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편집자를 위한 강의 주제였다. 솔직하게, 제목이 충격적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제목으로 강의를 올려둔 거지?’ ‘이거 대놓고 들어도 되는 건가?’ 별생각이 다 들면서, 조심스럽게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아.. 괜히 쫄았다. 강의는 편집자가 교정 교열을 할 때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을 시작으로 어떤 순서로 교정 교열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정확히 내가 들었어야 하는, 알았어야 하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딱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 글인데 작가가 오죽 신경 써서 썼겠어?라고. 계속 모른 채 그냥 디자인하는 데만 몰입해 있었다면 어떤 책이 나왔을지. 생각만으로 아찔하다. 작가의 글이 엉망이었다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만든 책이 아닐 테니까.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원고를 다시 살폈다. 종이로 출력해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연필과 형광펜으로 표시해 가면서 열심히 봤다. 그런데 아뿔싸. 작가에게 수정을 요청하기 위해 보내려면 이걸 모두 스캔하거나 혹은 우편으로 보내거나 그것도 아니면 PDF 파일을 아이패드에 옮겨 다시 하나하나 표시하는 방법 중에서 택해야 했다. 어떤 걸 택했을 것 같은가? 그렇다. 나는 멍청하게도 ‘다시' 적고 표시하는 걸 택했다. 뭐, 그러다 보니 그제야 보이는 것도 있었으니 다행인 셈인가 싶기도 하고.
집주우우우우우우우웅
내가 하루 중에서 가장 경건해지는 시간 역시 책 원고를 교정 교열하는 시간이다.
평소에는 아이돌 노래를 노동요 삼아 들으며 일하기도 하는데, 원고를 다듬는 시간은 다르다. 눈으로 읽을 땐 분명 오탈자 없이 술술 잘 읽히던 문장도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잘못된 부분이 보인다. 신기한 일이다. 심지어 한 문장 한 문장을 소리 내서 읽고 또 읽어도, 모든 집중력을 끌어와서 읽고 수정해도 실수로 놓치는 부분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경건해질 수밖에.
나의 경우는 잘못된 맞춤법, 또는 중복된 내용이나, 본문의 맥락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분, 그리고 너무 긴 문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형광펜을 칠하고 ‘이렇게 수정하면 어떨까요?’라고 생각하는 제안문장을 옆에 코멘트로 첨부했다. 내가 읽을 땐 수정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아는 건 아니니까 내가 편집자로서 수정할 필요를 느끼고 제안하는 내용에 동의하면 그 부분들은 작가와 함께 더 나은 표현이 없는지, 더 간결한 문장으로 다듬을 수 있는지 꼼꼼히 살핀다.
교정을 마친 후, 대표님은 내게 “잘 봐. 네가 어렵다고 느끼는 표현을 수정이 필요하다고 체크하는 경향이 있어. 에세이 말고도 읽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아. 뼈를 맞은 것 같다. 평소 에세이를 주로 읽는 게 사실이니까. 그래도 피드백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공부를 위해 책을 좀 더 다양하게 읽어봐야겠다. 읽고 싶은 책의 비율을 조정하는 만큼, 다른 보상을 찾아야겠지만.
“텍스트가 어렵다고 어려운 부분을 몽땅 들어내는 게 답은 아니니까. 밑도 끝도 없이 빨간 줄을 그어놓고 '쉽게 써달라'라고 요청하는 게 답은 아니니까.” 일전에 고우리 대표의 <편집자의 사생활>에서 읽고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한 문장이다. 내가 했던 짓과 너무 같지 않은가. 내게 어렵게 느껴진다고 해서 그 단어나 문장이 잘못된 건 아니니까. 문장과 단어에만 집중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잊지 않은 채 문장을 다듬을 줄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