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없는 장미, 이젠 꽃피울 수 있기를.
사랑하는 동생에게
우리 동생에게 언니는 가슴속의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으나 막상 쓰고 싶은 단 한마디는 너무나 보고 싶다는 것이다. 너무 보고 싶구나. 네가, 한국에 언니가 갔을 때 나의 연습장에 색색의 펜으로 써주었던 말처럼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고 염려해 주는 것은 이 세상에 너뿐이다. 네가 받을 살아가는 인생의 어떠한 고통이나 아픔도 이 언니의 몫으로 다 해 버리고 싶다. 통속적인 표현으로밖에 비칠지 모르겠지만, 언니는 지금 무척 외로움에 지쳐 있는 것 같다. 내면에 밀물처럼 다가드는 외로움, 어디론가 날아가기 위해 헛된 몸짓으로 ‘파닥’ 거려 보아도 쇠창살로 둘러싸인 차갑고 음습한 새장 속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사실만이 명백해질 따름이다. 언니의 방황의 표면을 조금만 벗겨보아도 그곳엔 여러 겹의 고독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넌 알 수 있을게다. 외롭다는 것만큼 사람을 가슴 시린 고통으로 몰아넣는 게 있을까. 타인과 外界와 그리고 선 그어진 自身과의 차단으로의 창을 내리고 혼자라는 것, 더욱이 이기적인 인간들의 가식적인 행위와 뚜껑만 열면 그 속엔 자신만의 편협송 속에 꼭 옹크린 채 좁은 시야에서만 상대를 보는 것 같은 것을 볼 때면 구토가 치밀어 오른다.
정신적인 욕구와 자기비판이 없는 무미건조한 사람들, 군상들의 행렬.
동생아, 언니는 조금 전 조그마한 말다툼을 하였다. 옆방의 나보다 1살 많은 人과. 남자친구랑 시간을 즐기고 있으면서 기숙사의 하나밖에 없는 전화가 걸려왔건만 받지를 않더구나. 그 시간 나는 W.C에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복도낭하 끝에 있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고, 전화벨 소리가 수차례 울림에도 들은 척도 안 하고 방안에만 있더구나. 자신의 男子친구로부터 전화가 올 때면 그렇게 열심히 뛰어가서 받고 몇십 분이나 통화하더니 이기적인 면을 느꼈다. 그러나 자신의 결점보다 남의 결점은 2배로 커 보인다지. 그냥 실망한 기분을 감춘 채 그 사람의 방을 지나 내방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조금 후 내 방에 들러 식당 냉장고에 나의 우유를 좀 먹겠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하고선, 언니왈, “왜 전화를 받지 않았지, 편리할 때만 받고 다른 人을 위해선 받을 수 없나. 공동의 생활에서 혹 내전파일수도 있고 남의 전화일 수도 있는데 서로 받아줄 수는 없나. 그것이 당연하지 않나!” “받기 싫어서 안 받았는데 뭐 어떠냐. 그 전화는 내 전화일 수도 있다. 전화 쫌 받기 싫어 안 받았기로서니 너무 말가 심하다.!”, “그렇게 생각하나. 내 생각과는 좀 다르다. 됐다. 그만두자!” 여태까지는 그렇다하 트러블 없이 지내왔지만 외동딸이라 그런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짙다. 언니는 타인의 이기적인 면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고 단지 슬퍼지는 것이다. 그러나 혹은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나 자신 속의 이기성을 느낄 때마다 심하게 괴로웠던 것을 기억한다. 나 또한 불안전의 인간임에 그냥 스치고 지나가야 한다. 어떻게 지내니? 서서히 여름이 물러서고 있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가을이 오면 이성이 마비되는 듯한 작렬하는 태양도 사라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것과 함께 여러 가지로 나아질 것이다. 환경적으로도,
얼마 전 Hong Kong 친구로부터 Card를 받았다. 스누피가 그려진 귀여운 그림의, 단순하면서 솔직 담백한 中國人의 기질에 호감이 가면서도 다소 단세포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어느 민족이나 기질에 있어 나눠지는 특성이 있기에.
이 화 이에게 네게 주라고 한 인형 브로치를 주었다. 고마워하더라. 네 얘기를 많이 하였다. 우리 가족은 다섯이라고—후후--
그리고 선물로 준 거울은 유용하게 잘 쓰겠다. 요즘은 6개월의 비자체류 기간이 끝나 새로이 비자 편신을 하기 위해 서류상으로도 여러 가지로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일본국 입관이라는 곳에 가서 서류를 제출하고 외국인 연장 비자를 받기 위해서 다분히 까다로운 일들이 있는 것이다. 일본인 특유의 섬세한 정확성을 요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건 그렇고 10월쯤(네 말을 빌어) 배치고사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 같구나. かんばって!라는 말은 일본인들이 시험이나 시합, 경기에 임해서 서로 간에 최선을 다해 끝까지 싸우라라는 뜻이고 매우 많이 쓰이고 있단다. 기억해 주면 좋다는 사실,
답장은 시간이 나면 해도 되지만, 안 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해도 상관은 없는데....(여운을 남기며) 그럼 보림아, 건강히 잘 지내고, かんばって!!!
p.s 사소한 일 등으로 마음 좁혀지는 언니가 아니니까 걱정 마시길. 단지 내 마음의 서글픔에서 끝. 내일은 웃음!!!
언니로부터.
1990.8.25. S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