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금나비 Aug 23. 2024

사소한 다림질 이야기

걱정 병 물리치기

한 달 전에 아들이 수시 실기시험을 칠 때 정장을 입고 가야 된다고 했다. 학원에서 지정한 곳에서 맞춘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 받은 옷은 재킷도 없고 흰 와이셔츠에 검은 바지였는데 생각보다 비싼 것 같았다. 아들은 맞춤 정장이라서 그렇다며 불평하는 내가 못마땅한 눈치였다. 연기와 무용을 할 때 편한 옷이라고 생각하고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며 더는 아들에게 묻지 않았다.     


나는 수시 보러 갈 때만 입는 줄 알았는데, 실전처럼 입고 연습한다고 했다. 여러 번 학원에 가져가서 입은 터라 옷이 후줄근해지고 보풀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연습할 때는 교복을 입거나 저렴한 기성 정장을 한 벌 사서 그 옷으로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수시시험을 보러 갈 때만 입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아들 생각은 달랐다. 광복절에 나는 아들에게 수시 실기시험 보러 가는 날을 물어보았고 아들은 다음 주 수요일에 간다고 했다. 나는 정장을 빨아서 다림질도 해서 금요일 아침에 보여주며 아들에게 물었다.  

    

“옷 다려 놨는데 한 번 봐봐! 이 정도면 수시 보러 갈 때 괜찮은지? 아니면 세탁소에 맡기고.”

아들은 옷을 보더니 구김이 있고 빳빳하지 않다며 불평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다려준 것보다 훨씬 잘 려서 입고 올 거라고 했다. 자주 레슨 받을 때 입어서 그런 것도 있고 매번 세탁소에 맡길 수도 없어서 집에서 울 코스로 교복처럼 빨았는데 그래서 옷이 잘 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옷에 라벨도 없어서 세탁 방법도 알 수 없어 집에서 빤 거지만 좀 걱정이 됐다. 아들은 주말에도 입고 가야 된다고 했는데, 토요일에 학원에 가면서 문자로 세탁소에 옷을 맡기라고 했다. 주말에 안 입을 모양이었다. 그때가 오후 4시 정도였는데, 나는 맡기러 갈까, 말까를 망설이다가 가지 않았다.  

    

아들이 일요일 아침에 학원에 가면서 노발대발했다. 어제 세탁소에 맡기라고 했는데 왜 맡기지 않았냐는 것이다. 나는 주말이라 세탁소가 일찍 문을 닫았을 것 같아서도 그렇고 집안일도 있고 하면서 아들이 넘어가 주길 바랐다. 내가 애써 가면 되는데 마음이 안 움직여서 못 간 거다. 아들은 세탁소에 맡길 수 있었는데 엄마 때문에 세탁을 못하게 됐다며 “엄마 때문이야!”라고 돌림 노래를 불렀고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내가 인정하면 아들의 추궁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예상과는 달리 아들의 화는 잠재워지지 않았다. 아들과 갈등이 생길 때, 엄마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주 나무랐는데 이번에는 내 잘못이 확실해서 인정했다. 그런데도 아들에게 소용이 없다는 걸 느끼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무조건 내가 세탁소에 갔어야 했고 다른 방법은 없는 거다. 세탁소에서 옷을 맡기지 않으면 절대 안 됐던 거다. 유순한 남편을 만났다면 아들도 유순한 아이였을까를 생각하며 나는 출구를 찾지 못했다. 나는 조상 탓, DNA 탓을 했다! 도움이 안 됐다. 아들한테 추궁을 들을 줄 알았다면 어제 꼭 맡겼어야 했는데!      


“계속 엄마한테 따지면 무슨 답이 있니?”

“그래. 답이 없어요!”

“답이 없으면 그만 얘기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자!”

“어제 내가 문자 보냈을 때 세탁소에 맡겼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나는 집 근처 세탁소에 여기저기 전화하기 시작했다.

“어디 전화해요? 일요일에 하지도 않는데!”     


나는 랜덤으로 몇 군데 세탁소에 전화했는데 일요일이라서 신호가 가도 받지 않았다. 나는 또 다른 세탁소에 전화하려고 하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세탁소인가요?”

“네, 우리 세탁소는 수요일부터 휴가라서 세탁을 당분간 빨리해 드릴 수가 없어요.”

나는 세탁소 사장님 말을 듣고 바로 끊지 않고 물었다. 다림질을 당일에도 해주실 수 있지는 말이다. 사장님은 세탁은 되는데 다림질만은 따로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끊으려고 하는 사장님에게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그러면 세탁을 맡기면 이틀 안에 세탁을 해주시나요?”

“되는데요. 제가 수요일에 휴가를 가서 어려울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세탁소에 월요일에 맡기면 화요일에는 찾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아들은 뭣 하러 주말에 전화하냐고 핀잔을 주면서 귀에 못이 앉도록 계속 “어제 맡겨야 했는데….”라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들의 추궁을 피해서 아들을 학원에 보낼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큰딸이 우리 얘기를 듣다가 자기 방에서 나와 남동생에게 말했다.


“급한 네가 세탁소에 미리 가서 맡기면 됐는데, 엄마 탓만 하니?”

큰딸의 한마디 말에 아들은 나에게 닦달하는 걸 멈추고 나갔다. 큰딸이 구세주 같았다. 내가 얘기하면 안 되던 일이 누나가 얘기하면 다니!

나는 이날 저녁에 두 딸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가면서 가까운 세탁소의 홍보 문구를 보았다. “교복 당일 세탁 가능, 아침 9시 반 안에 맡기면 7시에 세탁됨.”이 문구를 보고 해방감을 느꼈다. 가끔이라도 세탁소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해방감으로 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이들과 영화 “트위스터스”를 보고 나온 시간이 10시 정도 됐다.      




아들이 한 시간쯤지나 학원에서 돌아왔다. 나와 아들은 낮에 답을 찾지 못했던 대화를 이어갔는데, 뜻밖에 아들은 화를 내지 않았다.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탁했어야 했던 옷을 수시시험 치기 전날 화요일까지 연습해야 해서 학원에 입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참, 사소한 사건으로 아들과 내가 갈등을 빚다니…. 아들은 세탁은 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려주면 된다고 했다. 심지어 선생님이 흰 와이셔츠보다 검은색이 어울린다며 와이셔츠를 빌려주었다.


‘이러려고 내가 신경을 온통 곤두세운 거야!

나는 허무한 생각도 들었고 다시 어제의 일을 곱씹으며 정리하고 싶었다. 뭐가 문제였지?

‘아, 나의 걱정에서 비롯되었어!’

나는 세탁소에 맡기면 3일 이상은 걸린다는 편협한 생각에 빠져있었고 그걸 아들에게 심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걱정하게 했었구나!


예전에 세탁소에 옷을 맡길 때 내가 찾아오기보다 세탁소에서 배달해 주니까 그 배달 날짜를 생각하며 아직도 그 생각에 갇혀있었다. 그때가 십 년도 넘었는데…. 요즘엔 세탁소에 옷을 맡기는 일은 거의 없어서 그곳 사정을 잘 몰랐다. 아들도 자기 생각에 갇혀있었고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았던 점도 떠올랐다.

내가 걱정하는 마음 병이 아직 남아있어서 이런 일을 겪나?’

이 병 나으려면 아이들과 부딪혀야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아이들과의 갈등은 힘들어도 겪지 못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다. 이번 다림질 사건처럼 사소해질 수 있으니까.


‘트위스터스’ 영화에서 주인공 ‘케이트’가 토네이도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정면 돌파해서 토네이도를 자신이 연구했던 대로 잠재우며 성공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아이들과 심한 갈등이 생길 때 토네이도 같은 갈등에 휘말리지만 그걸 잠재울만한 약을 내 안에서 찾는다면 해결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정면 돌파의 마음을 더 가지자고 다짐한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살피며 내 마음에 힘을 보탠다.

'할 수 있어!'

스스로 격려하며 나는 아이들 주변을 기웃거린다.


아들이 입고 갈 검은 와이셔츠와 바지에 섬유탈취제를 충분히 뿌리고 심혈을 기울여서 다림질을 해준다. 금요일에 아들이 보았을 때보다 더 빳빳하게 렸다. 아들이 입어보고는 만족해한다. 걱정하지 않고 좀 더 신경 써서 다려주길 잘한 것 같다.      


걱정보다는 아들에 맞춰주며, 더 신경을 써주면 될 일이었다. 오늘은 며칠 만에 미션 성공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