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학문을 향해
불태우는 지식욕

가시 없는 장미, 이젠 꽃피울 수 있기를.

by 헤르만

보고 싶은 동생에게-


하나)

英語單語 Tape를 틀어놓고 한 자 한 자 중얼거리며 외고 있는 도중 밑의 층의 주인 할머니가 ‘김 さん’하고 도아를 두들기기에 나가보니 너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낯익은 보라색 필체의 편지를 지금 막 읽어 보았다. 저번부터 느낀 건데 언제나 보라색만을 주장하는 것은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지, 그냥 특별하게 보이려고 아님 주위의 추천으로 인해?

농담이고 오늘 아침은 유독 센 바람 소리에 잠이 깨었다. 태풍이라고 한다. 일본은 유난히 태풍이 많은 나라라 의례히 지나가는 통과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싸늘한 11月의 태풍은 약간 언바란스한 느낌이다. 雨는 아직 내리지 않지만 저녁경부터 쏟아지지 않을는지, 하늘은 온통 낮은 회색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요즘의 언니는 일본에 와서의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지만, 또한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지 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自身의 의지로 선택한 道이기에 더욱 어깨를 누르는 중압감이 크게 느껴지는 까닭에... 학교를 후기부터는 나가지 않는 방향으로 하고는 있지만 그게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 않는다.

어느 것이라도 자기가 추구하고 몰두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마찬가지겠지만 공부 또한 처절한 홀로서기를 필요로 하는 극기의 과정이라고 본다.

최근에 와서 느낀 거지만, ‘고립’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그 밑바닥까지 이해된 듯하다. 그 고립 속에 갇혀 성난 파도처럼 쏟고 쳐 올라도, 때로는 깊이 깊은 동굴로 파고 숨어 들려해도 결국은 자신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現實 속에 마주 선 자신 밖에 없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잔혹한 각성에 눈뜬 것일지도 모르지. 그다음 비로소 자신이란 存在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무엇을 지금의 나의 번뇌(번뇌라는 단어는 참 좋은 단어다)가 행해져서 바른 것 것인지 타인의 빈축을 사면서 진행해도 괜찮은 것인지, 그리고 나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지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진정 나이가 들어 그 젊은 날의 방황이 그리워지고 어느 한순간을 맞을 수 있다면 그래서 만족할 수 있지 않을는지. 그냥 그 순간만으로도...

몇 년동안이나 손을 놓고 있었던 영어 책자를 들고, 꽤나 苦心을 하는 요즘이다. 언제나 성문을 펼치면서 너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자식’ 꽤나 공부하며 팠네 ‘라고 생각한다. 너의 공부한 흔적과 함께 그 책은 지금 언니에게 있는 거지만 그 흔적 자체보다 그 시간 시간에 기울였던 너의 열의와 몰두하며 깊이 파고들던 너의 눈동자를 느끼면 더욱 감동하는 언니다.

순수한 학문을 향해 불태우는 지식욕이야 말로 언니가 추구하는 生에 대한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동생아 지금부터 언니가 하는 얘기를 잘 듣기 바라. 참 그전에 학교에 대한 것은 아직은 父나 母니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좀 더 나에게 뚜렷한 상황이 부여되기 전까지는.

지금 언니에게는 二重의 난관이 있다. 그 첫째는 이제부터 시험 칠 大學에 합격하는 것, 와세다와 中央, 와세다의 試驗日은 12/12日, 發表日은 12/14. 中央은 조금 늦은 편으로 1/2일, 발표는 2/10日.

와세다의 경우는 처음부터 학과를 정하지 않고 들어가서 여러 가지를 해보고 1학년 경에 정하게 된다. 무척 좋은 학교 시스템이라고 본다.

와세다는 역시 와! 세다라 일본 내에서도 일본 학생들이 누구나 시험 쳐 보길 원해 쳐보아도 무더기로 우수수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정말 一流급의 학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東京大學이 더욱 위에 있지만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취급되어 머리가 좋은 두뇌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융통성 부족, 사회생활의 문제성 등이 지적되고 있는 면에서 같다고 문제시된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그 경쟁률이 치열해 언니가 시험 볼 第一文學部의 경우 120명 以上이 시험 쳐 17명 정도 합격하는 것이 예년의 통계다. 작년의 시험 문제지들을 조금 보았으나 역시 전문적인 용어들을 포함해 굉장한 실력을 요하는 문제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中央大의 경우는 비교적 그렇게 난도가 높지 않아 한시름 안심을 하지만, 중앙대의 경우도 일본의 7대 대학에 들어가는 지지도가 큰 대학이기에 바짝 조여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어는 지금까지의 페이스대로 해나가려고 하고 있으나 문제는 영어다.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생각한다.


둘)

그리고 두 번째는 유학생들의 비자를 내주는 入官의 문제이다.

언니는 유학생 Visa로 1년간 유효한 비자를 받았지만, 다시 일 년을 연장해야 하는 시점에서는 그동안 다녔던 대학의 출석 證明書, 와 성적 증명서가 필요한데 후기 학교를 다니고 있지 않았으니 만약 合格이 된 시점에서 과연 Visa를 내줄지 어쩔지 걱정을 하고 있다.

다행히 그때에 가서 일단 합격이 된다면 붙은 대학의 합격 증명서와 먼저 다니던 학교에 나가지 않았던 이유서를 첨부해서 내면 된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으나 지금으로서는 어느 쪽도 미지수인지라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이러한 문제에 뒤엉켜 앞뒤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혼동스러웠으나 일단 강행을 해, 해보는 데까지 해보자는 것이 지금 언니의 심경이다. 같이 기도해 주기를...


셋)

언니의 비자의 유효 기간은 내년 3/17일까지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결말이 되도록 하리라. 새삼 무언가 운명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시험이 12월 22일이지. 달력을 보니까 다음날 23일이 이곳 일본 천황의 생일로 쉬는 날로 되어 있더라. 별로 상관은 없는 것이지만, 참 전에 일본에 왔을 때 ’ 아사쿠사‘라고 하는 신사에 가서 ’ 다루마 인형‘을 요게 무라 선생이 사서 네게 주었지. 가지고 있겠지. 꼭 합격을 해서 나머지 눈에도 색칠을 할 수 있기를... 요게 무라 선생이 네게 격려의 편지를 쓴다고 며칠간 고심을 하더니 요 며칠 전 내게 번역을 부탁해 왔다. 이 편지와 함께 동봉할 테니 보기를...(지금 전화했더니 먼저 보냈다고 하는구나. 오늘 아님)

너 머리는 많이 길렀니? 언니는 몇 년간 길렀던 긴 머리였어도 이발소에 들어가(이발소가 미장원보다 훨씬 싸서) 덥석 잘라버리고도 그냥 덤덤했다. 주위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져 아깝지 않았냐는 등 이야기를 했지만, 별로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고 할까.

내 동생은 왜 그리 머리에 집착을 하는 걸까. 심층 분석해 본 결과, 얼굴이 좀 안 생긴 아해들이 머리에 지나칠 정도로 애착심을 가진다는 게 그 결론이었다. 이의 있어?

참 고기는 잘 굽고 있냐고. 동생! 너 언니가 매일 고기를 굽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무슨 바비큐 집에서 통돼지 굽는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줄 아는데, やきにく집 불고기집에서 음식을 나르거나 청소를 하고 있는 것뿐이야. 고기는 직접 손님들이 굽어. 그네들이 먹는 것이고.

브르조와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자매 간도 아니고, 무지의 도가 그 한계를 훨씬 넘어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JS도 가끔은 만나고 있는지? 생각보다 너를 무척 따르고 의지하고 있는 것 같으니 언제나 따스하게 대해 주렴. 사람에겐 자신에게 맞는 것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젊은 날이란 그것을 찾기 위해 헤매는 것이다. JS에게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환경이 불충분했다는 것은 가장 마음 아픈 일이기도 하지만,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그 아이에게 꼭 맞는 것을 찾아주게 하는 것이 너와 나의 의무이기도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 아이가 의욕을 가지고 전념하게 할 수 있는... 겨울에 한번 더 들어갈 수 있으면 셋이서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자. 물론 네 시험이 끝난 뒤에.. 너의 전공학과 문제는 언니가 작년도 일기장을 살펴보았는데 여전히 지금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 또한 걱정이 되어 일기에 쓰여 있었고, 교육학과라면 아무래도 ’ 교사‘를 목표로 한 카리큐럼이 짜여 있을 테니 너 자신의 강한 의지가 아니면 따라가기 어려운 점도 발생하지 않겠니. 선생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너무 무리하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남들의 말들도 이것저것 듣다 보면 혼동이 더 생기는 수도 있으니까 깊이 눈을 감고 무엇이 가장 하고 싶은가 생각을 해서 결정하기 바란다. 무엇을 정한다 해도 언니는 너를 밀어줄 테니까(벼랑 말고)

우선은 흔들리지 말고, 너무 겁내지 말 것... 여태까진 너무 겁내하지 않았었니? 그러 또 연락할게-. 안녕히...

1992/11/9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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