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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의지금 Dec 20. 2022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연애 끝에 느낀 것들

그때는 몰랐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누나 앞을 보고 가야죠 위험하잖아요”



이별하고 얼마 지났을 때 나는 멍한 상태로 이어폰을 끼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집 근처 산책을 하고 있었다. 산책을 하면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아서 지금도 자주 하곤 한다.

그런데 그날 어느 순간 갑자기 자전거를 탄 어떤 꼬마가 내 옆을 가로질러 나와 앞을 막으며 내게 말했다.


“누나 앞을 보고 가야죠 위험하잖아요”


8-9살 되어 보이는 꼬마였는데 나를 꾸짖듯 앙칼지게 말하는 목소리톤에 내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춰졌었다.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꼬마에 나는 순간 너무 놀랬고 그냥 앞을 보고 걸었는데 꼬마가 앞쪽에서 온 것 도 아니고 뒤에서 나오더니 갑자기 "앞을 보고 가야죠"라는 말에 당황해서 조금은 의아했지만 이어폰에 들리는 큰 노랫소리에 정신이 팔려 뒤에서 자전거가 오는 걸 미처 피하지 못하고 위험하게 걷던 나에게 던지는 꼬마의 경고 메시지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이별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연애를 해서 그런지 꼬마의 저 한마디와 이 상황에 문득 많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때 나는 앞을 보고 걷는다고 생각을 했지만 정작 나는 내 인생의 앞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리에서만 보고 그 사람에게 더 집중했던 내 시선과 걸음걸이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돌보고 나에게 집중하는 걸 우선시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안타깝고 나에게 미안하다.

내가 노랫소리에 정신이 팔려있고 뒤에 자전거가 오는지도 몰랐던 것처럼, 나는 어느 순간부터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 사람한테 빠져서 내 길을 잃은 채 그 사람 길 속만 하염없이 걸었다. 어쩌면 나는 그 꼬마 말처럼 나를 잃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길을 걷고 있었던 걸 수도 있겠다.


나를 나답지 못하게 만들고,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있는 건 어쩌면 참 무서운 일이다.

노랫소리에 정신을 놓았었던 내가 다칠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나를 잃을 수도 있는 것처럼


나를 지키려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시선을 분산시키는 힘도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시선과 길을 내어주는 것 도 좋지만, 나를 챙기고 아껴주며 나의 길을 걷는 것 또한 중요하다. 어쩌면 이것이 먼저 되어야 할 수 도 있다.


그 꼬마는 그 말을 끝으로 자전거를 타고 힘차게 앞으로 가며 나에게 소리쳤다.


“ 저 잘 타죠 누나? 혼자 탈 수 있어요 멋있죠?”


꾸짖을 땐 언제고 자랑하듯 말하는 그 말에 너무 귀엽고 어이없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었다.

"하핳ㅎ 보조바퀴가 있는데...???"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세히 보니 페달에 발을 대고 안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발을 움직여 나아가는 행동 하나하나 자체가 처음 도전해 보는 그 꼬마에게는 큰 의미고 자부심일 것 같다. 어쩌면 나도 지금 당연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예전에 처음 도달했을 때 뿌듯함과 성취감, 행복감을 느꼈던걸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해졌지만 예전 아주 어릴 때 나는


받아쓰기를 만점 받는 것도

처음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되었을 때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처음 대중교통을 타 보았을 때도

지금 보면 별거 아닌 이런 모든 시간들 안에는 그 시절의 내가 느끼는 내 시간과 용기, 인내와 노력들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지금의 나는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왜 이렇게 혼자 불안한 지 모르겠다.

이별 끝에 자존감이 낮아졌었다. 자존감이 낮아지니 홀로 서는 법을 모르는 아이처럼 혼자 우주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예전의 나의 그 시간들처럼 지금의 내 시간을 노력과 인내로 채우다 보면 내가 원하는 것들을 지나간 그때처럼 얻어지는 순간들이 분명 올 거라 믿는다.


지금은 당연하게 할 수 있게 된 그 익숙함 속에서 나의 힘을 과소평가하고 너무 안일했던 것 같다. 이날 나는 산책을 나와서 갑작스럽게 이 일을 겪고 나를 더 사랑해 주며 나에게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의 힘을 믿고 내 길을 위해 도전하는 시간을 다시 갖고 싶어 졌다. 내가 많은 걸 깨달았던 소중한 순간이다.


마음이 너무 힘들 때는 많이 괴로운 것 같다. 하지만, 아픈 순간은 곧 지나간다. 다음의 나는 같은 패턴으로 살지 않으려면 깨닫기만 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삶을 살기 위한 시간과 노력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는 우주에 혼자 떠있는 내가 아닌 지구 속 단단한 땅 위에 두발 닿아 떳떳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나를 기대해 본다.


꼬마야, 고마워.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너 덕에 오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

멋있게 커서 바르고 행복하게 살아. 나도 행복해 볼게.


p.s. 이모가 아니라 누나라 해줘서 고마워. 하핳ㅎㅎ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다행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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