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처를 받는 이유 4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마치 정글의 세계 같았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
마치 온 가족이 물어뜯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 시절,
잠시 할머니 댁에서 자랐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이모할머니가 놀러 오셨다.
할머니는 사과를 내오시며
나에게 깎아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긴장했다.
조금이라도 늦게 사과를 깎는다면
무슨 얘기를 들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사과를 받아 들고 재빨리 씻었다.
1분 1초가 급했다.
감자칼을 꺼내 껍질을 빠르게 깎은 후,
접시와 과일칼을 꺼내
일부러 할머니들이 계시는 곳으로 갔다.
껍질은 빨리 깎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과를 깎은 경험이 별로 없었던 나는,
과일칼로 사과를 조각내어 먹기 좋게 자르는 일에
약간 시간이 들고 말았다.
긴장 속에서 겨우 사과를 다 깎고 나니,
곧 이모할머니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사과 참 느리게도 깎네.”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최대한 빨리 깎았는데
역시나, 나는 들어버리고야 말았다.
뒤이어 쏟아지는 이모할머니의 비아냥과
몇 차례의 잔소리가 끝나 이젠 안심할 무렵,
내 속도 모르는 철부지 동생이
따라 웃으며 나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느림보 언니가 사과도 늦게 깎는다고.
그때 나는 엄청난 수치심이 몰려왔다.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떨궜다.
나는 역시 느려터졌구나,
최대한 빨리한다고 했는데도
내 느림은 어쩔 수가 없구나
물론 이모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동생을 호되게 혼내기는 했지만,
사과를 늦게 깎아 할머니들께 혼났던 그 사건은
나에게 아직도 수치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우리 가족은,
가족 중 누군가가 혼자 음식을 먹으면
“싸가지 없게 혼자만 처먹냐?”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서로의 단점을 지적하기도 잘한다.
나는 하체 비만이 심해 자매들에게
‘코끼리 다리’라는 소리를 매일 들었다.
언니는 목이 짧다는 이유로,
동생은 코가 낮다는 이유로,
막내는 얼굴이 까맣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했다.
서로가 서로를 상처 주고 놀리는 것,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도 나는 괜찮지 않았다.
그저 상처받는 게 익숙해서
속으로 삼켰던 것뿐이었다.
우리는 상처를 주는 것도 익숙하고,
수치심을 삼키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시골 할머니 댁에 가는 게 달갑지 않았다.
가면 이모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이모들은 말투가 더 사나웠다.
이모들에게서 풍기는 표정과 말투가
나를 너무 불편하게 했다.
한동안은 내 생활이 바빠 이모들을 만나지 못했고
최근에서야 이모들을 몇 번 뵙게 되었다.
어느 날,
큰 이모가 우리 부모님 가게에 놀러 오시는 날이었다.
아빠가 맛있는 음식을 해주신다고 하셔서
점심시간에 맞춰 부모님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에 들어와 큰 이모께 인사를 드리고
막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큰 이모님이 한 말씀하셨다.
“너는 어째 살이 더 찌냐?”
나는 습관적으로 이 수치감을 삼키려 했다.
어른이시고, 나름대로 괜찮으니까.
살찐 건 사실인 걸 뭐....
하지만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나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시무룩하게 말했다.
“열심히 일하다가 맛있게 밥 먹으려고 왔는데,
왜 그런 말을 해요.
살쪘어도 우리 남편은 제가 제일 이쁘대요.”
큰 이모님은 내 말을 듣고 멋쩍어하셨다.
엄마도 내 말에 당황해하며 나를 거들어주셨다.
“네가 결혼식 날 살 뺐을 때 이모가 너무 예뻐서 그러나 봐.”
그리고 두 분이 나를 달래주시려 인지
그날, 내 얼굴이 예쁘다는 이야기를 몇 번 하셨다.
내가 큰 이모께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지킨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모의 말이 상처로 남아있지 않고
내 안에서 해소되었음을 느꼈다.
그 일이 있고 난 얼마 후,
시골 할머니 댁에 가서 이모들을 만났다.
이모님들께 차례로 인사를 드린 후,
잠시 밖에 계셨던 둘째 이모님이
혼자 집 안으로 오시는 모습이 보여서
거실에서 아기들을 보고 있던 내가
얼른 현관으로 마중 나가 인사를 다시 드렸다.
내가 인사를 드리자,
둘째 이모님이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더니
“너는 살 좀 빼야겠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기분이 상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잠시 당황하다가
곧 입을 열고 말했다.
“왜 이 집 이모들은 인사도 안 해주고 살 얘기부터 하지?”
다소 무례해 보이는 언행이었지만 속은 시원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둘째 이모님은 민망해하시며
잠시 소파에 앉아계시다가
다른 이모들이 계시는 밖으로 다시 나가셨다.
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얘기로는
둘째 이모가 밖으로 나가셔서 다른 이모들께
나에게 한 소리 들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때 우리 엄마도
“우리 둘째는 그런 말 싫어하니까
둘째 앞에서 그런 얘기하지 마.”
라고 이모님들께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 사건들은 내가 나를 지켰던 경험으로 남아있다.
상대방의 무례함 속에 나를 내버려 두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킨 경험으로 말이다.
무례함을 삼키면 수치심이 커진다.
수치심이 커지면 나를 갉아먹는다.
나를 갉아먹는 행동들은
결국에는 내 행복을 방해한다.
나는 나를 지키는 방법을 알았고,
무례함이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알았다.
나는 무례함이 무례함인지도 몰랐다.
우리 가족, 우리 친척들 모두가 그랬다.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그건 알지만
아픈 건 아픈 거다.
원래 솔직한 게 더 아픈 거다.
거짓은 아프지 않다.
진실이 아프다.
우리는 솔직함이라는 미명아래
얼마나 많은 폭력을 행사해 왔는가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배려’하는 자세이다.
나는 남편에게서 배려를 배웠다.
부드러운 말투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것,
기다려주는 것, 참아주는 것
상대방을 ‘배려’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아마 내가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무례함이 익숙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내가 살았던 세상과는 다른
따뜻한 세상이 있음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