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염탐
**만두집 사장 집 앞**
“저기요.”
사장은 돌아서서 가는 형원에게 뛰어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깜짝 놀라 뒤를 바라봤다.
“집에 만두가 있는데, 들어와서 먹고 가시오.”
“아닙니다. 집까지 어찌···”
“사양 말고 들어오시죠.”
사장은 형원을 툭 치고는 뒤로 돌아 집으로 들어갔다. 문은 열려 있었고, 형원은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그래. 집에 있는지 없는지만 보고 오자. 혹시나 공격을 해 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그렇게 그는 사장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사장의 집 안**
사장의 말처럼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그 위에 찜기를 올렸다.
“아니, 뭘 이렇게까지···”
“아무래도 숙소에서는 드시기 어려우실 테니까.”
형원은 혹시나 진의 흔적이 있을까 해서 티 나지 않게 집을 둘러보았다.
“집 안이 군더더기 없는 게 딱 사장님처럼 깔끔하시네요.”
“고맙소. 근데, 이전에 장례식 때 한 번 들어오지 않았소? 뭘 그렇게 둘러보는 게요?”
사장의 질문에 그는 괜히 뜨끔해서 걸음을 멈추고 사장 쪽을 바라봤다.
“그때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요···”
“그럴 만하죠. 누가 올 거라 생각을 안 해서 정리가 안 되어 있는데 둘러보니 좀 민망하군요.”
“아, 죄송합니다. 근데, 변소 좀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그러시오.”
여기저기 둘러봤으나 별다른 것을 찾지 못한 형원은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살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찝찝함을 뒤로하고 그곳을 나왔다.
“여기 좀 드시구려.”
사장은 아까 진에게 대접한 것과 같은 샤오롱바오를 형원에게 내놓았다.
형원은 이를 보자마자 군침을 삼켰다. 그러고 나서 자기 자신을 자책했다.
‘하나뿐인 친구가 죽어가는지도 모르는데 음식이 맛있어 보이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구나.’
그런 자책감에 음식에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런 형원이 이상한 듯 사장은 물었다.
“만두가 먹고 싶어 찾아온 거 아니었소? 왜 제사 지내는 마냥 멀뚱멀뚱 있소?”
“아··· 너무 민망해서요.”
“내가 괜찮다니깐. 아까 말했지만 보시다시피 집에 아무도 없어서 누군가에게 나눠줘야지 생각했었소.”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경찰서는 다녀오셨습니까? 저번에 그... 경감이 찾아와서, 들르라고...”
사장은 동치미를 들고 부엌에서 나와 탁자에 내어주며 말했다.
“아··· 오늘 일찍 다녀왔습니다. 근데, 그게 왜 궁금하시죠?”
“궁금하기보단··· 그날 그 경감이 그러고 가서··· 괜찮으신 건지 걱정이 돼서요··· 그나저나 동치미까지 감사합니다. 한여름에 귀한데···”
더운 날씨에 냉동고에서 막 꺼내 시원해 보이는 동치미가 참으로 맛나 보여 형원은 또다시 침이 꼴깍 넘어갔다.
“별일은 없었고, 그냥 형식적인 조사만 하고 왔소. 그나저나, 생각해 보니 저에 대한 관심이 참으로 많으시군요. 예진이를 좋아했단 건 핑계였나 보네요.”
혹시나 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두리번거리던 형원은 사장의 말에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눈치 빠른 노친네··· 역시 그냥 들어오라 한 게 아니었구나. 다 노리는 게 있었어···’
형원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긴장했다. 그때 마침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아, 전화가 왔네요. 먼저 받으세요.”
“괜찮소. 손님이 이렇게 와 있는데 통화하는 건 예의가 아닌 듯하오.”
“전 정말 괜찮습니다. 이거 먹고 있을 테니 편하게 통화하세요.”
형원은 젓가락을 들어 만두를 집는 걸 보여주면서 말했다. 사장은 미안해하며 못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빨리 받고 오겠소.”
사장이 전화기 쪽으로 가는 동안 형원은 집었던 만두를 입에 넣으려다 멈칫하고 멀뚱히 바라보았다. 갑자기 진이 어떤 상태일지 너무 걱정돼 눈물이 글썽 맺혔다.
“여보세요. 전화받았습니다.”
목이 메어 만두를 먹기 버거운 형원은 이를 내려놓고, 동치미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시려 했다.
“네? 지금 무슨 일로...”
갑자기 목소리가 작아진 사장의 태도에 형원은 마시려던 동치미를 내려놓고 그를 힐끗 봤다. 사장 역시 눈치가 보여 형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형원은 그에게로 향했던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젓가락으로 다시 만두를 집는 시늉을 했다.
손님이 자신의 통화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자 그는 다시 작은 목소리로 통화를 이어나갔다.
“지금 누가 와 있어서요. 제가 나중에 전화드려도 되겠습니까?”
“아하. 그러시군요. 근데 뭐, 저희가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조심하십니까? 뭐 찔리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전화를 건 사람은 츠즈키였다. 상대의 빈정거림에 짜증이 난 사장은 욱해서 뭐라고 되받아칠까 하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형원을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만두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그럼 짧게 하시죠. 요건이 무엇입니까?”
“방금 신고를 받고 식당엘 다녀왔습니다. 혹시 제가 말씀드린 그 친구는 잘 처리하셨습니까?”
“네······ 부탁하신 건 잘 만들어놨습니다.”
“식당을 보니 그러신 것 같더라고요.”
“네. 그럼 이제 두 번 남으신 겁니다.”
사장이 확인 차원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다시 형원 쪽을 보았을 때, 그는 사장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수화기를 통해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사장은 수화기 소리 구멍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그러면서 표정으로 형원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통화 마저 하세요.”
“아··· 아니···”
지금 츠즈키의 무례함에 더해 형원이 급히 간다고 하자, 사장은 짜증과 당황이 동시에 올라왔다. 우선 입 모양으로 그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조금만 음식을 먹으면서 기다려 달라고 하는 중에, 츠즈키가 말을 이었다.
“그럼 하나 더 요청드리겠습니다. 이번엔 진짜 정보원을 알려드릴 테니, 이 놈도 처리 부탁드립니다. 그의 이름은 김달수입니다.”
형원이 가는 걸 말리려던 사장은 이 말을 듣자마자, 몽둥이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멍하니 아무 말도,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멍해진 그를 보며 형원은 다시 꾸벅 절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사장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그가 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잠깐의 침묵 이후, 사장이 물었다.
“이게 무슨 말씀이죠? 진짜 정보원이라뇨?”
“말 그대로입니다. 진짜 정보원은 사장님 가게에서 일하는 김달수입니다.”
“그럼···. 종수 군은···”
“그도 저희가 제거해야 하는 대상은 맞습니다. 단지 순서가 조금 바뀌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어이없는 말을 담담하게 내뱉는 츠즈키에게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화를 참을 수 없어, 수화기를 든 손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렸다.
“이런 뭐 같은···. 짓을 왜···”
“저희로선 사장님을 믿어도 되는지 확인이 좀 필요했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근데 어차피 세 번의 부탁은 들어주시기로 한 거니까요.”
“이번엔··· 그자가 틀림없습니까?”
“네, 이제는 저희도 사장님을 믿으니까요. 그나저나 오늘 죽은 자의 시체를 확인해야 하는데...”
“귀를 썰어드릴까요? 아님 코?”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지는 사장의 분노에, 츠즈키는 살짝 움츠러들었다.
“아··· 뭐 그렇다면 손목을 보여주시죠.”
“네, 오늘 내로 자리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에 알려준 정보원은 진짜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장난이 반복되는 건 원치 않습니다.”
“하··· 사장님··· 뭔가 착각하시는 듯한데··· 지금 저희에게 뭘 협박할 위치가 아니···”
츠즈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장은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었다. 안면 전체가 떨릴 정도로, 그는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집 밖으로 뛰쳐나가 형원을 찾았다. 그러나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다시 집으로 터벅터벅 들어와 안방으로 들어가던 중, 탁자에 있는 음식들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 비해 만두 수가 줄지 않음을 확인한 사장은, 뭔지 모를 한숨을 내뱉은 후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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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사장이 갑자기 뛰쳐나와 주변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다시 들어가는 걸 몰래 지켜본 형원은, 그가 자신을 찾고 있는 중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저 사장, 지금 뭔가 구린내가 나··· 우선은 계속 붙어 있어야겠어···’
**류허현 작은 마을**
해가 저물었고, 주변이 어두워졌다. 시골 마을은 특히 더욱 칠흑같이 캄캄했다.
츠즈키의 지시를 받고 이 마을 부근에 몰래 온 관동군의 순사는 충분히 해가 떨어지자, 마을에 잠입하기 위해, 근처 산에서 동네로 조심히 내려갔다.
‘조센진 놈들이 모여 사는지, 무기가 있는지 정도만 확인하면 되겠지?’
그는 우선 각 집들의 담장 밖으로 몰래 다가가, 주민들이 쓰는 언어에 집중했다. 늦은 시간이어서 대부분은 잠들었는지 마을은 고요했다.
그러던 중, 마침내 말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왜 안 주무시고 여기 나와 계세요?”
“거사가 며칠 안 남았는데 관동군 수사망은 자꾸 조여오니 잠이 잘 오질 않네요.”
“그러게요. 그전까지 다른 동지분들도 큰 탈이 없으셔야 할 텐데···”
순사는 이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다. 한국어를 쓰는 것과 대화의 내용 등을 미루어, 여러 정황상, 이곳은 독립군 놈들의 은신처가 맞는 듯했다.
그때, 조용했던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자 동네의 여러 마리 개들이 동시에 짖어댔고, 동네 곳곳에 다시 불이 켜졌다.
‘이런 개새끼들···’
사람들이 하나둘씩 집에서 나오기 시작하자, 순사는 재빨리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그곳은 소와 돼지를 키우는 축사였다.
‘악! 어쩐지 악취가 심하더니···’
그는 들어오자마자 코를 막았다. 그러나 그 안의 가축들이 사람을 발견하고는 울기 시작했다.
꿀꿀꿀꿀!
음메에에에—!
갑자기 축사 안은 소와 돼지 울음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축사에 무슨 일 있나 봅니다! 저기로 가 보시죠!”
이 말에 순사는 당황했다. 더욱 문제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딱히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안에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젠장. 어쩌지!’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들이닥쳤을 때, 그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곳곳을 호롱불로 비춰가며 혹시나 뭐가 있는지 살폈지만, 별다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찍! 찍!
그때 마침, 쥐 몇 마리가 불빛에 놀라 도망쳤다.
“쥐새끼들이 돌아다녀서 얘들이 놀랐나 봐요. 별일 아닌 듯하니 다들 들어가시죠.”
그렇게 사람들이 돌아갔고, 시간이 좀 지나자 개들도 짖기를 멈췄다. 다시 이 시골 마을은 컴컴해졌고, 부엉이 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으로 돌아왔다.
이때, 축사 안 거름더미 옆에서 아까 그 순사가 조용히 일어났다.
“아이씨··· 이게 뭔···”
그는 코가 썩어 아무 냄새도 안 나는 듯했고, 온몸이 간지럽고 따가움마저 느껴졌다. 겨우겨우 고통을 견디며 마을을 벗어난 그는, 아까 타고 왔던 말을 타고 다시 시내 방향으로 돌아갔다.
[독립운동가 인물 평전]
임치정 **(林蚩正, 1880~1932)**
평안남도 용강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가 안창호 등과 함께 공립협회를 조직하고 간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공립신보 간부로서 언론을 통한 항일운동에 힘썼으며, 1906년 귀국 후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부총무 겸 회계주임으로 일하면서 신민회 창립에 참여하였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통제 진남포 참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시사저널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