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상처를 받는 이유 5
나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성격의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믿어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마음도
잘 공감하지 못했다.
가끔, 그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나완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애인이 생기고,
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믿음’이라는 주제는
의아함으로 남아있었다.
어느 날, 결혼한 가까운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남편을 믿고, 남편을 의지해?”
지인은 말했다.
“응, 의지하지. 남편이 있으면 든든해.”
그렇구나.
저게 정상이겠지?
하지만 나는 남편이 든든하지 않다.
남편이 믿음직스럽지가 않다.
나는 왜 남을 믿지 못할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또 그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생각을 들었던
주변사람들은 매우 서운해했다.
자신을 못 만나도 괜찮으냐며,
내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남아있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냐며 속상해했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 자체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 같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 오는 것 아닌가?
내가 지금 당장 죽겠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별일이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실 교우 관계도 크게 신경 쓰는 편은 아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한들,
반이 달라지고 연락이 끊기면 결국 멀어졌다.
그렇다면, 애초에 깊이 친해질 필요가 있을까?
나는 운이 좋게도 매년 많은 친구를 사귀었지만
항상 마음속으로는 그 친구들과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매일 만나서 즐겁게 지내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서 너를 만나고 있는 거야.”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고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말이었을지,
그 친구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그 친구가 정말 좋았는데.
왜 그런 ‘거리 두는 말’을 했을까?
나는 이러한 내 경험들이
내 불안정한 애착유형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회피형 불안정 애착유형의 사람이다.
회피형 불안정 애착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내 감정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별로 없을 때 형성된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애초에 부모에게
내 감정표현을 잘 안 했던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어도 그냥 속으로 꾹 눌러버리거나,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을 다 해결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말로 상처를 받으면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게 된 원인’을
필사적으로 분석한다.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의 사람이고,
당시 어떤 기분이었고,
이전에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는지 최대한 분석하여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렇게 이해를 마치면,
그 사람의 말에 더는 상처를 받지 않게 된다.
비로소 그 감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노력이
감정을 회피해 온 증거였다고 한다.
감정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해소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먼저 원인을 찾아 해결함으로써
그동안의 감정을 회피해 왔던 것이다.
나는 내가 스스로 상처를 잘 이겨내는,
내면이 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여리고,
상처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나는 상처받기 싫었던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매년 헤어지는 친구들이 너무 아쉬워서,
죽음의 이별이 너무 두려워서,
애인이 주는 상처가 너무 두려워서
내 마음을 닫았던 것이다.
아무도 나를 상처 입히지 못하도록.
그래서 나도 상처를 주었던 것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왜 자신을 모른 척하냐고 서운해하던 친구들.
내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 속상해했던 가족들.
왜 자신을 믿어주지 않느냐며 절규했던 남편.
모두 내가 등을 돌렸기 때문에,
마음을 닫았기 때문에,
내 감정을 회피해 왔기 때문에
상처를 받았던 것이었다.
이제는 마음을 열어보려고 한다.
감정을 받아들여보려고 한다.
나,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