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처를 받는 이유 6
내가 그동안 감정들을 회피해 왔음을 깨닫고,
이제는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와도
외면하거나 해결하려 애쓰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한 후의 일이다.
우리 부모님과 자매들끼리는 모임이 잦은 편이다.
주로 가족 중 누군가의 집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신다.
그날도 평소처럼 가족 모임이 있었고,
가족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단 한 사람. 나만 빼고.
나는 감정을 회피해 왔음을 깨닫고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한 후로
많은 부분에서 예민해졌다.
이제 가족들의 말 하나하나가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불안했다.
정제되지 않은 우리 가족들의 말투에서
행여나 상처받을까 봐.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잔뜩 날을 세운 체,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날 그 모임은 나에게 조금 의미가 있었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로 첫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 나의 상황을 공유하며
가족들에게 지지와 용기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내가 글 쓰는 것에 대해
딱히 관심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원체 책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라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체념하기로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내 글을 보여주고 싶었다.
칭찬을 듣고 싶기도 했고,
그냥… 엄마에게는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다가가
이번에 시작한 첫 글이라며
한번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엄마는 알겠다며 내 핸드폰을 받아 들었고,
스크롤을 내리며 슥슥 읽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한 20줄 읽었을까?
아직 반절도 넘게 남아있는데
엄마는 핸드폰에서 고개를 떼더니 말했다.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공감도 안 되고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온다.”
그리고 나에게 폰을 툭 던지듯이 건넸다.
나는 엄마의 말에 직격탄을 맞았다.
엄마의 말은 내가 전혀 예상한 게 아니었다.
최소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는 해줄 줄 알았는데.
나는 너무 상처받았고, 실망했다.
우리 엄마가 좋은 소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자신의 딸에게
이런 악담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엄마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줄 알았다면
절대 내 글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마음을 속으로 꾹 누른 채
자리만 피할 뿐이었다.
나는 그날 몸이 좀 아팠다.
하지만 가족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모임에 나간 것이었다.
진통제를 입안에 두 알 털어 넣긴 했지만
방금 엄마에게 큰 상처를 받아서 그런지
참아왔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잠시 화장실로 들어가 아픔을 참다가,
겨우 그곳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러운 마음에 배를 움켜잡고 엎드려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방에서 신음하고 있는 나와는 반대로,
가족들은 거실에서 먹고 마시며
한창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때 거실에서 장난하고 있는 아이들이
방해된 가족 누군가가
아이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 누워서 핸드폰 하는 엄마한테 가라고.
내가 아픈 거 뻔히 알면서.
내가 꾀병이라고 생각했나?
나는 그때 서러움이 폭발하고 말았다.
“나 아프다고!!!!!” 소리치며
엉엉 큰 소리로 울었다.
내 휴대폰이 거실 소파에 있는 걸 발견한 가족들은
그제야 내가 핸드폰 하고 있는 줄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하며 나를 챙겨주려고 했지만
나는 다 필요 없다고,
당분간 연락하지 말라며 집으로 가버렸다.
나는 집에 와서 혼자 울다가, 분을 삭이다가
이렇게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롯이 나를 위해서 행동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나를 봐주지 않으니
나 스스로라도 나를 봐주겠다고.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에게 내가 아까 글 보여줬을 때
왜 그렇게 말했냐고 따져 물었다.
엄마가 서운했냐고 나에게 묻자,
당연하다고,
딸에게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어디 있냐며
서운하고 비참하고 죽고 싶었다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당황해하시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 후 나는 다른 가족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내 마음을 몰라주고,
서럽고 아팠던 당시 상황을
나무라고, 소리치면서
내 감정들을 다 쏟아냈다.
그리고 자던 남편도 깨워
아까 나를 편들어주지 않은 것을 나무랐다.
그 밤에 나는 온 감정을
찌꺼기까지 다 쏟아냈다.
이젠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듯이.
다음 날이 밝았다.
엄마에게 먼저 전화가 걸려왔고,
엄마와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뭔가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엄마는 내 글을 읽는 도중 ‘이혼’이라는
글자를 발견하고 마음이 심란하셨다고 한다.
엄마가 사주를 공부하시는데
우리 네 자매의 사주에 이혼 수가 다들 깔려있어서
혹시 자신 때문은 아닐까 자책도 하시고,
앞으로의 일들도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 글을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도 불편해서 그만 읽고 싶으셨다고 한다.
엄마가 글 읽기를 중단한 이유는
내가 글을 못 써서가 아니라
엄마의 개인적 사정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글쓰기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도 가르쳐 준 이가 없는데,
어떻게 혼자 저렇게 척척 해내는지
참 대견하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나를 응원한다고 하셨다.
내가 처음 엄마에게 글을 보여주고
엄마가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을 때,
내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 엄마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실망하지 말자.’
그래서 처음에는 입을 닫았던 것이다.
만약, 내가 나중에 엄마에게
내 감정을 쏟아내며 말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내가 받았던 상처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고
나는 엄마의 의도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나를 얼마나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응원하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며
엄마를 차갑고 냉정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엄마와의 관계를 끊어냈을 것이다.
감정을 회피하고 억압하는 것은
당장 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내가 감정을 드러냈을 때
여러 위험 요소가 생길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엄마가 처음 나에게 그 말을 했을 때
내가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봤더라면
그날의 상처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가족들과도, 남편과도
다음날 대화를 다시 이어나가 관계를 회복했다.
내가 그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아무 말하지 않고만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져
관계를 단절하는 것에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봇물이 터지듯 감정을 타인에게 쏟아낸 것은
결코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번 계기로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드러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다만 감정을 올바르게 표출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