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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Nov 26. 2024

내가 죽을 것 같을 때 왜 방치했어?

고통스러운 내 안의 상처들 3

나는 남편과의 싸움이 싫다.

이젠 남편과 싸움이 생길 것 같으면

질식할 것 같은 공포감마저 느낀다.


남편과 한번 말싸움이 시작되면

갈등이 끝까지 치닫고

상황이 어느 정도 해결될 때까지

절대 싸움이 끝나지 않는다.


내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조금만 내 감정을 진정시키고

조금만 있다가 얘기하자고 요청해도


내가 문제해결을 회피하는 행동을 한다며

절대 나를 놔주지 않는다.


감정이 터져 죽을 것 같아,

두 손으로 빌고 애원하며

제발 좀 진정할 시간을 달라고 해도

그저 차갑게 거절할 뿐이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그 시간을 견딘다.


피할 수도,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을

마침내 내가 사과를 해야 끝나는 그 싸움을

짧게는 2시간, 길면 6시간을 견뎌야 한다.


싸움 패턴은 대게 비슷하다.


나는 내 의견을 말한다.

남편은 내 반대편에 서서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가며 내 의견을 부정한다.

나는 그 극단적인 예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변호한다.

그렇다면 남편은 다시 내 의견에 반대되는 다른 의견을 말한다.

나는 또다시 나를 변호한다.

남편은 계속 나를 부정한다.


그 무한의 반복.


나는 그냥 내 의견을 말하는 것뿐인데,

갑자기 토론대회가 되어버린다.

남편은 항상 내 반대편에 선다.

나는 외롭고, 곧 서러워진다.


토론대회는 성황리에 막을 내리고

나는 얻어터져 너덜거리는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서 있으면,

남편은 다가와 좋은 싸움이었다며 악수를 청하고

미련 없이, 홀연히 떠난다.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쿨쿨 잠드는 남편을

난 그저 황망히 바라본다.


어느 날 또 토론대회가 깊어질 무렵이었다.

이번엔 남편이 지고 있는 상황.

처음 있는 일이라 나는 약간 상기되어 있다.


또다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남편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의견을 제시할 때마다 극단적인 상황을 대가며

나를 극단주의자로 몰아가는 남편에게,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며,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라며,

나 스스로 변호에 성공하려는 순간!


내가 말실수를 해버렸다.

말의 토씨 하나가 틀려 버린 것이다.


남편은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아, 이제까지 그런 의미였냐며

그럼 내가 주장했던 모든 것이 틀린 것이라며

모든 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이미 4시간이 훌쩍 지난 상황.

나는 너무 지쳤고,

내 이성의 끈은 끊어지고 말았다.


손을 들어 내 입을 쳤다.

내 뺨을 쳤다.

토씨 하나 틀린, 나를 원망하며.


지옥의 탈출구 앞에서 악마에게 다시 발목을 잡혀

다시 지옥 밑바닥으로 내려온 느낌이었다.


주먹으로 내 머리를 마구 쥐어박다가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쾅 쾅 쾅

피멍이 들고 살갗이 터진다.


너를 죽일 수 없으니

나를 죽일 뿐이다.

나를 부정하는 너를 인정하느니

그냥 내가 죽는 게 낫다.


내가 나를 죽이는 그 순간을

남편은 그저 냉소를 띄며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이 남자는 내 아픔에는 관심이 없구나.

그저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구나.


내 고통의 몸부림을,

잠시 시간을 벌어보려는 수작이라고 치부하는 걸까?


하나의 신뢰가 또 끊어졌다.

내 고통에 함께 할 거라는 믿음.

이 사람은 내 인생을 맡길만한 남자가 아니다.


남편은 내가 진정하길 조용히 기다렸다.

마침내 내가 스스로 진정하자,

다시 싸움을 이어간다.


남편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냥 저 밖으로 뛰어내릴 걸 그랬나?

살기가 싫다.



_

회피형인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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