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처를 받는 이유 7
‘난 불안이 없는 사람이야.’
심지어 나 자신을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거나
위험한 상황일 때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고 자신감있게 대응하기 때문이다.
또,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으며,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날,
내가 어떤 ‘부정적인 일’이 닥칠 때마다
강박적으로, 혹은 필사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내려 한 이유가,
내가 혹시 불안수준이 높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처음으로
내 안에 ‘불안’이라는 존재가 있음을
어렴풋이 인식했던 것 같다.
그 후 내면을 알아가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나는 점점 더 명확하게
내 안의 불안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그동안 내가 ‘불안’이라는 감정을
완전히 ‘회피’해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나는 그 회피의 수단으로 ‘강박’을 사용해,
부정적인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함으로써
불안을 억누르려 했던 것이다.
아, 나는 불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을 해소할 수 없어 회피해온 사람이구나.
내가 불안이라는 감정을 외면하며 지내왔구나.
하지만 이제는 내가 알았으니,
더 이상 강박적으로 불안이라는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만 하지 않고,
불안이라는 감정에 직면해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처음으로 불안과 마주했을 때,
나는 상당한 무력감을 느꼈다.
이 부정적인 정서를 ‘강박적 해결’ 외의 방식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부정적인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 걸까?“라고 고민했고,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저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며
그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런 내 행동이 불안을 회피해 온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굳이 상대방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상황을 애써 분석하지 않아도 되며,
그냥 넘겨버려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넘긴다’는 것을
도무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마치 맨손으로 야수를 마주한 사냥꾼처럼,
이 불안이라는 녀석을 처리할 방법을 몰라
속수무책인 상태였다.
결국 나는 불안에 사로잡혔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발걸음은 정처 없이 떠돌았다.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서성이다가,
불현듯 떠오른 신경안정제를 입 안에 털어 넣고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진정된 마음을 붙잡고 일상을 이어가던 어느 날,
다시 마음 속 깊숙히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잘 안될 거야.’
‘망할 거야.’
‘사람들이 외면할 거야.’
‘나는 아무것도 못 할 거야.’
부정적인 생각들이 와락 몰려오는 순간,
한 조각 글귀가 떠올랐다.
“지나가는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틀게 하지 말라.”
친구가 내게 해준 위로의 말이었다.
“그건 단지 지나가는 생각이야.
그냥 지나가게 놔둬. 부여잡지 마.”
나는 그 말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 지나가는 생각들을 더 이상 부여잡지 않기로.
그리고 불안을 떠나보내기로 했다.
머릿속에 작은 배를 만들고,
나를 괴롭게 하는 생각들을 그 배에 태워
잔잔히 흐르는 물결에 실어 보냈다.
“둥둥둥-”
입으로 소리를 내어
실제로 떠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긴장감이 아래로 쑥- 꺼지며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불안이라는 야수를 물리칠
효과적인 무기를 찾아낸 것이다.
불안을 물리쳤던 이 경험은,
의외로 ‘육아’에서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육아는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는 항상 아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주고 싶어서
모든 선택을 지나치게 고민하곤 했다.
그날, 나는 아이들에게 영양제 젤리를 주는 문제로 갈등하고 있었다.
매일 저녁에 먹는 젤리를 아직 안 먹었는데,
이미 양치를 끝내버린 상황.
아이들이 젤리를 달라고 떼를 쓰는 가운데,
나는 오히려 차분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양치하고 난 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거야.
우리가 정한 약속은 지켜야 해.
엄마는 네가 충치로 고생하는 걸 원하지 않아.
엄마는 너의 이빨을 지킬 거야.”
예전의 나였다면, 혹시나 젤리를 한 번 안 먹어서
아이가 건강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마지못해 젤리를 줬을 것이다.
양치는 또 하면 되니까.
건강은 생명과 연관이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문제상황이 명확하게 보이면서
내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또 내 선택으로 인해
아이가 울거나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혹시 내가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닌가,
아이의 정서를 해치는 것은 아닌가,
내가 사실 편하게 육아하려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하곤 했는데,
내 행동은 결코 이기적이지 않았고
진정으로 아이를 위해서 한 행동이었음을
명확히 느낄 수 있게 되었고,
나의 그 상황과 감정을 아이들에게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불안.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불안이 생각보다 내 삶 전반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마치 짙은 안개처럼
내가 나아갈 방향을 흐릿하게 만들던 것.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주저앉혔던 것.
그것이 바로 불안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개가 걷힌 맑은 하늘처럼
많은 것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내 안에 자리한 불안을 인식하고 극복하면서
내 삶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변화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크고 특별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 앞날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마치 밝은 햇살이 비추는 화창한 날씨처럼
내 앞에도 밝은 미래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