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상처를 주는 이유 5
(이 이야기는 브런치북 2화 모유 사건 이후로,
그날 서로의 상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회복하는 이야기입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현재 남편과 사이가 좋으니
나는 다시 모유사건 이야기를 꺼내보자 싶었다.
남편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그때 받았던 상처에 대한 사과를 받고
응어리진 마음을 풀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얘기가 나오자마자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작이 좋지 않았다.
이러면 필연적으로 싸우던데….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만약 오빠가 지금 이 상태에서
그때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그때도 똑같이 이혼하자고 말할 것 같아?”
남편의 대답은 이거였다.
“무슨 대답이 듣고 싶은 거야?”
상황이 좋지 않다.
내가 원한 건 단 한마디였는데
또 백 마디를 하게 생겼다.
“오빠의 솔직한 마음을 듣고 싶어.”
남편은 말했다.
“난 지금도 변하지 않아.
그때로 똑같이 돌아가도 네가 그때처럼 똑같이
나에게 말한다면, 나도 너에게 똑같이 말할 거야.”
. . .
첫째 출산 한 달 전,
남편이 갑자기 가슴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가슴마사지가 모유에 좋다며.
요리를 꿈꾸는 남편이라 주방에서 일하는데
주방 이모님들이 가슴마사지 해주라고 그러셨나 보다.
남편은 매일매일 출산 때까지 빠짐없이
수건을 두 장 가져와서 따뜻한 물에 적셔놓고
식지 않게 돌려가며 지극 정성으로 마사지해 줬다.
내가 출산을 하고 난 후에도,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가슴 마사지를 해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이 일하던 이모님 한 분이 그러셨다고 한다.
분유 먹으면 멍청해진다고.
모유가 중요하다고.
그래서 꼭 가슴마사지 해주라고.
남편은 같이 일하는 이모님들에게서
출산 시 남편이 할 일과,
아빠로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조언을 들었으니,
의심 없이 당연히 그러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남편은 불안할 때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갑자기 단유 하겠다고 하니
자기 자식이 분유를 먹고 진짜 멍청해질까 봐
너무 걱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당연히 모유수유를 계속할 거라 믿었고,
본인도 매일 가슴마사지 해주고,
돼지족 우린 물 데워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데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를 버리고
내 몸이 힘들단 이유 하나만으로
단유를 하겠다는 게 납득이 안 됐던 것이다.
남편도 아빠라는 책임감으로
매일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사람인지라
아기를 낳은 엄마라는 사람이
‘내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단유를 선택한다는 것은
남편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남편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내가 너무 타협할 여지도 주지 않고 단유를 하겠다고 하니
그게 폭력적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본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과
앞으로도 자신의 삶이 내 뜻대로 휘둘릴 것이라는 불안감도 느꼈던 것 같다.
남편은 그 당시, 차라리 자기 몸에
모유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울기도 했다.
남편의 소중한 첫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주고 싶었는데,
내 선택으로 인해 좌절되어
본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게 죽을 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남편은 그날 내 단유 선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고,
그 후 3일을 시름시름 앓았다.
남편이 시름하는 그 3일 동안,
내 모성애에 대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음대로 휘둘러진 상황에
나에 대한 모든 신뢰가 무너져
죽을 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날 밤, 이혼을 요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