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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Jun 07.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아빠와 딸.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스물한 번째


아빠에 대해 써야 될지 말아야 될지 한참을 고민했다.

글을 시작한 지금도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을지, 무슨 내용으로 채우게 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써나가 보려 한다.


아마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나의 엄마'

편을 읽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거다.

나와 아빠의 지독한 관계를.

참조 :https://brunch.co.kr/@e6059a60ba7242e/17


태초에 우리의 관계는 늑대와 양이었다.

아빠는 자식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신조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휘두를 수 있는 권위가 필요했고,

그 권위를 '사랑의 매'로 보여주셨다.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아빠의 뜻대로 운동장에 가서 운동을 하거나 등산을 했는데,

등산할 때마다 아빠는 그렇게 나뭇가지를 주워오셨다.

그러고는 주워온 나뭇가지를 정성스럽게 깎아 매직 펜으로 '사랑의 매'라고 적으셨다.

곧 그 '사랑의 매'는 나와 오빠가 싸울 때마다 등장했고

몇 대 맞을래? 라는 질문에 눈치 보며 답을 내려야 했었다.


아빠가 나에게 항상 강조하셨던 것,

그래서 내 인생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우리 집 가훈이고 다른 하나는 독서이다.


어느 날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아빠에게 물어보라는 대답을 하셨고

난 다시 아빠에게 물어보니 아빠는 아주 자랑스럽게 대답하셨다.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자.'


아빠는 언제 어디서나 배려, 봉사, 타인을 먼저 이야기하셨고,

나는 그러지 않으면 큰일 난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 이야기가 내 뇌에 박혔었다.

그래서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하며 커온 나는 살다 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별 큰일이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잘 살고, 더 잘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이 왜 그렇게 가난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늘 고통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지를 단박에 보여주는 것이

우리 집 가훈 탓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너무 타락한 걸까?


아무튼 다음 독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아빠는 항상 방에 책을 늘 채워 넣으셨고,

본인도 퇴근 후 책을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다.

난 당시 아빠가 무서워 아빠가 집에 계실 때에는 방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고

그럼 방 안에서 할 것이 없어 책을 읽었다.


강요 아닌 강요로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책이 편해졌고

나중에는 내가 좋아 책을 읽게 되었다.

물론 10대 때까지의 이야기지만,

책과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아빠 덕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빠에게 감사한 부분이다.


바야흐로 아빠가 늑대, 내가 양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의 관계는 사자와 호랑이가 되었다.


13살 때 멋모르고 시작한 반항은 점점 감정의 깊은 곳까지 건드리게 되었다.

난 더 이상 아빠의 뜻대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아빠가 만들어 놓은 우리를 깨부쉈고

철저하게 아빠를 무시했으며, 그 방법으로 가족이 아닌 룸메이트 대하듯이 대했다.

한 집에 있어도 밥을 따로 먹었고, 말을 하면 싸움이 나서 그냥 말을 안 했다.


난 사실 그때 있는 힘껏 아빠를 증오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아빠를 증오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얼추 생각해 보자면

늘 자신의 뜻대로 나를 통치하려 하고,

날 다 안다는 듯이 행동하고 말하는 아빠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첫 번째 어른이 아빠인데,

난 세상에 분노가 있었고, 이 세상을 만든 장본인이 어른들이었기 때문에

어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나에게 있어 아빠는 믿지 못할 어른, 자식도 이해 못 하는 아빠였다.


그리고 내 모습에서 점점 아빠와 닮은 점이 보일 때마다

그런 내 모습이 보기 싫어 더 아빠를 밀어내려 했던 것 같다.

난 아빠와 다르다고,  난 나만의 방식대로 살 거고, 그게 분명 행복을 가져다줄 거라고.

아빠와 똑 닮은 나는 내 가치관을 고집하며 귀를 닫고 살아간 거다.


하지만 아빠의 가르침 방법도 그리 친절하지 않았으니.

자신의 위상을 지키면서 자식을 통치하고 싶었던 아빠는

자존심만 내세울 줄 아는 불소통의 우리네 아버지였고,

사랑의 매가 통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든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어

애꿎은 담배만 그렇게 피셨다.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리고 상대방의 상처를 내며 내 10대 시절이 흘러갔다.


20대의 나는 아빠와 마주치는 것 자체를 피했다.

만나면 으르렁대거나 서로 어색해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어설프게 철이 든 지금,

난 인정하게 되었다.

난 아빠와 닮았고, 그때의 아빠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었지만

조금도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고,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삶이 말해주었고,

그렇게 직접적으로 와닿은 지금에야 아빠가 예전에 했던 말이

나를 위한 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난 아빠와 화해하지 못했다.

서로를 갈등의 끝으로 몰아내고 미워하던 그 억 겹의 시간을

어떻게 바로 없는 듯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요즘은 슬며시 내비치곤 한다.

그때 아빠가 했던 말이 맞았더라고.

살갑지 못한 나는 이게 현재까지로는 최선이다.


아빠는 여전히 자신이 틀려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자존심이 곧 죽어도 제일 중요하며

대화를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시간으로 알고 계신다.

이빨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호랑이다.

난 사자인 줄 알았던 호랑이 새끼였고.


올해 초에 아빠는 37년간의 경찰 생활을 정년퇴직하여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계신다.

아빠는 퇴직 전부터 은퇴 후의 삶을 열심히 계획하고 준비했었다.

시골의 인구 감소를 위한 봉사나 다민족국가를 위한 정책, 사회봉사 등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빠는 언제나 그렇듯

정의롭고, 성실하며, 여전히 나아가신다.


그리고 나와 아빠는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며

글의 힘을 믿고

굉장히 고집스러운 자기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박한 우리의 삶을 지켜나갈 줄 안다.


단 한 번도 꺼내보지 못한 말이 있는데 글로서 써본다.

난 내 아빠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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