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없는 장미, 이젠 꽃 피울 수 있기를.
사랑하는 동생에게...
자정이 넘은 고즈넉한 고요속에서 편지를 쓴다. 나는 그동안 그럭저럭 무난히 지내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단지 생활의 기계적인 반복 속에서 때때로 찾아드는 그리움 내지의 감정의 파장으로 인한 서글픔만이 문제일 따름이지, 자기에게 도달하는 길은 멀다라는 자명한 진리 앞에서 우리 人間들은 얼마나 많이 넘어지고 상처나야 하는지...그러나 삶이 어차피 한번 주어진 과제라면 당면의 일이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너를 생각할 때면 늘 가슴 한쪽이 아리듯 아파온다. 네 곁에 함께 있어주지 못한다는 것만으로 나는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자책감을 느끼니...
사랑하는 동생아, 오늘은 기숙사 앞에 있는 「국제기독교대학」안을 혼자서 산책했다. 우거진 수목들과 어우러진 저녁 낙조의 색깔과 황혼. 그속에 자전거를 타고 숲 사이의 자그마한 오솔길을 혼자 천천히 가는 것. 생각만으로 아름답지 않니. 때때로 우리에게 꽉찬 완벽감으로 다가드는 것이란 ‘순간’이라고 느끼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긴 여생을 살아가는데 활력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이시간 공간은 다를지라도 책상앞에 앉아 보다 더 크나큰 내일을 향해 정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너의 모습을 떠올린다. 힘들고 지치더라도 이겨내자라는 나의 바램의 소리가 바람에 흩어지는 공허한 울림이 되지는 않기를 바라는 맘. 너도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믿는다.
때때로 땀 한방울의 노력들이 촘촘히 배인 인내 뒤에 다가오는 결과란 매순간 생각했던 어떤 것보다 더 큰 기쁨과 만족을 가져다 준다는 것. 너와 나 체험해 보자꾸나.
일본인들의 생활 습관은 참으로 우리가 뒤쫒아 가지 못했더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아무도 없는 건널목에서도 끝까지 신호가 켜지기까지 가만히 있는것이라든가, 조그마한 실수에 있어서도 서로가 인사하고 미안해 하는 것, 휴지도 꼭 버릴때는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 검소한 옷차림, 절약정신 등.
경제면에 있어서의 10년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의 그 의미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전화연락 자주 못하는 것은 이해해라.
언니 한시간 시급이 겨우 700円인데 전화는 1,000円 정도니 이해되지.
모두다 건강한지, 웬지 너로부터 들을 수 있는 아주 하찮고 자질부레한 이야기라도 크게 귁울이고 듣고 싶다. 그만큼 우린 서로의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지 않았었니.
여름이 다가온다. 오늘도 무지 더웠었다.
음식 먹는 것 주의하고, 아침에 학교 지각하지 말기.
또 연락하마.
너를 사랑하는 언니로부터.
1990.6.4.,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