 개인적으로 들어야 하는 거지? 왜 해당 경찰서에서는 별다른 보고가 안 올라온 것인가?”


“잘은 모르겠습니다. 해당 지역 기동대에도 딱히 이와 관련해 지원 요청이 없었다고 합니다.”


“뭐? 그럼 지원 병력도 없이 타케루 혼자 조사를 나갔다가 살해를 당했다 이건가?”


“저도 현지 사정을 아는 건 아니지만, 우선 들은 내용만으로 추측하기엔 그렇습니다.”


“정신 나간 놈들. 알았다. 나가봐. 내가 직접 전화해 보겠다.”


중위는 다시 경례를 하고 문 밖으로 나갔다. 그가 방을 나가기도 전에 헌병대장은 짜증이 잔뜩 묻은 상태로 수화기를 들고 급하게 다이얼을 돌렸다.


“전화받았습니다. 통화시 경찰서장입니다.”


“나 관동군 본청 헌병대장이오.”



**통화시 경찰서 서장실**


상대가 누군지 듣자마자 서장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대장님!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어쩐 일이라고요? 지금 몰라서 물으시는 게요?”


서장은 황급히 서랍을 열어 무언가를 찾는지 산만하게 뒤적거렸다. 그러다 꼬깃꼬깃 구겨진 쪽지 하나를 책상에 두고 한 손으로 이를 문질러 쫙 폈다.


“어··· 음··· 안 그래도 막 보고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타케루 중위의 사망 소식 때문에 연락 주셨죠?”


방금 꺼낸 종이에는 어떤 글들이 적혀 있었다. 이는 바로 타케루에 대해 연락을 받았을 시에 대응할 방안에 대해 세세히 적혀 있었다.



**전날 저녁**


“서장님, 분명 본청에서 연락이 올 것입니다.”


츠즈키가 서장의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빨리 이와 관련해서 본청에 보고를 올리게나.”


“지금 기다리고 있는 게 있습니다.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게 뭔가?”


“독립군 놈들 소굴로 추정되는 곳에 순사 하나를 확인차 보내놨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이 사건을 테러범들과 독립군의 소행으로 몰아가자는 거죠.”


“음······”


서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 정황상 헌병대 중위를 살해한 건 테러범의 소행이 맞다. 단, 그가 불편한 건 그 수사에 지원을 해주지 않았던 거였다.


본청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떨어질 떡고물이 적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 두지 않은 자신의 불찰이었다.


일이 이렇게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 타케루의 차가운 시신을 마주한 순간, 망자의 몰골에 겁이 나진 않았지만, 앞으로 그에게 돌아올 화살에 덜컥 겁이 났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약삭빠른 경감 녀석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묘수를 가져왔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러나 이 녀석에게 티를 내고 싶진 않았다.


어쩔 줄 몰라 밑에 놈이 뒤처리 하는 것만 바라보는 어리바리하고 무능한 통솔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네. 그냥 보고를 하는 편이 낫겠어.”


“서장님, 절 믿고 딱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자넬 믿어? 지금 상황을 보게. 기동대를 두 번이나 데려가서 뭐 하나 건져오길 했나? 이번에도 말이지. 그냥 헌병대 놈이 요청한 거 받아줬음 됐을 것을. 괜히 끼어들어서. 이게 뭔가?”


서장의 독설에 츠즈키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타케루를 그냥 돌려보낼 때는 그렇게 좋아하더니 이제 와서 딴말이라니···


그러나 그는 화를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다 해결될 것이다.


“그 부분은 할 말이 없습니다. 다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나가서 빨리 본청에 보고를 하게.”


말은 이리 내뱉었으나 서장은 츠즈키 경감이 어찌하는지 슬쩍 눈치를 봤다.


'저 놈이 그냥 나간다면 나중에 다 저 녀석에게 뒤집어씌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냥 나갈 놈이 아니지··· 물어라··· 물어서 뭐라도 내놓고 가라.'


서장의 예상대로 츠즈키는 일어서서 잠깐 멈칫하다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서장님, 그럼 딱 반나절만 말미를 주십시오. 내일 오전까지만 눈 딱 감고 기다려 주신다면 그다음엔 제가 보고를 드리든 사죄를 드리든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무언가를 종이에 열심히 끄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서장님은 제 제안을 귀담아들으신 것도 아닙니다. 이건 전적으로 저 혼자 꾸민 일이며, 그러니 수가 틀어진다 해도 제 책임입니다.”


그는 다 적었는지 연필을 내려놓고 거기 적힌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전화가 오면 이리 말씀하십쇼. [안 그래도 막 보고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타케루 중위의 사망 소식 때문에 연락 주셨죠?] 이렇게요.”


자신을 허수아비로 여기는 것만 같아 기분이 확 상한 서장은 종이를 휙 뺏은 뒤 두 손으로 구겨 멀리 던져버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지금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냐?”


“정말 이번 한 번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서장님.”


츠즈키는 굽신굽신 사죄의 인사를 하며, 버려진 꾸깃한 종이를 들고 와 서장의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럼 상대방의 화가 처음보다는 조금 가라앉을 겁니다. 그럼 그때 다시 말을 이어가십쇼.”



**현재**


한 손엔 수화기를, 다른 한 손으로는 쪽지를 들고, 서장은 헌병대장과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미리 보고 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사건을 조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아직도 사건 관련해서 파악이 안 된 거요? 테러범 소행인 거 같던데?”


“수사가 마무리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이 지역 독립단체와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그 폭파범들이 그 지역 불법 단체들 소속이란 말이오?”


“네, 맞습니다. 지금 그래서 놈들 본거지까지 확인 중입니다. 아무튼 이런 복잡한 부분이 있어 보고가 늦은 점 죄송합니다.”


서장은 긴장을 한 탓에 수화기에 얼굴을 잠깐 떼고, 손으로 수화기의 입 쪽을 막은 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킨 뒤 내쉬었다.


“흠··· 뭐··· 수사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근데 왜 타케루 중위는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수사를 혼자 하다가 죽은 게요?”


“지원을 받지 못하다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건 테러범 조사 중에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음··· 어···”


서장은 그때 츠즈키 경감에게 보고받지 않은 내용이 쪽지에 있어서 당황했다. 이렇게 사건을 왜곡해도 되는 것인가?


“뭔데 이리 뜸을 들이시오. 말씀해 주시오.”


“아··· 죄송합니다. 아침이라 목이 칼칼해서요. 흠, 흠. 해당 살인사건은 이 테러범과 테러 조직이 계획적으로 타케루 중위를 암살한 것입니다. 조사 중에 그런 게 아니라요. 놈들이 그가 혼자인 틈을 노렸다가 이 일을 벌인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 조센진 년놈들이 다들 미쳤구나. 어딜 감히! 기다리시오. 내가 부대를 이끌고 그쪽으로 최대한 빨리 갈 테니, 그 놈들이 어디 숨어 있는지만 잘 찾아놓으시오. 내가 싹 다 밀어버릴 테니.”




[독립운동가 인물평전]


이재명 (李在明, 1887~1910)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04년 하와이로 이주한 후 미국 본토에서 안창호가 조직한 공립협회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1907년 귀국한 그는 을사늑약 체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완용을 처단하기로 결심하였다. 1909년 12월 22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벨기에 국왕 추도식에 참석한 이완용을 군밤장수로 변장하여 습격하였으나, 이완용은 중상을 입고 생존하였다. 체포된 이재명은 재판에서 "공범이 있다면 2천만 동포가 모두 나의 공범"이라며 의연한 태도를 보였고, 1910년 9월 30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위키백과,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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