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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사이드B Jun 14. 2023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를 마무리하며.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원래의 계획은 '내 인생의 인간들 99인 모두 까기'이었다.

99명의 크고 작은 인연들을 소개하고, 그들을 까며,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이 본 목적이었다.

인생을 살면서 스쳐 지나갔던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조그만 의미라도 준 사람이 그래도 몇 백 명은 되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한 이 일은

결국은 내 오만함만 드러내는 결과로 끝이 났다.

도저히 99명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과도한 알코올이 준 치명적인 기억력으로

기억할 수 있는 사람들이 현저히 적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기억이 나는 사람도 쓸 수가 없거나, 쓰고 싶지 않아서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자면

너무 친한 사람이지만, 이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얘기해야 될지 모르겠는 사람도 있고,

이 사람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려면 나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야 되기 때문에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끄럽지만 

익명의 공간이라도 감추고 싶은 것은 있기 때문에 말을 아껴보려 한다.

또, 단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을 주는 사람은 

1초도 생각하기 힘들어 시도하지도 못했다.


여러 이유들로 결국 21명을 겨우겨우 쓰게 되었다. 

21개의 글을 쓰는 과정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첫 시작, 그들과의 특별한 추억, 현재의 달라진 사이까지 서술을 하려면

반드시 지난날을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은 부끄러운 기억일수록 하나씩 떠오르다 파도처럼 커져 한바탕 치고 나면

후회라는 감정만이 남아 한동안 내내 먹먹해 했다.


왜 그때의 소중함을 몰랐는지

왜 계속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왜 나는 달라졌는지

왜 떠나보냈는지

왜 이렇게 철이 없고 어리석었는지

왜 젊음이 영원할 거라 생각했는지

왜 내가 무너질 걸 몰랐는지

왜 솔직하지 못했는지

왜 나와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했는지


제목은 거창하게  '내 인생의 인간들 모두 까기' 였지만

결국은 모두가 내 얘기였다.

내 지난날의 과오를 고백하는 시간이었고

과거가 보내온 현재라는 결과물을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고

내가 왜 점점 이 세상에서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 나를 납득시킨 증거였다. 


내가 지금까지 썼던 21명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그들을 상기했을 때 지금과 또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건 그들이 변해서가 아니라 내가 변해서겠지. 


내가 이 사람들을 만났을 때 당시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내가 어떤 생각들로 가득 찼었는지

내가 행복했는지 괴로웠는지

그로 인해 내 앞에 있는 이 사람들을 난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결국은 내가 이 사람들을 만든 것이다. 


사람은 상대적이라는 것. 

누군가에게 악마인 사람이 나에겐 천사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천사인 사람이 나에겐 악마일 수 있는.

그리고 그 악마와 천사를 가르는 것은 결국 나였음을. 


언젠가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 미치겠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내가 가치 있고 사랑스럽다고 느꼈던 순간.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놀 때가 가장 행복한 때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던 순간.


또, 언젠가는 사람들이 죽기보다 싫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에게 아무런 가해도 하지 않은 그들을 혐오하고 꾸짖고 혼자 상처받았던 순간.

자기 연민에 빠져 혼자 동굴 속으로 들어가 세상에 가장 큰 불행을 내가 가진 것처럼 굴었던 순간.


그리고 다시 반복되었다. 

사람으로 인해 즐겁고 행복하다

괴롭고 마냥 피하고 싶다가

또다시 치유받고 사랑하게 되는,

그것의 반복. 


이러한 반복 속에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더 이상 이런 것에 크게 놀라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감정 변화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며

더 이상 나 아닌 타인에 감정을 덜 쓰게 된다.


이렇게 늙나 보다.

이렇게. 


난 현재도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또 사람에 흥미를 잃어 더 이상의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똑같은 딜레마에 빠졌고 똑같은 실수를 할 것이며 또 후회와 자책을 하겠지.

아니면 또다시 미련하게 사랑하게 되어 그들로 인해 나의 의미를 찾으려고 할 수도 있고.


이번엔 이렇게 스물한 개의 이야기로 끝을 내지만

다음에 99명의 이야기를 채울 수 있을 그때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다. 

내가 잘못 살아온 나날들을 반추하여

혼내고 자책하는 이 짓을 또 한 번 하고 싶다. 


99명의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바뀌어있을 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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