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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철 Jun 28. 2023

모락산길을 걷다.

경기옛길중 삼남제3길

 경기옛길 중 삼남길은 10개 길로 구성되었다. 나는 삼남길 제5코스인 중복들길을 걷고 경기옛길의 매력에 빠져서 걷기 시작했다. 

  삼남길은 서울에서 경상의 삼남 지방으로 연결된 1,000리에 달하는 긴 길을 삼남대로라고 불렀으며 이 길은 주로 조선 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젊은 선비들이 이 길을 걸었고 삼남 지방의 풍부한 물산도 이 길을 오갔다.

 이번에 걸은 길은 경기옛길중 삼남길 제3길인 모락산 길로 백운호수 입구에서 지지대비까지의 약 13.6Km이다.

 옛날 세조가 어린 조카인 단종의 자리를 빼앗고 왕위에 오르자 사육신·생육신 등의 충신들이 일어났을 때 그 여파가 세종의 제4자이며 세조의 동기간인 임영대군에게까지 미치게 되자 임영대군은 장님으로 가장하여 이 모락산 기슭에 와서 숨어 살면서(혹은 장님이어서 세조가 차마 죽이지 않고 이곳으로 귀양 보냈다고 함) 매일 산 정상에 올라 서울을 향해 "망궐례"를 올렸다 하여 '서울을 사모하는 산'이라는 뜻으로 '사모할 모(募)','서울이름 락(洛)'으로 하여 모락산(慕洛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트레킹은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와 같이했다. 몇 년 전 큰 수술을 받아 염려하는 하는 마음이 커서 사전에 몇 번 확인하였으나 평소 오전 오후로 빠지지 않고 만 보씩 걷는다는 말에 믿고 같이 했다. 

인덕원역에서 만나 5번 버스를 타고 백운호수 입구로 이동한 후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는 백운호수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임영대군묘역까지이다. 

임영대군 사당

이 길의 시작은 백운로를 따라 걷다가 의왕과천고속도로아래 터널을 지나 문화예술로에서 산길로 접어들어 작은 고개를 넘으면 고개 중턱에 임영대군 사당을 마주한다. 사당은 마을에 있었으나 조선 후기 즈음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전한다. 사당은 맞배지붕에 3칸으로 축조되어 있는데 가운데 방에는 대군의 신주가 모셔 있고 양쪽 방에는 제기와 제복 등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임영대군의 태어난 연도가 묘역과 사당에는 1418년으로 되어 있으나 모악산 둘레길 안내도에는 1420년으로 되어 있어 혼란을 초래한다. 이런 사소한 기록도 조금 더 신경을 쓰면 하는 맘에 아쉽다.

임영대군묘

사당의 문은 굳게 잠겨 있어 우리는 담 너머로 잠시 둘러보고 바로 묘역으로 이동하였다.

묘역은 삼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석물로는 숙종 때 세웠다는 장명등은 모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며 좌우에 문인석 2기가 배치되어 있는데 얼굴이 새겨진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공복(公服) 복두(㡤頭)에 두 손을 모아 쥐고 있는 홀(笏)도 선명하며 이는 조선 전기의 양식이다. 묘역은 막힘이 없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잠시 땀을 식히고 다음 목적지인 오매기마을로 출발하였다. 

 오매기는 조선시대부터 원래 문화 유씨를 중심으로 문씨, 진씨, 노씨, 마씨등이 각각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다섯 집 매 말을 뜻하는 오막동(五幕洞)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가는 길은 잘 정돈되어 있고 주변에 새로운 건물이 건축되고 있었으나 주변에는 빈집도 간혹 눈에 뜨였다. 폐가 옆에 있는 자두나무 열매는 수확하지 않아 길 위에 널브러졌고 나의 목마름을 해소해 주었다. 이어지는 산길에 피곤함이 몰려왔으나 그래도 숲길의 그늘이 피곤을 덜어 주고 같이 걷는 동반자가 지친 걸음에 힘을 보태준다. 

모락산둘레길 종합아내도

오메기마을을 지나 산길로 한참을 걷자 왕림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왕곡동의 왕림은 정조대왕이 능행할 때 이곳에 “왕께서 임하시었다”하여 생긴 이름이라 한다, 그리하여 ‘왕이 임하신곳’즉 왕림(王臨)이라고 해야 하나 사사로이 왕(王)이란 한자를 사용할 수 없어 같은 음인 왕(旺)으로 고쳐 왕림이라 전해온다고 한다. 왕림마을은 영조와 정조때 6정승을 배출한 청풍김씨의 세거지이다. 마을 입구에는 청풍김씨묘문비와 하마비가 세워져 있었다. 삼남의 관찰사들은 물론 대소 관원들이 부임 인사를 위해 노재상(老宰相)에 안부를 묻거나 묘소를 참배할 때 반듯이 말에서 내리고 걸어서 들어오도록 하였다고 하니 당시 위세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1977년 홍수 때 하마비는 사라져 지금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왕림마을 유래

 왕림마을을 지나면 의왕 시내에 이르고 충혼탑을 지나 의왕의 옛 중심인 사근행궁터에 도달한다. 이곳은 의왕시 구도심과 행정타운이 공존하는 곳이다. 사근행궁터는 1760년 사도세자가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이곳에서 쉬어간 일이 있었는데 효심이 지극한 정조는 양주 배봉산에서 부왕인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의 화성으로 이장하던 1789년 10월 6일 상여가 이곳에 이르자 마중한 이곳 노인들에게 경기감사로 하여금 쌀을 나누어 주게 하고 행궁을 지으니 이름을 사근행궁(肆覲行宮)이라 하였다. 정조는 그 후에도 수차에 걸쳐 이곳에 들렀는데 특히 1795년 2월 10일과 15일에는 어머니 혜경궁홍씨와 함께 들러 수라(식사)를 들기도 했다. 사근행궁은 일제강점기에 의왕면사무소로 이용되었고 1919년 3월 31일 수백 명의 사람이 모여 이 자리를 중심으로 독립 만세운동을 전개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시청 별관의 한쪽 구석에 행궁터란 비만 남아 과거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으나 그나마 이 비도 1989년 1월 1일 백운회원들이 세워 역사를 기리고 있다. 

사근행궁터

사근행궁터를 지나 골사그네를 거쳐 마지막 목적지인 지지대비를 향한다.

의왕경찰서에서 골사그네 사거리까지 가는 길은 도로포장 공사 중이고 고천제2교도 공사 중이라 출입금지라 쓰여 있었지만, 작업자들을 위한 소로를 이용하여 통과하였고 포장공사로 인해 보건소 앞으로 우회하여 걸었다. 이런 곳은 미리 공사 중인 걸 공고하고 대체로를 개발하여 공지하면 좋을 듯하다.

보건소를 지나 산길을 걸으니 벌써 점심때가 되어 허기가 몰려온다. 사근행근터를 지나면서 시원한 콩국수나 냉면으로 메뉴를 정하고 음식점을 잦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걸은 것이 아마 욕심인 듯하다. 그래도 시원한 콩국수를 그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더니 골사그네에 도착했다. 

골사그네는 지지대고개 아랫마을로 삼태기처럼 오목한 그곳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은 산세가 험악하고 산림이 우거져 맹수의 피해가 극심해 사람들이 안주하기를 꺼렸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이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 육림의 날 및 식목일 행사를 이곳에서 거행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식목일 기념 조림지 표시가 있는 곳이다. 

골사그네에서 점심을 먹거나 잠시 쉴 곳이 없어 망설이다가 조금 더 걷기로 하고 지지대비를 향해 출발했다. 골사그네에서 산길로 접어들기 전 그늘 터를 보더니 동행이 여기서 간식 먹고 가자 한다. 반갑다. 길가 그늘에 앉아 간식과 물을 시원한 콩국수라 생각하고 넘긴다. 마침 지나는 아주머니가 아래위로 쳐다보는 눈길이 나이든 남자 둘이 길에서 간식 먹고 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양갱이에 어너지바 그리고 귤이 갈증뿐 아니라 한끼 대용식으로 충분하다. 나는 새로운 기운을 얻고 걷는다. 삼남길 이정표가 지지대비까지 1.2Km를 남겼다고 알려준다. 

지지대란 이름은 예전에는 고개 정상부근에 미륵당이 있어 미륵고개라 했으나 정조가 헌륭원에서 환궁하는 길에 이 고개를 넘으면서 멀리서나마 헌륭원이 있는 화산을 바라볼 수 있으므로 행차를 멈추게 하고 헌륭원쪽을 뒤돌아보며 떠나기 아쉬워하였다고 한다. 이때 정조의 행차가 느릿느릿하여 이곳의 이름을 한자의 느릴 지(遲)자 두 개를 붙여 지지대(遲遲臺)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골사그네에서 지지대 정상까지는 오르막길이다. 이 길이 모락산 길 중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이다. 그래도 길지 않아 정상에 도착하니 지지대비까지 3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잠시 벤치에 누워 숨을 가다듬고 눈을 감고 돌아본다. 마지막 하산길이 남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다 걸었다는 안도감에 온몸이 나른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전거 타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지나며 인사를 한다. 네 분이 한 분도 안 빠지고 인사를 하고 지나친다. 하지만 길옆에는 자전거 통행 금지 플랭카드가 붙여 있다. 이분들은 안보이는 듯하다.

잠시 휴식을 끝내고 하산길에 접어든다. 휴식의 효과인지 트레킹의 마무리를 몸이 알아서인지 다리에 힘이 가고 엔도르핀이 넘치는 듯하다.

지지대비

지지대비는 정조의 효심을 추앙하기 위해 세운 비석을 모신 곳으로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지지대 언덕길에 있고 주변에 버스 정류장도 없으며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것이 아쉽다. 지지대비 앞 계단을 내려오는데 작은 비가 눈에 뜨인다 ‘대소인원기하마’ 말을 타고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씨가 새겨진 하마비가 지지 대비를 지키고 있다. 한국 전쟁 때 생긴 총탄이 하마비에 움푹 패여 그시절의 아품을 느끼게 한다. 

총탄맞은 하마비

 여기서 마무리 하기는 교통편이 안좋아 조금더 걸어 지지대고개 휴게소까지 가서 스템프도 찍고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이번 모락산길 트레킹은  길가에 안내리본과 입석 방향표시판이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설치되었고 친구와 둘이 같이 걸으나 위치마다 표시리본이나 표시판을 쉽게 발견하여 어려움없이 트레킹을 완주할 수 있었다. 

보람찬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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