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받는 다정함, 결코 당연하고 사소하지 않다.
지난 주 목요일, 새로 산 검정색 가죽자켓의 중간 단추가 툭 하고 떨어져나갔다. 단추를 달 여유조차 남아나지 않았던 평일 늦은 저녁. 나는 단추를 자켓을 대충 소파 위에 올려둔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퇴근 하고 집에 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는데 뭔가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단추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오늘 외출복으로 간택되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소파 위 가죽자켓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 이상하다 싶어 드레스 룸 옷걸이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레스 룸을 활짝 열어젖히자 가죽자켓이 옷걸이에 단정히 걸려있는 것을 발견하곤 숨을 고른다. 무심결에 자켓을 살피다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중간 단추가 원래 위치로 돌아와있었던 것이다. 드레스룸 옷장을 닫고 잠시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침대 위도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을 보며 그제서야 모든 사태가 한 번에 정리되었다.
이것은 분명 오늘 일찍 퇴근한 남편의 소행이리라. 가슴이 잠시 뭉근해지며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다. 현관에서 띠딕띠딕 비밀번호소리가 들리고 문이 철컹하고 닫히자 마자 남편이 빈 분리수거 통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나는 말없이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려주었다. 그 순간 남편은 마치 받아쓰기 100점을 맞아 의기양양하게 현관문을 들어선 아들의 모습과 똑 닮아있다.
손이 닿는 곳 마다 남아나는 물건이 없게 만드는 마이너스 손인 나에 비해 손끝이 야무지고 섬세한 마이다스의 손 남편은 종종 내게 이런 감동을 선사하곤 한다. 얼마 전엔 자주 쓰던 브랜드의 모자가 툭 하고 부러져 아일랜드 식탁 한 쪽 끝에 방치해두었는 데 그걸 허투루 보아넘기지 않고 섬세한 바느질 솜씨로 원래의 모습 그대로 재현해놓았고, 한동안 귀없이 지내던, 딸이 가장 아끼는 하츄핑 플라스틱 인형이 반짝이는 두 귀로 다시 변신하는 바람에 그날 저녁 딸의 뽀뽀세례를 한가득 받았다.
또한 아들이 태권도 학원에 다녀오면 늘 문 앞으로 뛰쳐나가 우리 아들 왔어?라는 말로 아들에게 학교 학원의 쳇바퀴를 도느라 온몸에 쌓인 피로를 단숨에 날려주고, 100점 맞은 받아쓰기 공책에 아들 사랑해 문구를 꼭 적어주곤 한다. 그런 사소한 행위들을 발견할 때면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질 때가 자주 있다.
평소 애정표현이 서툴고 아이들에게 자주 엄한 아빠의 역할을 하지만 온 집안 곳곳에 퍼져있는 남편의 다정함에서 그의 사랑을 피부로 느낀다. 그 따스함은 조금 과장하자면 매일 집밖을 나서는 우리에게, 매서운 찬바람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전신핫팩과도 같은 역할을 해준달까.
가족은 너무 가까운 관계라서 다정함을 당연한 무언가로 치부하며 마치 먹고 난 과자부스러기처럼 그냥 흘려보내기 쉽지만, 남편은 사소한 다정함의 부스러기도 놓치지 않고 마음에 다 쓸어담아 자신만의 행위로 자주 표현해낸다. 아마 남편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가족에게 자주 내보이는 작고 사소한 다정함이 크고 대단한 무언가보다 가족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지탱하는 큰 지지대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나도 오늘 퇴근하면 남편에게 이런 사소한 다정함을 많이 내보여야갰다. 바쁜 일상에 치여 속으로 눌러둔 말들.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냥 흘려보낸 말들을 다시 고이 주워담아 말이다.
"어제 두시간 장거리 운전 힘든 내색 없이 운전해주어서 고마워. 덕분에 우리 가족이 늘 안전하게 나들이 잘 다녀오는 것 같아." 그리고 남편이 들으면 단박에 어깨가 하늘로 치솟을 이 말도 사은품처럼 덧붙여서.
"다음 생에도 나는 자기랑 결혼할거야"
물론, 다음 생이 없다는 건 명명백백한 사실이기에 가능한 말.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