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향한 누군가의 배려는 그 누군가를 힘껏 살게 만드는 힘
어제는 아들의 태권도 품심사가 있는 날이었다. 심사가 열리는 장소는 한화베이스볼파크 바로 옆 체육관. 연일 매진을 경신중인 야구장은 주차장이 마땅찮아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차타고 이동하는 것에 익숙해져 걷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 조금 번거롭기도 했지만 오랜만의 버스행이라 그런지 설렘으로 다가왔다.
주말이라 버스는 역시나 냉혹하다. 발디딜틈 없는 버스 안을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본다. 게다가 버스의 맨 앞자리는 어르신 분들로 채워지므로 언감생심. 아이가 없다면 서서 가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두 아이를 대동했을 경우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의자 팔걸이를 꼭 잡으라고 일렀지만 흔들림이 심한 버스안에서 중심을 잡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시시각각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두 아이를 내내 주시하며 마음 속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별안간 버스가 급정거를 했고둘째아이가 넘어질 뻔하자 나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라며 비명을 내지르고야 만다.
그때 앞뒤로 앉아계시던 노쇠하신 두 할아버지께서 어쩔 줄 몰라하시며 엉덩이를 달싹이셨다. 그러더니 그 좁은 좌석을 한 쪽 끝을 내어주시며 아이들 여기 앉히라며 손짓을 하신다. 마치 두분이 합을 맞추신 듯 말이다. 우리는 손사레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더니 짐만 아니면 양보해줄텐데 라고 낮게 읊조리며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남편은 그런 할아버지께 세 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재차 말하며,하필 두 아이가 옆에 있는 바람에 내내 좌불안석이셨을 두 분을 안심시켰다.
간만에 만원버스에서 흔들흔들 버스의 울림을 온몸으로 필사적으로? 받아낸 우리는 이윽고 원하는 정거장에 도착했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앉아오진 못했지만 그 두분의 배려로 마치 자리에 앉아서 편히 온 듯 기분 좋게 버스에서 내렸다. 내내 서서 온 우리 보다 옆에 선 우리에게 마음을 쓰느라 마치 서서 가는 양 불편하셨을 두분할아버지의 모습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다른 이의 불편함을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는 그 두분의 따스함으로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뜨끈해지는 어제였다. 몸은 앉아가셨지만 마음은 내내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하는 동안 함께 서서 가주셨으니 이보다 더 한 친절이 어디 있을까.
이런 따스함의 순간들은 늘 옳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졌다해도 누군가를 위해 옆자리를 내어주는 것. 이 행위는 세상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작은 날개짓과도 같다. 그리고 누군가를 돌아볼 겨를 없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느라 자주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내게도 잠시 잊었던 인류애를 샘솟게 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끈한 무언가를 수면위로 끌어올려주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마음이 척박해질 때면 이런 일상 속 따스한 순간을 온몸의 촉수를 세워 포착하고 기록해야겠다. 그리고 어제 따스함의 수혜자가 되었으니 이제 내 차례다. 따스함의 선순환을 나의 어떤 행위로 한 번 시작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