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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Dec 02. 2024

내 남편은 내 아빠가 아니다

내가 상처를 받는 이유 1

남편이 유독 미울 때가 있다.

바로 남편이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다.


남편이 심드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앎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나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가슴속에서 깊은 분노감이 생긴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에게 충분히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 주는데,

왜 나는 자꾸 남편이 나에게 무관심한 것 같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것이 이토록 화가 날까?



나에 대한 의문점이 쌓여가던 어느 날,

남편의 모습에서 아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가슴 깊숙이 있던 분노가 올라옴을 느꼈다.


아, 내가 내 남편에게서 아빠를 보고 있었구나.

나는 남편이 미운 게 아니라 아빠를 미워했구나.





나는 어릴 적,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낸 경험이 별로 없다.

아빠는 주말에는 항상 낚시하러 가시고,

평일에는 술에 취해 밤늦게나 오셨다.


나는 학교에 갔다 오면

매일 엄마랑 도란도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나는 주로 학교에서 있었던 친구 이야기를 하고,

엄마는 주로 아빠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나는 어렸을 때는 꽤 아빠를 좋아했다.

항상 그리운, 옆에 있고 싶은 존재였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어가고,

엄마가 우리를 임신했을 시기인 20대 초반이 되자

아빠가 너무 싫어졌다. 미워졌다.



나는 어느덧 아빠를 증오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아빠에게 독설을 퍼붓고

아빠의 가슴을 후벼 팠다.

아빠를 한심하게 생각했고

아빠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아빠를 향한 나의 증오는 멈출 줄을 몰랐다.


아빠는 나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나는 아빠가 전혀 안쓰럽지도 않았다.

그동안 우리에게 무관심했던 것,

엄마에게 무관심했던 것.

그것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대학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심리학개론 수업을 들을 때였다.


용어 중 ‘동일시’에 대한 흔한 예시로,

딸이 엄마와 동일시하여 아빠를 미워한다는 내용이 나오는 게 아닌가.


나는 아빠가 우리에게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내가 아빠를 미워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내가 엄마와 동일시하여 아빠를 미워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아빠를 미워하는 감정은,

엄마에게서부터 온 것이었구나.


그것을 인식한 순간부터 아빠를 향한

맹목적인 분노가 사그라듦을 느꼈다.



그리고 가족치료상담 시간에

우리 가족 가계도를 그려보면서

아빠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는 아빠가 안 계신다.

아빠가 여럿 계셨지만, 그중 진짜 아빠는 없었으니

아빠가 안 계셨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아빠에게 아빠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은

모두 술에 취해 아내에게 폭력을 일삼고,

아내와 자식들을 등한시하는 한량일 뿐이었다.


아빠는 할머니와 계속 함께 지냈는데

할머니의 최고의 애정표현은

아빠에게 밥을 배불리 먹이시는 것뿐이셨다.


할머니는 장남인 아빠에게

가계에 보탬이 되는 성실한 남편 노릇을 원했다.

엄마도 아빠에게 다정한 남편 노릇을 바랐다.

우리 네 명의 딸들도 아빠에게 자상한 아빠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빠는 아빠라는 존재가 없었다.

성실하고, 다정하고, 자상한 아빠의 모델이 없었다.

그저 술에 취하고, 무관심하고, 한량 같은 아빠만 있었을 뿐.


아빠는 엄마에게 항상

“안 때리고, 바람 안 피우는 것만으로도 어디냐?”라고 말하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다.”라고 느껴진다.


지금 아빠는 “밥 먹게 놀러 와.” 하며 부르신다.

그리고 손수 맛있는 밥을 차려주신다.

그다음에는 “이젠 귀찮다, 빨리 가서 네 할 일 해라.”라고 하신다.


지금 나는 안다.

그것이 우리 아빠의 최고의 애정표현임을.



나는 아빠를 싫어했다. 엄마의 감정으로 인해.

그런데 막상 보면, 엄마는 아빠와 사이가 좋다.


그저 엄마는 아빠에게 서운했던 감정을

나에게 풀어낸 것뿐이었지,

진짜 아빠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가족치료 시간에 배운 구조적 가족치료 기법으로

나와 엄마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을 명확하게 하고,

분리되었던 엄마와 아빠를 함께 배치하였다.


이제 엄마와 융합하지 않을 것이며

아빠를 고립시키지도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내가 남편을 아빠와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남편과 아빠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그리고 이젠 남편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찾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남편에게

필요 이상으로 상처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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