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길 제4길 서호천길
지난 며칠 사이에 많은 비가 내렸다. 어제는 비는 안 내렸지만 흐린 날씨에 비 온 뒤 습도가 높아 여름 장마가 제대로 느껴지는 날이었다.
오늘 오후부터 열대야가 시작되며 주말부터 다시 장마가 시작이라는 예보를 듣고 지난 토요일 포기한 삼남길 제4길 서호천길을 걷기로 했다.
서호천길은 지지대비에서 출발하여 서호천을 따라 서호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지지대비와 지지대고개는 정조임금이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현륭원을 찾았다가 돌아가는 길이 못내 아쉬워 자꾸 행차를 늦췄다는 이야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곳으로, 정조임금의 애틋한 효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 묘소를 전곡에 모셨지만 지지대고개 꼭대기에서 전곡 방향을 바라봐도 아쉬움이 남거나 애틋한 맘이 안 생기는 것을 보니 나는 정조만큼 효심이 없거나 내가 왕이 아니라서 그런 듯했다.
오전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했다.
퇴직 전에는 집에서 식사를 할 때는 준비된 밥상에 앉아서 먹기만 했다면 최근에는 대부분 차려 놓고 외출한 밥상에 홀로 한 끼를 때우거나 냉장고에서 내가 꺼내 먹는다. 퇴직 후 남자는 할 일이 없어 시간 보내기를 고민하지만, 여자는 그때부터 새로운 인생에 바빠진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예전에 참가했던 어느 교육에서 강사가 한 말이 남자는 50이 넘으면 홀로서기를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은 대우를 받을 거란 상상은 빨리 접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흘려들었지만, 이제는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안양역에서 64번 버스를 타고 지지대고개를 지나 이목동에서 하차했다. 지지대고개에서는 평소에 승하차 인원이 없어서 버스정류장도 없어지고 안내방송도 무정차 통과한다고 방송한다. 지난번 트레킹때 모락산길 종점이 지지대비까지 이지만 버스정류장이 없어 이목동까지 걸었고 오늘은 이어서 이목동에서 출발이다.
버스에서 하차하여 이목지하도를 지나 동원고등학교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 걷지 않아 해우재에 도착했다. 해우재는 세계화장실협회 창립을 기념하고자 수원시장이었던 심재덕시장이 30여 년간 살던 집을 허물고 변기 모양의 집을 지었고 그 이름을 바로 해우재라고 하였다. '해우재'는 '근심을 푸는 집'이라는 뜻으로 사찰에서 화장실을 일컫는 해우소에서 비롯되었다.
해우재를 한 바퀴 돌아보니 이곳과 경기옛길의 의미와 거리감이 느껴졌다.
다만 트레킹중 잠시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의미를 새기고 다시 출발한다. 출발하였던 이목동 지하차도로 돌아와서 이목2교에서 서호천을 따라 걷는다.
여기서 서호공원까지는 약 4Km가 조금 넘는다.
서호천은 안양천보다 폭이 좁고 아직 정비도 덜 되었다. 엊그제 내린 비로 주변의 풀들은 물에 잠긴 흔적이 남아 있고 길은 물이 빠지지 않은 곳도 있어 진흙탕이며 군데군데 공사 중이라 통행금지다. 서호천을 따라 걸으면 백로의 서식지도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오늘의 도로 사정은 서호천을 따라 걷기가 불가능하다. 경기옛길 앱을 켜고 코스를 확인한 후 둑길로 올라가 계속 진행한다.
안내 리본이나 부착형 표식은 없지만, 경기옛길 앱에서 알려준 코스를 기억하고 둑길로 계속 걸었다. 둑길은 나무들이 오래되고 보존이 잘되어 있어 그늘이 걷는 피로를 덜어준다. 다만 둑길은 도로와 맞닿은 곳에서 도로를 건너기 위해 건널목까지 돌아가야 하는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
둑길을 따라 한 시간쯤 걷으니 눈에 익은 풍경이 나오고 서호공원 입구다.
서호천의 공사로 지정된 코스를 이탈하여 걸었고 덕분에 백로의 서식지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코스 이탈로 단축된 거리를 걸은듯하다.
비 온 뒤 날씨는 습하고 온도는 높아 피로가 빨리 오는 날씨이지만 사고 없이 도착한 것을 감사하고 오늘을 마무리하며 전철에 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