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자습시간에 만난 다정함

또래끼리 발휘하는 다정함이 교실의 분위기를 따듯하게 만든다.

by 이유미

오늘 아침자습시간은 전에 없이 차분함이 감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어제 4단원 수학단원평가를 치른 날이기 때문이다. 도형의 개념이 아이들에겐 어려웠는지 평소 시험을 잘 보던 아이들 몇몇이 고배를 마셨고 아침부터 틀린 문제 풀이에 여념이 없다.


중간 기말고사를 보던 예전과 달리 학교에서 자신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단원평가. 아이들은 단원평가의 점수를 받아드는 순간 심장이 발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나 이번 단원평가는 평소보다 시험지에 내린 빨간 빗줄기의 갯수가 평소보다 많았다.


늘 아이들에게 강조한다. 시험점수에 좌절할 게 아닌 틀린 문제를 통해 내가 평소 모르는 것을 점검할 기회로 삼자고. 그를 바탕으로 더 나은 내가 되는 거라고 말이다. 시험지에 세차게 내린 빨간 비가 아이들의 마음도 세차게 때렸는지 그 말에도 아이들 몇몇은 눈시울이 붉어진 아이도 드문드문 눈에 든다.


하긴, 나도 내가 쓴 글이 공모전에서 몇 번 고배를 마셨을 때 누군가가 괜찮아. 더 발전할 기회로 삼으면 되지뭐. 도전한 것 자체가 의미가 있어. 라며 달디단 말로 위안을 해줬음에도 불구, 쓴 좌절감을 맛보고 내 존재자체가 사그러드는 느낌을 받곤 하니 아이들의 마음 십분 이해는 한다.


시험지를 고치는 아이들의 손길이 분주한 와중에 계속 연필만 굴리는 한 아이가 시야에 든다. 이 아이는 평소 학습능력이 많이 부족해 곱셈과 나눗셈 기본 연산조차 버거워 하는 아이다. 늘 아이에겐 단원평가가 인생의 큰 난관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몇 번을 붙잡고 지도해봐도 인지능력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 나도 헛발질을 하는 느낌이랄까? 목아프게 설명해도 늘 제자리인 아이를 볼때마다 가슴에 무언가 얹힌 듯 늘 체기가 느껴졌다.


그날따라 단원평가에 사방으로 세차게 들이친 빨간 빗줄기를 보며 얼굴이 유독 어두워지는 아이의 모습이 시야에 든다. 갑자기 애잔한 마음이 든다. 나는 아이를 보며 가끔 체기를 느끼지만, 잘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되는 아이 자신은 내내 가슴이 묵직한 상태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조용히 불러 할 수 있는 만큼만 고쳐와보라고 조용히 말을 내놓으며 토닥인다.


아이를 자리로 돌려보내고 찰나의 순간. 내 메신저 창에는 업무처리요구 메세지가 소낙비처럼 내린다. 오늘따라 처리해야 할 업무가 태산이라 아이를 붙잡고 일일이 지도할 시간조차 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업무메세지를 켜서 일을 처리하는 데 앞자리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흘러든다. 아침시간에 친구와 잡담을 나누겠거니 주의를 주려는데 뜻밖의 아름다운 광경을 목도했다.


그 아이의 바로 앞자리에 앉은 00이가가 자세를 틀어 그 아이의 시험지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해주는 광경. 나는 잠시 말을 잃고 그 모습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볼펜까지 들어 문제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내내 갸우뚱하는 그 아이에게 또박한 목소리로 설명하는 그 수굿한 뒷모습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나는 당장 00에게 달려가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조심스레 눌러내었다.


그 수런거림은 10분이나 이어졌고 마침내 그 아이는 눈빛에 활기를 띠며 내게 시험지를 가져온다. 아이의 시험지에서 세찬 빨간 비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한 아이의 다정함이 검은색 볼펜으로 채워져있었다. 나는 채 설명을 못마친 여남은 문제를 조금 더 설명한 뒤 아이를 돌려보냈다. 아침시간에 굳어있던 그 아이의 표정은 봄눈 녹듯 사르르 풀어져있다. 그 아이와 00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나는 가슴이 뭉근해져옴을 느낀다. 오늘 하루 내내 00이의 앞자리 위에만 조도가 높은 조명이 비춘 듯 했다.


수업이 다 끝나고 채 검사를 못마친 일기탑이 내게 얼른 검사하라고 재촉한다. 그 일기탑에서 잽싸게 파란색표지인 00이의 일기를 꺼내어 아까 그의 공을 이렇게 치하한다.


"오늘 네가 보여준 다정함의 행동 선생님이 눈여겨보았어. 친구의 힘듬을 세심한 눈으로 바라봐주고 열심히 설명해주는 너의 모습 정말 빛났어. 네가 1반이라 자랑스러워"


아이들 단원평가 채점을 마치고 툭 하니 올려둔 채점색연필에 쓰인 문구가 갑자기 내 시야에 든다.


모든 문제지 위에 빨간색 함박눈이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소나기는 이제 그만.


그 문구가 잠시 내 가슴에 폭 안겨들어 다음 문장으로 바뀌어간다.


"한 아이의 다정함은 모든 문제지 위에 내린 소나기를 단숨에 빨간색 함박눈으로 바꾸는 마법의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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